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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즘 리플렉팅 Apr 14. 2020

누가 성공할 수 없대? <셀프메이드 마담 C.J.워커>

머리는 자유이거나 속박이 될 수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여러분. 이거 한 번 보세요. 전 약을 팔지 않습니다. 원료는 수입이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국산입니다. 이 글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혹시나 글을 읽다 작품을 감상하실 준비가 되셨다면, 멈추고 얼른 작품을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뭐 재밌는 거 없을까?' 하고 넷플릭스를 보던 중 익숙한 미용실 풍경의 비디오 썸네일이 보였다. 미용실에 관한 이야기라니. 미용실을 운영하는 부모님을 둔 자녀로서 지나칠 수 없었고, 홀린 듯 넷플릭스 소개글을 읽었다.

ⓒ Netflix

SELF MADE - MADAM C.J.WALKER

지문이 닳도록 빨래를 해도 동전 몇 푼인 인생. 멸시와 무시가 당연했던 날들. 그러나 그녀는 혼자 힘으로 일어선다. 백만장자가 된 흑인 미용사의 실제 삶을 그린 드라마.


'어떻게 미용사가 백만장자가 될 수 있지? 이게 실화라고?'


사람들은 미용사가 백만장자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할 수도 있을 테지만, 내겐 미용실은 전혀 그런 곳이 아니다.


흔히 미용실 하면 덤탱이를 씌우는 곳이라고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한다. 저렴한 원가에 기술비는 한없이 비싸지는 곳, 금가루를 뿌린 가위로 자르는 것도 아닌데 커트 가격이 5만 원인 곳, 여성인 경우엔 30만 원 이상의 머리를 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모르진 않는다. 남자, 여자에 따라서 가격 차이도 나고, '내 머리'에 대한 컨설팅보단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 시술을 강요받거나 그런 이유로 뜬금없이 혼나기도 하는 곳.


그런 미용실이 아니더라도 익히 알고 있는 차홍이나 이름은 선뜻 기억나진 않지만, 뷰티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미용사들의 친숙한 얼굴도 생각해보면, 유명세만큼이나 백만장자는 못돼도 큰돈을 만지는 미용 사업가가 되는 건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옛날 미용실 모습 ⓒ 중앙포토

하지만 내겐 조금 달랐다. 내게 미용실의 삶은 예술이나 부유함보단 가난과 동네 사랑방 같은 모습이었다.


부모님의 미용실은 20살에 제주에서 서울로 와서 독립을 시작하신 어머니가 처음으로 연 가게이다. 세련된 미용실이 아니다. 정말 옛날 동네 사랑방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자그마한 동네 안에서 작은 월세방을 얻어 미용실을 30여 년간 해오고 계신다.


엄마의 미용실은 재개발과 가난한 삶이 벅찼던 사람들의 잘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다녀간 곳이다. 강남이나 번화가에 위치한 크고 넓은 공간의 미용실은 아니지여전히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 곳이다.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찾아오거나 자원봉사로 어르신들의 머리를 잘라주시는 것에도 아낌없이 베푸시는 어머니의 큰손 성격 탓에 나는 이 '마진 없는 장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도 지켜봤다.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는 왜 그렇게 친절하고, 상냥한지, 진심인지 의아할 정도로 자기 손님에게 잘했고, 자기 기술을 사랑했다.


그런 어머니로부터 미용 기술을 배우라는 말과 행동의 압박을 많이 받기도 했다. 20대 중반엔 미용사 자격증을 준비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겐 미용실이란 공간은 예술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각박한 삶의 현장'처럼 느껴졌다. 매일 아침 일어나 부지런히 가게를 청소해야 하고, 가끔 진상 손님을 상대해야 하기도 하며, 월세를 낼 수 있을 정도로 마진을 남겨야 하는 경영자의 마인드도 갖춰야 하고, 믿을만한 직원까지 구해야 하는 곳. 그렇게 열심히 한다해도 돈벌이가 잘 될지는 미지수인 곳.


