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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주치의 Mar 31. 2019

13. 어린 나 자신과 화해하기.

Epi.04. 부부대화법. 어린 자신과 화해하기, 부모, 양육, 부부

진한 씨는 힘들지만 다시 입을 열었다.


진한: “선생님. 어느 순간부터 저라는 존재 자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Dr: “수미 씨에게 자신이 짐이 된다고 느껴지시나요?”


진한: “네. 선생님.”


Dr: “네.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보도록 하죠. 이전에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짐이 된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있나요? 나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해진다는 느낌 말이죠.”


진한: “… 그런 이야기도 해야 하나요?”


진한 씨는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고 내가 말하기도 전에 수미 씨가 반응했다. 어느 순간부터 수미 씨도 진한 씨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 같다.


수미: “말 안 하려면 여기 온 이유가 없잖아. 다 여기서는 생각나는 대로 꺼내야 된다고”


수미 씨의 말에도 진한 씨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 애꿎은 커피잔만 만지고 있다. 나는 진한 씨를 채근하고 싶지는 않았다. 진한 씨는 그저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진한 씨는 어루만지던 커피잔을 움켜쥐고서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잔을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진한: “... 제 어머니요.”


Dr: “어머니요. 말씀을 계속해주실까요?”


진한: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일을 마친 후에 술을 마시고 집에 오는 분이었습니다. 술 마시고 집에 오면 곱게 잠을 자는 편이 아니었죠. 항상 엄마를 힘들게 했어요. 그럴 때마다 엄마는 저를 안고서 울었어요. 온 집안은 난장판이 된 상태로 아버지는 다시 집 밖을 나가고 엄마는 저를 안고서 항상 울었죠. 자식은 저 혼자였거든요. 그러면서 엄마는 항상 제게 말했어요. 너만 아니면 네 아빠랑 살지 않는다고요. 너만 아니면 내가 이러고 살지 않는다고요. 너만 아니면… 너만 아니면… 너 때문에 네 아빠랑 헤어질 수도 없다고요.”




진한 씨는 과거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괴로워 보였다. 진한 씨는 눈물을 흘렸다. 우는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듯이 바닥을 보며 눈물 흘리는 진한 씨를 던 수미 씨는 아버지 때문에 힘들었던 진한 씨의 어린 시절을 자신도 알고 있다는 듯이 진한 씨에게 티슈를 몇 장 건넸다. 그리고 그저 진한 씨를 기다려줬다.


진한: (떨리는 목소리로)엄마떠날까 봐 두려웠어요. 그냥 엄마한테 떠나라는 말이 안 나왔어요. 아버지와 둘만 남겨질 생각을 하니까 엄마가 불행해도 내 옆에 있어주기를 바랐어요. 그리고 저는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엄마를 행복하게 해 드리려고 저는 공부만 했어요. 선생님. 그렇게 저는 살았는데… 엄마는 제가 고시에 합격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어요.”


진한 씨는 말을 더 이어가질 못한다. 그저 눈물이 흐를 뿐이었다. 수미 씨는 진한 씨에게 휴식을 주고 싶은 것처럼 대신 자신이 말을 이어갔다.


수미: “어머님은 남편이 고시 준비를 하는 동안 대장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남편은 지금까지도 아버님을 용서하지 않고 있고요. 물론 남편이 외동아들이라 제사는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명절 때에 아버님이 계시는 시골에 내려가기를 싫어해요. 제가 설득해서 같이 다녀오는 정도죠. 남편이 아버님을 싫어하는 것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사정이 있는 거는 저한테도 말하지 않았어요.”


Dr: “네. 진한 씨는 그 기억을 다시 꺼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예요. 듣는 것만으로도 힘들 정도니까 진한 씨는 얼마나 많이 힘들었을까 싶어요.”


진한: “어머니는 그렇게 단 한 번도 행복하지 않은 채로 떠나버렸어요. 저 때문에요. 저 때문에 아버지의 폭력에서 떠나지도 못하고 그렇게 돌아가셨어요. 저는 어머니가 그렇게 고통받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 곁을 떠나라고 말하지도 못했어요. 그저 저는 공부만 했죠.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요. 그런데 결국 어머니는 제가 검사가 되는 것도 보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어요. 저 때문에 힘들다는 하는 말이 너무 괴로워요. 더는 감당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죽을 만큼 외로워도 누가 저 때문에 힘들어하는 거는 싫어요. 내가 아니었다면 엄마는 행복해졌을 거예요. 어차피 자식은 나 하나였잖아요.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엄마는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거예요. 선생님.”


진한 씨는 차분하게 말하려 하지만 감정은 이미 어머니를 떠나보낸 그때 진한 씨로 돌아가 있었다. 진한 씨의 내면에 억압하고 부정하고 격리시켰던 죄책감, 자괴감, 원망감 등의 부적 정서들이 분노를 수반한 채로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뿜어져 오르고 있었다. 진한 씨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을 폭발하며 혼란스러워했다. 혼란스러운 진한 씨에게 필요한 것은 아내와의 깊은 애착에서 피어나는 사랑이었다. 그리고 수미 씨는 그것을 아는 사람처럼 진한 씨에게 말을 건넸다.


