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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즘 리플렉팅 Jul 17. 2018

[사라지는 동네] -"이 동네는 언제 재개발돼?"

나의 마을은 재개발 중 1


몇 해 전부터 귀에 딱지가 내려앉도록 들어온 말이다. 손님과 주인 사이에서, 가족들 사이에서는 재개발이란 단어가 만남 때마다 끊임없이 나왔다. 인제 그만 다른 대화를 해도 좋을 텐데 항상 고요함이 자리 잡으려 하면 여유 없는 마음을 비집고 나오는 낱말은 재개발이었던 듯하다. 아마 그게 이제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나는 재개발이 이뤄지는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사진첩에는 가게 앞에서 찍은 사진, 어디에서 찍은 건지 다 알 수 있는 장소들로 가득했다. 오래됐다. 가게와 집이 함께 이어진 옛 주택들이 가득한 동네는 시간이 갈수록 가게는 없어지고 집들이 많아졌다. 집과 가게가 같이 있는 곳들은 이제 얼마 되지 않는다. 저기 저 옆 가게 아저씨의 흰머리가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놀이터에 나온 아이들이 줄어들면 우리 어머니의 키도 점차 줄어들었다.  


지방에서 올라왔던 옛 연인은 마치 이 동네는 자기의 동네보다 더 낡아 보인다고 했다. 조금만 더 나가면 있는 동네들은 좀 더 세련되어 보인다. 장을 보려면 버스를 타고 간다. 고등학교 때 남모를 슬픔을 덜어내던 거리는 이제 큰 아파트가 들어서는 공사가 한창 중이다. 그 밑에 주민의 아우성이 가득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면 이제 동네처럼 보이던 가게들이 즐비했던 거리는 곳곳에 무서운 공고 딱지들이 붙어있다. 재개발로 인해 이곳에 들어서면 안 된다는 문구다.


손님이 하나도 없다는 말을 내뱉던 어머니의 말은 이제 정말 현실이 됐다. 손님으로 오던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보상을 받고 동네를 떠났다. 그나마 기억하던 단골손님들이 오고 가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긴 어려웠다. 대학 대신 생계를 유지하려고 하던 나도 중증 허리디스크가 심하게 오면서 힘쓰는 일을 못 하게 됐다. 다행히 어려울 때마다 간신히 일어나는 운들이 있어 이마저도 이어져 온 것이지만 어찌 됐거나 10년 전처럼 웃으면서 미래 걱정을 할 여유는 더 없어졌다. 팍팍한 삶은 마음의 여유를 마르게 한다.


나는 그나마 내 몸과 지속 가능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시 대학을 들어갔다. 국가 장학으로 등록금 여유가 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친구들은 다시 대학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큰 부러움을 보였다.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너희는 그래도 집이 있잖아. 너희는 형제라도 있잖아. 나는 내일이 막막해….' 그때마다 친구들은 내게 형제가 있어봤자라며 집도 대출했다며 자신의 삶 또한 그렇게 좋지 못하다 했다. 하지만 누가 봐도 나는 친구들 중에서 제일 가난하고 철이 없는 위치였다.


희망과 불안이 오고 가는 하루들로 긴장하고 살았다. 내가 과연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을까. 다시 허리를 못 쓰게 되면 어떡할까. 내일 아침 일어날 때 움직이지 못한다면 어떡할까 등 염려와 걱정이 판을 쳤다. 조금씩 조금씩 나를 가능하게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것을 해와야 했던 책임감은 공부하는 데 지장을 주진 않았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그런 여유는 사라졌다. 어머니도 마음 풀 곳이 없었다. 그 불안한 마음은 나에게 온전히 맡겨졌다.


낡고 낡아져서 재개발이 거듭 말해지는 동네에서 그 집 한편에서 나는 같이 낡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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