내게 미용실은 꿈이 될 수 없었다.

난 그래서 이 장면에서 눈물이 좀 날 뻔했다. 우리 엄마 같아서.  ⓒ Netflix

어머니가 손을 다치셨을 때, 깁스한 손을 움직이려 애쓰며 건물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달은 가게를 운영하기에 너무 치명적인 상해를 입었던지라, 혹시나 '5만 원'만 깎아줄 수 있냐고. 어머니보다 젊은 건물주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는 매몰차게 '안 된다'라고 했다. 건물주는 몇 번이나 바뀌었을지도 몰라도 30여 년간 한 번도 월세를 밀린 적 없던 어머니의 부탁이었다. 어머니의 성격 탓이더라도 그 한 달로 깎은 월세를 내내 유지하시진 않으셨을 테다.


어머니가 다치시면서 새로 들어온 임시직원은 도자기로 된 고가의 샴푸대를 깼다.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굴었다.


가끔 오는 담배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아저씨는 다방도 아닌데 올 때마다 어머니에게 커피를 타 달라 했다. 저 새끼는 손님으로 받지 말라고 해도 어머니는 당장 생계를 이어가야 하니 쓴웃음을 지으며 당신이 알아서 하신다고 하셨다. 어른들은 젊은 자녀보다 대처하는 법에 훨씬 유려하셨다.


내게 미용실은 꿈이 되기엔 너무 답답한 공간이었다. 어머니를 지켜봐 오면서 느낀 건 '미용사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소개글에도 반발심이 들었다. '미용사가 어떻게 백만장자가 돼….'라고.


그러던 내가 미용사가 백만장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이 한 줄의 대사 때문이었다.


"머리는 자유이거나 속박이 될 수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셀프 메이드 마담 C.J. 워커>는 '세라(마담 C.J. 워커)'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 Netflix
"꿈에서 보았다. 머리는 ‘미’이다. 머리는 감정이고, 우리의 유산이다. 우리의 본질과 우리의 과거를 말해주고 이상향을 나타낸다. 내 이름은 세라 브리들러브. 우리만의 헤어 제품을 만드는 게 목표다. 쉽지 않았지만 어떤 시련이 닥쳐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겠다."


세인트루이스, 1908년


한 흑인 여성이 도떼기시장 같은 곳에서 제대로 된 가판대도 없이 술통 위에 제품을 올려놓고 호객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애디 먼로의 마법 발모제! 한 캔에 50센트 마법의 발모제를 가져가세요!"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간절한 사연이 있을 것 같은 눈동자는 흔들린다.


지나가던 행인이 들어봤다면서 효과가 있냐고 묻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 "제 삶을 구했죠."라고 한다.


"머리는 힘이다. 머리카락을 잃는 게 어떤 건지 상상도 못 할 거다."

내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세탁부의 삶은 너무도 고되다. 손가락 살갗이 닳도록 문질러 동전 몇 푼 받는 삶. 하루 세끼 먹고살기도 바쁜 날들. 나중에는 희망을 놓은 듯했다. 꿈꾸는 법도 잊고, 그때 머리칼이 빠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술에 취해선 세라를 때린다. 머리칼이 빠져 듬성듬성한 머리의 자신을 거울로 보며 세라는 자신이 초라하다고 생각한다.


"신이 추한 걸 싫어한다면 왜 날 만든 걸까? 세상엔 미가 넘쳐나는데 내게 허락된 건 왜 이리 적지?"


울고 있는 세라의 집에 노크 소리가 들린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백인 여성(애디 먼로)이 잠깐 시간이 있냐면서 보는데 체념하다 집에 들어가는 세라의 듬성듬성한 뒤통수를 본다. 그것만으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삶의 무게에 애디는 도와주겠다고 한다.


