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을 운영하는 동안 조금은 슬프게도 일이 잘 되지 않아 한가했으니 시간이 많았다. 그때 마침 그 전년도에 참여했던 평생 교육 프로그램이 모집을 받고 있었다. 전년도에는 취미 삼아 바리스타 과정을 배웠었는데 평소 관심 있던 독립출판과 영상과정도 모집을 받는 것을 보고 두 과정 모두 신청했다.
두 개의 교육을 모두 듣기 위해서 한 주에 3번이나 긴 시간을 내야 했지만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독립출판 과정 덕분에 인디자인을 배우게 됐고, 나만의 작은 책도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영상 수업을 통해서는 정말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교육과정에서 알게 된 분들과의 작업들이다. 교육과정에서 실습 차원에서 뮤직비디오를 하나 만들게 됐는데 그 일을 계기로 음악팀의 뮤직비디오도 촬영해 보고, 낚시 유튜브도 몇 편 작업하게 됐다. 감사하게도 강사분께서 나를 좋게 봐주신 덕분에 관공서의 일도 하나 주선시켜 주셨고, 처음으로 홍보 영상 편집도 진행해 보았다. 함께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일해보자고 하셨지만 고민 끝에 거절했다. 이때의 나는 여전히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지만, 강사님께서 말해주신 일들은 내가 원하는 일의 방향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을 것 같았다. 어찌 됐든 아직 내가 실력이 많이 부족하더라도 영상에 센스가 있나 보다, 자신감이 조금은 생겼다.
작업실을 그만두고, 잠시 본가에서 휴식을 취한 뒤 나는 새로운 마음가짐과 함께 다시 광주로 이사했다. 본가에 있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고, 이때 처음으로 '그래픽 디자인'을 벗어나겠다는 생각을 했다.
완전히 벗어나고 싶다, 지긋지긋하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디자인을 그만두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찌 보면 내가 다른 일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상 일을 구해봤다. 촬영보다는 편집이 잘 맞다고 생각을 했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프리랜서 구인공고가 올라온 여러 곳에 지원을 넣었고, 영상 교육을 통해 알게 된 동생과 지원사업도 도전해 봤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그렇다 할 성과가 없었고 지원사업은 떨어졌다. 겨우 의뢰를 넣겠다는 사람을 찾았지만 심각한 열정페이 수준이어서 결국은 거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락이 왔다. 이전에 다른 크리에이터로 공고를 올렸던 mcn이었는데 다른 크리에이터의 편집일을 해볼 생각이 있냐는 연락이었다. 20만 유튜버로 내가 봤던 공고보다 더 많은 구독자를 가지고 있었고, 편당 페이도 조금이지만 더 높았다. 높은 페이는 아니었고 어떻게 보면 열정페이일 수도 있지만 일을 입문하는 내가 하기에 나쁘지 않은 조건들이었기에 수락했다. 영상 편집을 시작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었지만 당시의 나는 유튜브를 거의 보지 않았기 때문에 왜 사람들이 그렇게 유튜버에게 열광하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렇게 20만 패션 브이로그 채널의 편집자가 되었다.
나의 첫 편집은 엉망진창이었다. 애초에 포트폴리오를 제작할 때에도 영상을 재밌게 편집하는 실력을 어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감각적인 편집이 가능하다는 걸 어필했었다. 대충은 생각했지만 내 영상 편집 실력(영상을 재미있게 만드는 실력)은 아직 많이 부족했다. 정말 다행인 건 내가 담당했던 크리에이터는 기존에 자신이 편집을 맡아서 했기 때문에 편집스킬이 좋았고, 나에게 인수인계 해주듯이 중요한 포인트들을 동영상으로 녹화해서 보내주었다. 원본 영상 틈틈이 내게 잘 부탁한다는 인사까지 넣어주셨다.
그 유튜버와 일을 진행하면서 새삼 나이는 정말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의 나도 26살, 많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크리에이터분의 나이는 나보다도 더 어렸다. 하지만 내가 최근까지도 정말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났었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일에 대한 태도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했다. 쓸데없는 감정 노동이 없도록 깔끔하게 피드백해주었고, 추후 분량이 늘어나면서 나의 노동 강도를 생각하여 웬만하면 2차 수정까지 가지 않고 1차 수정본에서 직접 수정해서 사용하시곤 했다.(기존에 상의된 작업 방식으로 작업 파일 공유시 프로젝트 파일까지 넘겼었다.)
배운 것도 정말 많다. 초기에는 유튜브 영상의 중요 포인트를 몰라서 놓친 부분들을 피드백을 통해 알게 되었고 같은 피드백을 또 받지 않도록 최대한 신경 써서 작업했다. 예를 들어 대화가 늘어지지 않도록 중간 숨소리를 자른다거나, 빨리 감기를 할 때 동작이 없는 장면을 최대한 오려내고 다양한 행동을 보여주면서 지루한 느낌을 없앤다거나, 사람들이 선호하는 영상 길이에 맞춘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일단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어느 정도 생기고, 커뮤니케이션도 편하다 보니 편집자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물론 이 때도 디자인 외주도 종종 받아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작업을 하면 할수록 조금씩 크리에이터와 나의 가치관이나 취향이 다르다는 것이 편집을 하는 의욕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가치관은 심하게 차이난다기보단 선호하는 인생의 스타일이 다르다는 것이었고,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에 있어서 내 가치관을 아예 배제하고 일을 하는 것이 어려웠던 나는 이런 과정이 조금 피로하게 느껴졌다. 제일 큰 문제는 취향이 다르다 보니 내가 이 영상을 잘 편집하고 있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담당하고 있는 채널인데 당연히 내가 영상을 더 잘 살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
다행히도 크리에이터에게 취업 제안을 받으며 그 의심은 사그라들었다. 일을 한 지 6개월 정도 지난 뒤, 하루 날을 잡아 크리에이터와 서울에서 만나게 되었다. 아주 가끔 크리에이터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때의 나는 여러 이유로 서울로 이사 가려고 생각 중이었고, 크리에이터는 내가 서울로 온다면 자신의 채널을 회사 체제로 확장을 생각하고 있으니 내가 주 2-3일 정도만 출근하는 건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광주와 비교가 안 되는 월세를 내야 하니 서울로 이사하는 것은 나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고정급이 있다면 더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우선은 수락했으나 그 뒤로도 많은 고민이 들었다. 하여튼 간에 이놈의 고민은 끝이 없었다. 최종적으로 내가 내린 결론은, 제안을 거절하고 영상 편집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우선 제안을 수락하게 되면 기존 업무 외에도 더 많은 것을 담당해야 하는데 그러한 일들을 처리하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별도로 나의 일을 하기엔 힘이 들 것 같았고, 그 와중에 서울의 월세를 감당하려면 더욱더 난감할 것 같았다. 계속해서 생각했던 스타일의 차이도 컸고, 영상 편집을 하는 기간 동안 디자인 강의도 진행했었는데 오히려 이 쪽에 관심이 가기도 했다. 더군다나 영상편집 업계의 단가는 계속해서 내려가고 있었고, 특히 내가 열심히 일하더라도 내 사업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브랜드가 커진다는 것이 의욕을 저하시켰다.
크리에이터와는 정중히 그만둔다는 연락을 드리고 잘 마무리되었다.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지만 예전만큼 두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