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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즘 리플렉팅 Nov 15. 2019

다들 알면서도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잖아요.

오늘도 어김없이 라디오에선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6년, 아니 어쩌면 19년 인생의 반을 이 시험을 보기 위해 달려왔을 학생들 수고했다고 한다. …거짓말. 



"너 잘못이야."


찬물에 손이 닿자 온몸이 욱신거렸다. 매일 닿던 물통 물이었는데, 손가락이 저리는 것 같았다. 


그 겨울은 신종플루가 유행이었다. 30명에서 40명 가까운 학생이 있던 반이었기 때문에 빨리 조치를 취해야 했다. 하원 후 가까운 응급실에 들러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신종플루는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 학원은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 했다. 담임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니 몸 관리는 네가 알아서 해야지. 지금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 아프면 네 손해야."



책임


예체능은 특히나 수능 이후가 더 중요한데, 이렇게 아프다니.. 아프다. 그 말도 맞지. 아프면 내 책임이지. 아픈 것도 내 책임인데 왜 이렇게 답답하고 마음이 더 아플까. 


아프지 않으려고 했는데, 밤늦게까지 놀아본 적도, 다른 애들처럼 술 담배도 안 했는데 뭐가 문제였을까. 학원 복도에 늘 식어 있던 차가운 도시락 때문이었을까. 간단하게 때우기 위해 먹었던 삼각김밥 때문일까. 뭐 때문일까. 옷도 단단히 입었는데 뭐가 내 책임이었을까. 더, 뭘 더 할 수 있었을까. 


그냥 나는 붓을 쥐었고, 여느 날과 다른 날과 다름없이 또 찬물이 닿았던 걸 뿐인데. 그냥 그랬던 것뿐인데. 나 자신에게 무책임하다는 말을 들었다. 


자기관리. 얼마나 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11월 14일, 수능 한파다. 


찬 기운이 이마에 닿자 온몸이 욱신거린다. 30분 전까지 고민했는데 결국 가려고 했던 강연은 못 간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이제 날 괴롭히는 선생님도 없는데, 꼭 이렇게 아픈 날엔 그 말이 생각난다.  4시 30분, 아프지만 햇빛이 좋아서 카페에서 책을 읽을까 하다가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곧 나올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질까 봐. 


인터넷엔 2시간 걸려 찾아간 학교가 이름이 비슷한 다른 학교라는 글이 올라왔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캡쳐 아래에선 회초리질이 오갔다. '예비소집일이 괜히 있나 ㅉㅉ, 본인 잘못이지, 본인 책임이지.'


그중 눈에 띄는 댓글이 있다. 좋은 말을 해주지 못할 거라면 조용히 하는 게 도와주는 거라는 말을 들었다며 가장 죽고 싶고 잘못된 걸 아는 건 당사자인데, 저 사람의 실수로 피해 본 것도 아닌데 비꼬고, 매몰찬 말을 꼭 해야 적성에 풀리고, 쉽게 앞으로 인생을 점친다는 말. 


맞아.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떤 포기를 한다면 책임져줄 것도 아니면서. 다들 알면서. 



오늘도 옥상에선 망설인 사람이 있었다


1페이지, 수능 이후 비관해 삶을 놓은 학생의 기사가 올라왔다.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이 사람들도 뒤 페이지에서 그렇게 매몰차게 말한 사람들일까. 


오늘도 어김없이 라디오에선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6년, 아니 어쩌면 19년 인생의 반을 이 시험을 보기 위해 달려왔을 학생들 수고했다고 한다. 거짓말. 


예외는 없다. 수능을 보지 않는 선택은 없고, 수능이 삶을 결정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대학별로 차별한다. 더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지잡대 학생들보다 낫겠지란 말을 하고. 쟤들은 더 노력했겠지하고. 항상 더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고. 더 좋은 결과값을 내야만 한다고. 더, 더. 


그저 한 번의 시험이 아닐 뿐이지. 앞으로 더 많은 시험을 치러야 하고, 그 결과들이 나를 나타내는 말이 될 걸 알면서도. 앞으로 더 걱정할 일들이 많을 텐데. 그럴 때마다 응원받을 수 없을 수도 있는 거. 다들 알면서도. 


좋은 결과를 보답하지 않으면, 매몰차지는 거. 다들 알면서도. 


일반적인 길을 안 가도 그저 괜찮다는 말을 누구보다 듣고 싶은 때가 많을 텐데. 다들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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