애디의 발모제로 인해 세라의 머리는 다시 자랐고, 자신감도 되찾았다. 남편도 다시 얻었다.

남편의 이름은 CJ다. 절대 비비고가 아니다. (싸늘) ⓒ Netflix

하나의 거짓도 없는 세라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에 구경꾼들이 모여든다.


"그래서 내가 팔아보고 싶어"

머리 해주는 애디... 난 진짜.. 애디를 믿었다... ⓒ Netflix

세라는 애디의 발모제를 직접 팔아보고 싶어 연습한다. 손님이 황 냄새에 뭐라고 하면 어떡하냐는 방문판매 직원의 고민에 실제 이용자였던 세라는 발모제 특유의 황 냄새에 대처하는 법도 알려준다.


그에 애디 먼로는 "세탁부 ‘세라’도 터득할 정도면 너희에겐 식은 죽 먹기겠지."라고 한다. 은근히 차별하는 애디는 덧붙여 이 제품을 쓰면 자신의 풍성하고 긴 머리처럼 된다고 말하라고 한다. (과장광고다) 의아해하는 직원들을 두고는 일단 그렇게 해야 한다고. 우선 웃기만 해도 괜찮다고 한다.


세라는 직원들이 나가고 자기가 팔아보면 안 되냐고 한다. 그러면 영광일 거라고. 애디는 세라에게 너는 영업 판매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세라는 그렇지 않다고. 2년 동안 널 칭찬했고, 자신이 다른 손님들을 8명이나 데려오지 않았느냐고, 자신이 실제 경험자라고 해도 애디는 세라의 제안을 거절한다.


화가 난 세라는 말한다. 혼혈 애들 데려다 사기 치는 건 안 통한다고, 걔들 머릿결이 좋은 게 발모제 때문이겠냐고. 손님이 직접 효과를 본 자신을 봐야 제품의 값어치를 보게 될 거라고. 계속되는 세라의 설득에 애디는 세라를 개무시한다.


빡. 침. 주. 의. ⓒ Netflix
"유색인 여자는 뭘 해서든 내 외모를 갖고 싶어 해. 속으론 불가능할 걸 알면서도. 우리 거래는 명확하잖아. 빨랫값으로 두피 관리.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고. 뒤쪽에 빨랫감 봤지?"


세라는 빨랫감을 챙기면서 자신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싶어 애디의 발모제를 몇 개 가져간다. 그게 시장통에서 세라가 판매를 한 이유였고, 그렇게 사람들을 모이게 해서 판 돈을 세라에게 내 보인다. 이런 세라의 얘기에 애디는 크게 화를 낸다. 어떻게 믿었는데, 그걸 훔쳐 갈 수 있냐면서. 비수가 될 법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외출복을 차려입어도 방금 농장에서 나온 일꾼 같잖아. 이건 내 제품이야 너 같은 부류한테 일 못 맡겨."

세라는 주제넘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며 애디의 가게를 나온다.



새로운 삶을 위하여!

성공 한 스푼, 경험담 한 스푼, 실력 한 스푼 이얍-! ⓒ Netflix

세라는 애디의 발모제 대신 유색인종에 맞춘 자신만의 발모제를 만들기로 하곤 연구에 매진한다. 딸 릴리아는 이런 세라의 아주 좋은 친구이자 테스터가 된다. 세라의 발모제는 어느새 완성이 됐고, 어느새 애디의 견제를 받을 정도로 동네에 유명한 발모제가 된다.


더 욕심이 나는 세라는 더 큰 꿈을 그린다. 흑인 노동자가 많이 이주한 인디애나폴리스로 이사를 하자고. 미국에 3백만 명 이상의 흑인 여성이 있으니 발모제 한 통씩만 팔아도 백만장자가 되지 않겠냐며, 애디의 그늘을 벗어나 인디애나폴리스로 떠나자고 CJ를 설득한다. 기타 치며 주점의 꿈을 꾸는 존과 약혼하고 달려온 발랄한 딸 릴리아도 함께.


