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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 Sep 25. 2023

아르바이트 아니고 직업인데요.

나이 어린 프리랜서입니다.


캘리그래피 공방을 다니면서 칭찬도 듣고, 작품도 만들어보니 더 다양한 활동이 하고 싶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존감이 떨어지던 시기라 내가 전업 작가처럼 된다는 건 생각해보지도 못했고 가볍게 모임이나 들어가서 친구를 사귈 수 있으면 했다. 당시에 광주에서 자취를 했었는데 원래도 연락이 적었던 고향 친구들과는 정말 연락이 끊기다시피 했고, 아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이곳에서 이방인 같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모임을 찾았다. 운이 좋게 누군가 블로그에 모임 후기를 올린 걸 보고 벌벌 떨며 “저도 들어갈 수 있을까요?”라고 댓글을 달았고 흔쾌히 모임에 초대받았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모임은 즐거웠다. 같이 취미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도 했고, 함께 플리마켓도 나가고, 아마추어 전시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이런 활동들이 쌓일 무렵 나는 소소하게 캘리그래피 의뢰도 받고 있다. 그렇다 할 경력도 없고 왠지 모르게 위축되어 스스로 '전문가'라는 타이틀까지 붙이진 못했지만 은연중에 나도 이런저런 활동을 하는 캘리그래피 작가라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원 중 한 명의 권유로 모 기업의 캘리그래피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 이벤트성으로 방문해 준 고객들을 대상으로 즉석에서 캘리그래피를 써드리는 방식인데 우리는 기업에게 비용을 받기 때문에 고객들은 무료로 받아갈 수 있다. 사회초년생이던 내게는 정말 괜찮은 경험처럼 보였고 지금 생각하면 턱없이 적은 비용이었지만 최저 시급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첫 행사에 참여하게 됐는데, 떨리는 마음은 금세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우선 자리가 열악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임원들도 다른 지점에서 행사를 진행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금 넓은 사각형 테이블을 받았던 내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직원들도 제대로 내용을 전달받지 못해 아무것도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안내 현수막도, 배너도 없이 그냥 책상만 덜렁 있는 채로 시작했다. 원래 이런 건가? 싶었는데 경력이 쌓인 지금은 안다. 안내 배너도 없는 곳은 여기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준비를 해주지 않은 상태였지만 다행히도 플리마켓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 어떻게 세팅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은 있었다. 나무이젤에 캘리그래피를 써드린다는 홍보 문구를 적은 엽서를 올렸다. 그렇지만 앉아서 진행하기 시작하면서 이게 맞나, 싶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방문자가 많지도 않았고, 안내 배너가 없으니 일일이 설명해주어야 했다. 정말 다행히도 내가 간 지점에서는 직원분들이 최대한 친절하게 대해주셨고, 고객들을 상대로 안내해주시기도 했다. 호객행위는 내가 제일 못하는 일 중 하나였고, 사실상 내가 맡은 임무에는 캘리그래피를 받아가라는 호객 행위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기도 했다. 아무튼 간에 공짜 캘리그래피 자판기처럼 부려먹는 고객도 있는가 하면, 너무나도 감사하다고 인사를 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렇게 열심히 캘리그래피 작업을 하던 도중 유쾌했던 직원 분 중 한 분이 내게 물었다.



“아르바이트생인 거예요?”



악의는 없는 말이었다. 20대 초반의 앳된 얼굴에 옷차림도 딱 사회초년생의 그것이었다. 그렇지만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사실 별 거 아닌 이야기다, 무시하는 말투도 아니었고 지금의 나라면 “아니요, 프리랜서예요.”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자존감이 떨어져서 스스로에게 '작가'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도 어려워했던 때였고, 이런저런 활동으로 돈을 벌고는 있지만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라고 방황하던 차에 저런 말을 듣게 되니 내가 전문적으로 보이지 않나? 역시 아직 나는 프리랜서는 아닌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프리랜서가 특별한 게 아니란 걸 알지만 20대 초반의 나에게는 그 단어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어영부영 행사를 마무리 짓고 집으로 돌아갔다. 땅굴을 파고 들어가진 않았다, 어찌 됐든 (그때의 내가 생각하기에) 괜찮은 페이를 받았고 경험을 하나 쌓았으니까. 어찌 됐든 경험이라곤 집에서 컴퓨터로 디자인을 팔던 것 밖에 없던 내가 서서히 다른 길을 볼 수 있게 됐다. 그것만으로도 이 날의 경험은 내게 소중했다.





그 날 작업한 캘리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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