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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 Oct 04. 2023

작업실, 있었는데요 없앴습니다.

20대 초반의 작업실 이야기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입주 작가 기간이 끝나고 작업실을 구했다. 입주작가를 경험하고 나니 캘리그래피 전업 작가로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디자인은 계속했다. 다만 어정쩡한 포지션이었던 캘리그래피를 좀 더 전문적으로 작업해 보고, 작업실에서 수업을 열어보고 싶었다. 지금까지는 여기저기 카페를 돌아다니면서 수업을 하느라 항상 아쉬움이 남았었다.


혼자서는 돈이 없기도 했고 원룸은 자주 구해봤지만 상가를 구하는 건 또 다른 일이라 많이 무섭기도 해서 네일숍을 준비하던 언니와 함께 구하기로 했다. 우리가 생각한 보증금 예산은 1000만 원 이내였다. 인테리어 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돈을 쓸 수가 없었다(이 마저도 언니의 돈이었다). 이 와중에 내 작업실과 언니의 작업 공간이 분리되어야 하기 때문에 공간도 조금 여유로워야 했다. 비교적 월세가 저렴한 동네를 찾아다니고, 그 와중에 근처에 네일숍이 별로 없는 동네를 찾아다녔다. 


1000만 원 정도면 그래도 비싼 동네가 아니니까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천만의 말씀. 공인중개사를 몇 곳이나 돌았는데 입구에서부터 보증금 가능 금액을 물어보더니 바로 컷 당한 곳도 있다. 어린 여자 둘이 오니 예산이 많지 않을 거란 게 눈에 보였나 보다. 그러던 중, 은인과도 같은 공인중개사를 만나 꽤나 넓은 공간의 상가를 보증금까지 깎아서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뻔히 돈이 없어 보이는 우리의 사정을 눈치챈 공인중개사분은 즉석에서 젊은 아가씨들이 잘해보려고 노력하니 1000만 원에서 600만 원으로 보증금을 깎아주시면 어떠냐는 파격 제안을 했고 상가 주인분은 잠시 고민 끝에 600만 원으로 진행해 주셨다. 


그렇게 내 인생에 첫 상가에 들어가게 됐다. 돈이 없으니 당연히 인테리어는 셀프로 했다. 한 달 내내 셀프 인테리어를 했는데 내 돈은 300만 원 정도 들어갔다. 인테리어로 300만 원이라고 하면 적은 비용 같지만 24살, 사회 초년생이었던 내게는 자취를 하면서 조금씩 모아 온 이 돈도 소중했다. 간판이나 중문 설치 같은 것을 제외하면 크게 돈이 나가는 건 없었지만 자잘한 가구 비용도 무시할 순 없었다. 벽 철거부터 퍼티, 페인트칠, 선반 설치, 가구 조립, 커튼 설치 등 다 직접 했다. 인건비를 대폭 줄여서 간신히 완성했다. 많이 지치긴 했지만 내가 할 줄 아는 게 더 늘어났다는 사실은 기뻤다.


우여곡절 끝에 작업실을 오픈할 수 있었고, 나는 걱정반 기대반으로 작업실 운영을 시작했다. 목표는 “누구나 창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었다. 창작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인생은 참 생각처럼 되질 않았다. 첫 번째 책을 만드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사실상 참여 비용을 생각하면 재능 기부에 가까운 모임이었음에도 모임원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모임원은 규칙도 지키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했다. 모임은 1기만 진행하고 해산했다. 아이템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1기 모임원들로 인해 내가 기대했던 모임의 모습을 이뤄가긴 정말 힘든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작업실을 만든 가장 큰 이유였던 캘리그래피 수업도 잘 되질 않았다. 내 마케팅 실력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캘리그래피 수강생이 적어진 시기이기도 했다. 수업료는 일반적인 캘리그래피 공방 수준에 맞춰서 받았었는데 이걸로 내가 원하는 수익을 채우기에는 수강생이 엄청나게 많아야 했다. 차라리 디자인을 해서 돈을 버는 편이 훨씬 편하고 수익성도 좋았다. 마냥 돈만 보고 작업실을 연 건 아니었지만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조금 더 다양한 사업 아이템을 알고 있는 지금이야 사용하지 않는 시간에 공간 대여를 해볼 걸 그랬나, 생각이 들지만 다시 생각해도 파티룸으로 쓰기엔 부적합하니 스터디나 회의 공간 대여가 전부였을텐데 동네 특성상 수요가 있을 것 같진 않다. 


작업실 공간이 생겼지만 제대로 써먹지를 못했고, 여러 이유로 인해서 내 작업실은 문을 닫았다. 함께 공간을 쓰던 언니만이 그 작업실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 나는 작업실을 정리하고 잠시 본가로 내려갔다. 나는 잘 풀리지 않는 일들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코로나까지 터졌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겐 인생이 너무 어려웠고 조금 더 휴식이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인테리어 비용은 그대로 날린 게 됐지만 어쨌든 경험은 남았고 단순히 '작업실'이라는 그릇이 생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는 작업실 자체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로부터 약 4년이 지난 지금은 추후 또다시 작업실을 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작업실의 용도를 확실히 결정하고, 공간 대여 등 다양하게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 내 첫 작업실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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