죽은 쥐가 나오는 허름한 주택에서 존과 시아버지를 비롯해서 온 가족이 세라를 도와 발모제를 만든다. 힘든 상황에도 세라는 가족에게도 임금을 줄 정도로 노동의 가치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난 명령은 안 듣지. 링컨이 40년 전에 해방시켜 줬거든." ⓒ Netflix
"(전 돈 드리잖아요.) 그러니 네 말은 듣지. *^^*(방긋)" ⓒ Netflix

직접 그린 일러스트로 광고를 만들던 CJ는 전단지에 더 매력적인 문구를 넣자며 좀 더 혹할 수 있도록 과장해도 좋지 않겠냐고 하지만, 세라는 단호하게 거짓 희망은 안 된다고 한다. 비단결 같은 머릿결은 장담 못 하니까 자신의 이야기나 추천사를 넣자고.


"신빙성이 있어야 제품도 팔려"

세라(마담 C.J. 워커)와 딸 릴리아 ⓒ Netflix

세라는 릴리아를 데리고 이사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방문 판매에 열심이다. 세라는 자신의 네 외삼촌들 다 이발사였다고, 미용은 우리 혈통이라며 릴리아에게 그게 어디 가겠냐며 물려받을 준비를 하라고 한다. (그 압박감 잘 알지….) 당시에도 여전했던 가부장제적인 남편에 기대고자 하는 릴리아에게 남편에게 기대지 말고, 자기만의 사업을 하라고도 한다. 릴리아는 특유의 유쾌함으로 방문판매에도 소질을 보이고, 그런 릴리아를 세라는 기특하게 본다.


마침내 <워커 헤어 살롱>을 열었다. 하지만 맞이하는 건 손님이 아닌 마당에서 우는 닭들 뿐…. 세라는 배워본 적 없는 공부를 한다. 경영책을 읽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손님들에게 줄 발모제도 준비하며 차곡차곡 사업을 진행할 준비를 한다. 온 가족이 투자한 결과를 망한 꼴로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남편인 CJ는 새 호텔에 취직해서 자신은 급사로, 세라는 세탁부로 일해도 좋다고 하지만, 세라는 다신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다며 더 독하게 군다.


2주 안에 만회해야 한다는 CJ와의 약속을 위해서 세라는 계속 전단지를 돌리며 발로 뛴다. 그리고 다시 시장통에 간다. 처음으로 자신의 영업 판매 실력을 보였던 것처럼.


"호외요. 호외! 읽어보세요! 흑인 잭 존슨이 '위대한 백인의 희망'과 세기의 대결을 펼친대요!"

Jack Johnson, Philipp Kester/ullstein bild via Getty Images(좌),  극 중 세라의 내면심리는 복싱으로 표현된다. ⓒNetflix

마치 그 시절에 잭 존슨의 복싱 경기가 유일한 희망이었을, 핍박받던 흑인의 삶에 세라는 도전장을 던진다.


당당하게 걷기~! 예예~! ⓒ Netflix

세라는 아무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세상 같은 시장통에서 머리 얘기를 좀 하자고 한다. 그리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흑인이라서 할 수 있는,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얘기를 전한다.


"Sisters! Let's Talk About Hair"

"머리는 자유이거나 속박이 될 수 있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누님.. 너무 멋지신 거 아닙니까. ⓒ Netflix

이토록 미용에 대해 멋진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세라의 진정성은 아이패드를 보고 있는 나뿐만이 아니라 시장에 모인 다른 유색인종이면서 여성인 주 소비자층의 마음을 건드렸다. 세라는 수익에만 집중한 것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이자 속박과 차별을 당했던 직접겪은 고통을 담아 지금 왜 이 이야기가 필요한지 말한다. 그 이야긴 세라 자신이고, 자신이 만든 발모제이다.


