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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즘 Aug 24. 2023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건

      

인내 속에 화목이 있다


“조금 더 어른스럽게.”     

이 말을 즐겨 쓰는 사람이 있다. 서로 잘 알고 교류하는 사이지만 나 혼자 속으로 멘토 삼은 분이다. 나보다 7살 위인 데다 성품도 좋다. 드러내놓고 멘토-멘티 관계 맺기가 조금 그래서 내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관계다.     

그분의 좌우명은 인중유화(忍中有和). 인내 속에 화목이 있다는 뜻이다. 직원 100명 규모의 중소기업을 운영하는데 화낼 줄을 모른다. 아니 화를 잘 참는다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한 번은 직원이 계약건과 관련해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한다. 직원은 책상에 머리를 숙이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상황. 사장인 나의 멘토는 회사 근처 공원을 한 바퀴 산책하고 들어와서는 직원의 어깨를 툭 치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좋은 경험 하나 쌓았네. 다시 시작하자, 알았지? 저녁에 시간 되면 밥이나 먹으러 가자.”     

회사의 다른 직원을 통해 그 에피소드를 들었을 때는 정말 감동이었다. 멋지지 않은가. 요즘 흔히 말하는 ‘실패학’이다. 실패에서 배운다는. 그 직원은 ‘좋은 경험 하나 쌓았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인턴》(The Intern)과 노마지지(老馬之智)


명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인턴사원으로 나온 《인턴》(The Intern)이라는 미국 영화가 있었다. 누가 나에게 이 영화의 주제를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성숙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Experience never gets old.’ ‘경험은 결코 늙지 않는다’는 의미로 영화 ‘인턴’의 부제로 쓰인 말이다. 영화는 전화번호부를 만드는 회사에서 40년을 근무한 뒤 부사장으로 퇴직한 70세 노인 벤 휘태커(로버트 드니로 분)가 인터넷쇼핑몰을 운영하는 회사에 시니어 인턴으로 취직하면서 벌어지는 일화를 다뤘다.     

휘태커의 연륜에서 나오는 따뜻한 마음과 지혜는 영화 곳곳에 등장하며 감동을 준다. 휘태커는 창업 1년 반 만에 직원 220명의 성공신화를 이룬 30세 여성 CEO 줄스(앤 해서웨이)의 비서로 일하며 지혜롭게 도와준다.     

“뮤지션은 은퇴 안 한다는 기사를 읽은 적 있어요. 더 이상 음악이 떠오르지 않을 때까지 계속한대요. 내 마음속엔 아직 음악이 있어요. 확실해요.”     

로버트 드니로가 영화에서 시니어인턴 면접을 볼 때 한 말이다. 진심과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 열정이 넘치는 이 말을 듣고 뽑지 않을 면접관이 어디 있을까.     

70대의 인턴사원은 회사 안에서 최고 인기남이 된다. 배려와 아량, 유머감각은 기본이다. 조금 도와주면 디지털 기기 사용법을 금세 마스터하는 놀라운 적응력을 갖추고 있다. 딸 뻘인 여자 상사를 깍듯이 모실 줄 아는 개념 남인 데다, 여성 차별에 진심으로 분개할 줄 아는 성 평등의식, 거기다 한참 어린 여자가 “귀엽다”라고 할 정도의 외모까지 갖추고 있으니.     

인기남의 비결은 한마디로 ‘보살핌 받는 노인’이 아니라 ‘보살펴 주는 주체’라는 사실이다. 딸아들 뻘인 동료에게 인생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마음을 다해 격려하는 멋있게 나이 든 노인을 보면 이런 깨달음이 찾아온다. 첫째, 실력을 갖출 것, 둘째, 열린 마음을 가질 것, 셋째, 후배를 질투하지 말고 응원할 것. 영화 인턴 속 로버트 드니로는 이런 기술의 달인, 소통의 달인임이 분명하다.     

영화는 노마지지(老馬之智)를 떠올리게 한다. 전투에 쓰지 못하는 늙은 말의 지혜를 빌려 잃어버린 길을 찾은 뒤 군대를 구한 중국의 고사가 담긴 사자성어다.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과도 통한다.     



‘나잇값’의 의미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어른스러워진다는 것이다. 계절로 치면 가을에 해당한다고 할까. 익어가는 것이고 단풍나무처럼 자연의 순리에 물들어가는 것이다. 화를 참을 줄 알고 마음을 비울 줄 알며 탐욕을 덜어낼 줄 아는 게 성숙의 길이다. 밖으로 향하던 눈길을 자신의 내부로 향하게 만들어 스스로를 살펴볼 수 있는 생각의 근육이 커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자신의 마음을 성찰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성숙의 계단을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른스러워진다는 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나잇값’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겸손해지고,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듯 자신의 화려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 이런 게 나잇값 하는 것 아니겠는가. 조금 더 이타적이고 헌신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어른스럽다는 증거다. 로버트 드니로가 그랬던 것처럼.     




영혼의 성숙에 초점을 맞춘다면


인생의 목적을 무엇에다 두어야 할까.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고 훌륭한 배우자를 만나는 것도 좋지만 궁극으로는 영혼의 성숙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영혼 성숙 없는 고결함과 품격과 권위는 생각할 수 없으니 말이다.     

조금이라도 더 영혼을 성숙시키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모든 선택의 기준을 영혼 성숙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여부에 둔다면, 마음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먼저, ‘완벽하지 않은 나’를 자각하고 있기에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가졌다고 해서 부러워할 일이 없어질 것이다.     

실패와 곤궁, 좌절의 상황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지필 가능성이 크다. 신체적 장애나 고통스러운 질병도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며, 그동안 남을 힘들게 했던 고집과 아집도 내려놓게 될 것이다.     



성숙의 요체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詩) ‘가지 않은 길’에 있는 표현이다. 이런 게 성숙 아닐까. 멀리 보고 넓게 보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숙은 상생이고 공존이며 따뜻함이다.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것이고, 형편없는 성적을 받아온 아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성숙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조건에서 배워야 할 인생의 덕목이 무엇인지, 겸손인지 인내인지 용기인지 정직인지 목록을 적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성숙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슬픔만 계속되는 삶도, 기쁨만 지속되는 삶도 없는 걸 안다. 고난과 역경이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통과의례라는 걸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나에게도 적당한 책임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고, 나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게 된다.     

또 사랑하되 집착하지 않게 되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판단할 줄 알고,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줄 아는 눈도 조금은 생기게 된다.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으려 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되 원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서도 겸손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이제야 성숙의 길 초입에 들어선 느낌이다. 적어도 성숙의 요체를 알고 느끼고는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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