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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 Sep 29. 2023

우물 안 개구리, 우물을 벗어나다.

한 번의 선택으로 나의 세상이 뒤바뀌다.


파트너스퀘어에서 입주작가로 지낸 8개월간의 경험은 내게 가장 중요한 걸 알게 해 줬다. 다른 사람의 케어를 받으며, 나를 위해 준비된 프로그램들을 경험한다는 것은 규모와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설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현재 나의 한계에 대해서도 깨달았으며, 인생의 선배들로 인해 내가 정해놓은 나의 벽을 부수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두렵더라도 기회를 최대한 놓치지 말 것.

방향성이 같은 여러 사람이 함께 할 때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경험은 이후 내 모든 고민을 해소하는 결정적 역할을 해주었다.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입주작가 활동은 원래 6개월이었지만 초기에 건물 공사등의 문제로 입주가 늦어지고 약간의 시행착오가 생기면서 1개월 연장하여 총 7개월 동안 활동을 하게 됐다.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는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함께 했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 전, 카페를 대관한 전시 준비를 시작했다. 연계하여 원데이클래스도 진행했고, 크리에이터 시리즈 in 광주 #2 온스테이지」에서 캘리그래피 행사도 진행했다. 각 크리에이터에 맞는 프로그램을 짜주시려고 최대한 노력해 주신 게 느껴졌다.




캘리그래피 행사장에 도착한 날, 사각형 테이블 하나에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채 진행했던 지난 행사장이 떠올랐다. 나를 담당해 주시는 스태프분들이 계셨고 내 이름과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이 달린 배너까지, 이렇게나 준비해 주신 게 부담스럽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긴장하고 부담을 느꼈던 한 편 설레는 마음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시작 전부터 확연히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조심스러웠던 페이 협상부터 단순히 일하는 시간뿐만 아니라 내가 이 작업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간까지 계산해 주셨다. 너무나도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페이를 낮게 주는 곳이 나를 더 존중하지 않았던 것, 페이를 높게 주는 곳이 나를 더 존중해 주는 것.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후에도 프리랜서 생활을 하는 몇 년간 이런 상황은 계속됐다. 조바심의 낮은 페이의 일을 하고 푸대접을 경험하며 자존감이 떨어지고, 또 어느 날은 나를 존중해 주는 곳을 만나기도 했다. 몇 년의 시행착오 끝에 조바심은 사라졌고 이제는 낮은 페이의 일은 절대 하지 않기로 했다. 조금 늦은 깨달음이기도 하면서 지금이라도 굴레를 끊어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파트너스퀘어 작업 공간


입주작가가 시작된 뒤 우리는 다양한 기회를 받았다. 입주 공간 자체도 만족스러웠지만 컨설팅과 각종 교육, 그리고 개인별 홍보 영상까지 제작해 주셨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던 내게는 과분한 지원이었다.



하지만 활동을 하는 내내 나는 머릿속에서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함께 입주한 사람들은 나보다 실무 경력이나 전문성이 더 있는 사람들이었고, 때때로 내가 조금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캘리그래피가 내가 정말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맞나?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은 안다. 굳이 흑백처럼 무언가를 선택할 필요 없이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해도 된다는 걸. 그런데 그때에는 그만큼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생각이 유연하지 못했다. 원래 하던 디자인을 접고 캘리그래피에 집중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나는 디자인이 더 끌렸다. 그렇지만 이렇게 인정을 받게 된 게 캘리그래피라니, 이 분야에 집중해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그냥 둘 다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럼에도 이 활동이 즐거웠던 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중요한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작가라는 호칭이 민망하고 낯설었던 내게 작가라는 호칭이 익숙해진 것도 이때였다. 호칭은 호칭일 뿐이며 그 무게감에 대해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 자신이 프리랜서라고 말하기조차 부끄러워했던 것도 고쳐졌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프리랜서라고 소개할 수 있게 됐다. 어떤 일에 자신감이 없어지면, 다른 사람이 격려해 주었다. 내가 수업을 잘 진행할 수 있을까 걱정만 하고 있을 때 충분히 경력이 있는데 왜 걱정을 하냐는, 나를 믿고 해주는 조언은 단순히 할 수 있다,라는 추상적인 응원보다 훨씬 더 와닿았다.



또 다른 내 능력을 찾기도 했다. 의외의 순간에서 내가 정보를 찾고, 문서를 작성하고, 기획하고 내용을 정리하는 것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전까지는 이걸 내 장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막상 여러 활동을 하다 보니 굉장히 도움이 되는 장점이었고 타인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까진 아니더라도 평균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정보를 주고받는 것도 무시할 수 없었다. 내가 1을 생각하면 10까지 생각하는 작가분들이 있었다. 우리는 입주작간이 끝난 뒤에도 꽤나 오래 모임을 가졌으며, 그들의 다양한 활동은 그 후 몇 년 동안이나 나의 자극제가 됐다. 이때 나는 인맥이나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프리랜서의 인맥을 이야기하면 단순히 내게 일을 줄 수 있는 인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서로의 모습을 보며 더 성장할 수 있는 동료이기도 하다. 내가 이 사람들을 계속 모르고 지냈더라면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몰랐겠지. 이때 처음으로 나의 비좁은 세상이 넓어진 기분이었다.



기간이 끝나갈 때쯤 1기 입주작가들도 2기에 다시 지원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가들은 다시 지원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지원하지 않았다. 파트너스퀘어의 지원과 컨설팅을 받고도 나의 커리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게 이 활동이 의미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 모든 활동의 끝에서 느낀 점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안타깝게도 내가 온전히 소화해내지 못한 부분도 있으며, 얼마큼 지원받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확실한 건 내가 이 활동을 경험해보지 못했더라면 나의 시야는 계속 좁았을 것이다. 아마 그랬더라면 지금까지도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투명한, 그것도 기껏해야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만을 생각하며 조바심을 내고 있었을 것이다.



입주 작가 기간이 끝나며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만의 작업실을 만들어 보자. 조금 더 많은 사람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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