수미: “여보. 나는 어머님이 아냐. 당신도 아버님이 아니고. 당신은 내게 한 번도 아버님이 하신 것처럼 행동하진 않았어. 화를 내고 분노가 조절이 되지 않아도 항상 당신이 나와 아이를 사랑하고 있고 신경 쓰고 있다는 마음은 항상 전달되고 있었어. 나는 어머님이 아냐. 다시 말하지만 나는 당신 때문에 죽지도 않고 떠나지도 않아. 그런 당신의 불안이 날 힘들게 하는 거야. 내가 당신 때문에 떠날 수도 있다고, 다칠 수도 있다고 그런 생각이 당신을 불안하게 하고 그런 당신이 날 자꾸 통제하려 하고 그런 당신이 날 동시에 밀쳐내는 거라고. 당신을 떠나려고 내가 여기까지 왔겠어? 불안해하지 마. 나는 어머님이 아냐.”


수미 씨는 침착하게 남편의 죄책감, 자괴감을 감싸 안아줬고 남편이 두려워하는 일에 대해 안심시켜주는 모습을 보였다. 진한 씨는 수미 씨의 말에 참고 있던 눈물이 다시 터져버렸다. 그리고 진한 씨는 그리도 멀게 느껴지던 30cm를 뛰어넘어서 수미 씨의 손을 잡았다. 수미 씨 또한 진한 씨가 내민 손을 놓지 않았다.


배우자의 손길은 어떤 고통도 이겨내는 힘을 줍니다.


그리고 나는 진한 씨의 내면에 자리 잡은 어린 진한 씨를 만나보고 싶었다.


Dr: “진한 씨. 어린 진한 씨를 자신이 한번 3인칭 시점으로 어린 진한 씨를 한번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마치 어른이 된 진한 씨가 길가에서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보듯이 말이죠.


진한 씨는 뭔가 어색하다는 듯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Dr: “자. 진한 씨도 아들이 있잖아요. 그렇죠? 그 아들을 보는 것처럼 한번 진한 씨 내면에 어린 진한 씨를 한번 떠올려보자는 거죠. 자. 눈을 잠시 감고요. 제가 이야기하는 대로 한번 어린 진한 씨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진한 씨는 눈을 감는다. 그리고 옆에 있는 수미 씨도 덩달아 눈을 감아본다. 남편이 해결해야 되는 문제라면 자신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동참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둘은 손을 놓지 않고 있다.


Dr: “자. 우리는 집 안에 있는 어린 진한 씨를 보고 있습니다. 자. 눈 앞에 어린아이가 떠오르나요?"


진한: "네. 선생님."


Dr: "그래요. 어린 진한 씨는 자기 방에서 책을 보고 있습니다. 저녁이 되었고 아버지가 집에 들어옵니다. 오늘도 역시 아버지는 술이 취한 상태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온 집안이 떠들썩하게 서로 소리 지르면서 다투기 시작합니다. 아버지는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던질 것이고 걱정돼서 거실로 나오는 진한 씨에게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어머니도 아버지께 소리를 지르면서 흥분한 상태입니다. 어린 진한 씨는 혼자 자신의 방 안에서 양쪽 귀에 손을 막고서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엄마가 다칠까 봐 두렵겠죠. 하지만 나갈 용기는 없습니다. 아빠한테 맞을 것 같거든요. 그 어린아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엄마를 지켜주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만 늘어갑니다. 두어 시간이 지난 후 아버지는 집 안을 난장판을 만들고 나서 집을 나가버렸고 어머니는 울면서 거실에 앉아있습니다. 어린 진한 씨는 방에서 나가 어머니한테 갑니다. 어머니는 어린 진한 씨를 안고서 네가 아니면 네 아빠랑 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엄마의 뜻은 그렇지 않지만 어린 진한 씨의 귀에는 내가 아니면 엄마가 행복할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나 때문에 엄마는 불행해도 아빠랑 살아야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어머니 입장에서는 너무 속상해서 할 수 있는 말이겠죠. 하지만 어린 진한 씨는 내가 태어나서 어머니가 불행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부정하고 싶고 죄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진한 씨는 이제 고작 열 살도 채 안되었는데 말이죠. 이 아이가 엄마한테 제가 아빠랑 살 테니 엄마는 저를 떠나라고 행복하시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열 살도 안 된 아이 가요?"


진한 씨는 아무런 말을 못 한다. 하지만 같이 눈을 감고 상상하던 수미 씨는 연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Dr : "그리고 이 아이에게는 공부가 즐거움이 아니었을 겁니다. 이 아이에게 공부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최악의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차악의 고통이었을 겁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떠나지 않게 하는 마지막 남은 방법이니까요. 그 아이에게 공부라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엄마가 자신을 떠날 것 같은 불안을 안고서 공부를 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진한 씨. 이 아이가 어떻게 보이세요? 너 때문에 네 엄마가 고통받다가 돌아가셨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으신가요?”


진한: “(머뭇거리면서) 아니요. 선생님.”


Dr: “자. 자신의 옆에 그 어린 진한 씨가 있습니다. 쉬고 싶어도 엄마가 떠날까 봐 책상을 떠나지 못하고 공부만 하고 있는 그 어린 진한 씨가 옆에 있습니다. 성인이 된 진한 씨는 그 아이에게 어떻게 해주고 싶은가요.”


진한: “책상에서 일으켜 세워주고 싶습니다. 좀 나가서 엄마랑 재밌게 놀라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끼듯이)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엄마가 너 성공할 때까지 사실 수 없으니까 공부만 하지 말고 엄마한테 가서 안기라고 하고 싶습니다.”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용기를 내며 다시 말하는 진한 씨.


진한: “네 잘못이 아니라고 해주고 싶습니다. 너 때문에 엄마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너 때문에 엄마는 행복했을 거라고 해주고 싶어요. 너 때문에 엄마가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고 해주고 싶어요. 선생님.”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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