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05. 강박사고, 강박행동, 강박증, 아버지. 아들, 대인관계
Episode. 05
지난해 가을. 나는 체코 프라하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난생처음 가본 동유럽인 프라하에는 프라하성, 까를교 등 많은 볼거리가 있었지만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기억은 그저 허름한 옷을 입은 노인과 그의 인형이었다.
당시 나는 까를교를 지나가던 중 우연히 길가에 앉아서 인형 공연을 하는 노인을 보았다. 흰 수염이 턱과 인중을 덮고 있고 허름한 옷차림의 노인이었지만 그가 연기하는 인형은 그와는 다르게 허름하지 않았다. 빛나고 깨끗한 드레스를 입은 인형은 노인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이며 극을 연기했다. 공연을 보는 다른 이들은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나는 공연을 보는 동안 그리 즐겁지 않았다. 그때는 왜 내가 별로 즐겁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지도, 박수를 치지도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당시 내가 프라하에서 봤던 인형은 마리오네트 인형이었고,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남성은 그때의 마리오네트 인형과 너무도 닮았다. 그는 강박증을 겪고 있었다.
32세 남성. 민혁 씨. 그는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진료실 안에 들어왔다. 면혁 씨는 깔끔하게 정돈된 헤어스타일이었고, 안경은 검은색 뿔테 안경으로 마치 슈퍼맨 영화에서의 클락 켄트 같은 모습이었다. 눈썹 또한 짙고 얼핏 봐도 180 중반의 키에 훤칠한 남성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가 봐도 호감형 성인 남성으로서 젠틀한 사무직 회사원 같은 모습의 그는 어떤 이유로 내원한 것일까? 그는 예의 바르게 인사한 후 의자에 앉아서 내 눈이 아닌 내 미간을 보고 있다. 그는 마주 보는 것이 불편하지만 마주 보고 이야기해야 한다는 관습을 따르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했다.
Dr: “안녕하세요. 오늘 내원해 주신 이유는 어떤 거죠?”
민혁: “... 아이가 저를 닮아가는 것이 불안해서요. 선생님.”
Dr: “네. 어느 정도는 아이가 아빠를 닮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민혁 씨는 나를 닮은 아들의 모습이 보기에 불편하세요?”
민혁: (몇 초간 주저한 후) “... 네. 제가 그런 건 괜찮은데 아이가 저를 닮아서 저처럼 행동하는 걸 보니까 괴롭네요.”
Dr: “어떤 행동을 따라 하길래 그런 거죠?”
민혁: “… 저는 몇 가지 저만의 의식적인 행동이 있어요. 선생님.”
여기서부터는 민혁 씨는 자신만의 몇 가지 의식(ritual)에 대해서 설명했다.
나는 그저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듣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선 그는 강박장애를 앓고 있었다.
그가 가진 강박행동 중 우선 첫 번째는 Symmetry and precision(대칭과 정확성에 대한 요구)이다. 예를 들어 그의 책상에는 항상 펜들이 대칭적이고 일렬로 놓여있어야 했다. 또한 물건의 경우 책상의 세로면, 가로면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서 놓여 있어야 했다. 집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서도 항상 그는 양쪽 간격을 고려하며 물건이 놓여있어야 했다. 숟가락, 젓가락도 항상 가지런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가지런하지 않다고 해서 아내에게 화를 내거나 그런 성격도 아니다. 그저 혼자 불안해서 다시 놓을 뿐이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모든 물건들이 일렬로 가지런히 놓여야 했다. 그가 그렇게 만들었다.
두 번째는 항상 숫자를 세는 강박행동이 있었다. 그가 강박적으로 세는 수는 하나, 둘, 셋이다. 그는 말을 할 때에도 항상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고서 말을 했고 어떤 행동을 시작할 때 역시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고서 행동했다. 나는 면담을 하며 민혁 씨의 중저음의 목소리와 공손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이유 모를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딱히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지는 알기 힘들었다. 그리고 그가 숫자 3에 집착하는 강박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 그의 부자연스러움이 이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혁 씨는 그런 자신에게 만족하며 나름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를 괴롭게 만드는 일이 생겨버린 것이다.
민혁 씨의 아들은 6살이다. 6살인 아들이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자신과 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를 학대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되어 아내와 상의한 후에 주변 지인들의 평가가 좋다는 유치원으로 옮겨보았지만 아이는 달라지지 않았다. 유치원에서 아들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수저가 바로 놓여있지 않으면 식사를 하지 않았고, 다른 아이들이 어지럽힌 공간을 혼자서 물건을 가지런히 정리하느라 놀지 못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이상하게 여기는 같은 반 남자아이들은 짓궂게 아들 앞에서 일부러 물건을 어지럽히고 아들이 정리하면 기다리고 있다가 다시 어지럽히고 그렇게 민혁 씨의 아들은 하루 종일 유치원 물건을 정리하는 데에 시간을 쏟고 있었다. 물론 민혁 씨의 강박행동 때문에 전적으로 아들에게서 강박적인 모습이 생겨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혁 씨는 괴로웠던 것이다. 마치 자신이 집에서 보이는 불안한 모습이 아들에게 영향을 준 것 같아서 말이다.
민혁 씨는 자신의 강박행동이 자신의 삶을 부자연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강박행동을 하지 않으면 뒤이어 자신을 덮치는 불안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예를 들어 숫자 셋을 셀 때에도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이 두려워 원래 자신이 하고자 하는 행동이 아닌 그저 숫자를 세는 것을 들키지 않게 하는 부차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운전 중에 파란 불로 바뀌어서 액셀을 밟어야 하는데 숫자 셋까지 세는 동안 그는 액셀을 밟지 못하였고 숫자 셋을 세는 동안 다른 직장동료들이 가속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괜히 히터를 만지작거리고 기어를 만지작거리고 그런 식의 행동을 했던 것이다 강박행동 그리고 그 강박행동을 타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또 강박행동… 그렇게 그는 숫자 셋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통제하고자 하지만 정작 그는 마치 프라하에서의 내가 보았던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그는 자신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통제력은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왜 강박적이게 되었을까? 여기서 내가 궁금한 건 셋을 세지 않았을 때 민혁 씨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