세라는 자신의 미용실에 오면 무료로 머리를 해주겠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호객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흑인으로서 흑인 모발이 얼마나 가꾸기가 힘든지 알기 때문에 진심을 담아 내세운 전략이다.


세라는 주류에 속하지 못한 편견 받는 집단 속, 한 개인으로서 자신이 속한 집단에 미치는 영향을 말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멋진 모습으로 잘 돼야 우리가 잘 될 수 있다고 진심으로 전한다. 오롯이 유색인종이라서 차별받고, 조롱받고, 죽임 받는 세상이었으니까. 그런 세라의 스피치에 감동한 행인들은 세라의 발모제를 선택한다.


순항 속에서 만난 거대한 파도 - 애디의 등장, 그리고 ….

너무 대박적 ⓒ Netflix

닭만 울던 세라의 미용실은 재료가 떨어질 정도로 호황을 맞는다. 세라의 사업 욕심은 점점 커진다. <워커 헤어 살롱>의 체인과 자신만의 유색인종을 위한 전용 제품을 만드는 공장을 세우고 싶다고 한다.


와중에 백인들은 공장 문을 닫고 떠난 인디애나폴리스에 불청객인 애디가 이사 온다. 백인 여성인 애디는 흑인 목사와 흑인 신자들이 많은 교회에 나와 새 신자 소개 때 갑자기 중앙으로 나와 당신들의 애정이 필요하다며 부엌 딸린 가게가 아닌 시내에 근사한 미용실을 오픈했다고 전한다. 갑작스러운 애디의 도발에 화가 난 세라는 화장실로 가 화를 식히며 거울을 본다.


화는 쉽게 가라앉질 않고 거울엔 잘되고 있는 헤어 살롱을 운영하는 근사한 모습의 세라 대신 세탁부 시절의 초라하고 볼품없던 세라의 모습이 비친다.

ⓒ Netflix

이는 <셀프 메이드 마담 C.J. 워커>에서 눈에 띄는 묘사이기도 하다. <셀프 메이드 마담 C.J. 워커>는 세라(마담 C.J. 워커)의 내면 심리를 정말 잘 표현했다. 세라의 마음에 펼쳐진 링 위, 세라의 맞은편 대결 상대는 자신을 무시했던 '애디'다. 이는 곧 백인이자, 자신을 무시하는 모든 것들로 표현된다. 세라는 흑인으로서 무시당할 때, 애디의 말을 떠올리고 이는 펀치로 위협받는 세라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인디애나폴리스로 이사를 오고 애디의 그늘을 벗어났어도 마음에선 벗어나지 못한 트라우마인 애디는 계속 세라의 마음에 머물러 있다. 자신감이 없어질 땐 세탁부의 삶을 살며 고난의 연속이었던 초라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초라해질 때마다 떠올리는 애디와의 기억은 곧 세라의 트라우마이며 PTSD 트리거로 작용한다.


세라의 치열한 삶은 잭 존슨의 대결처럼 펼쳐진다. 세라는 무너질 듯한 순간마다 더 강하게 일어선다.  

<셀프 메이드 C.J. 워커>를 볼 때마다 감탄했다. 어쩜 이렇게 감정을 잘 표현했자? 미친 연기다. 미친 대사! 미친 연출! ⓒ Netflix

세라는 거울을 부수고 화장실 밖으로 나온다. 이내 결심한 듯 "형제, 자매님들!"을 외치며 사람들 속에서 승부수를 던진다. 발모제는 1+1에 해주고, 선착순으로 머리는 공짜로 해주겠다고.


너무 열중했던 탓일까. 사위인 존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세라의 주택 겸 미용실에 폭발 사고가 일어난다.

부푼 꿈을 키우고 있던 세라와 그런 세라를 위로해주는 C.J. ⓒ Netflix

여기서 개 빡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폭발사고 현장에 소식 듣고 왔다며 애디가 나타난다. 그냥 등장한 것도 모자라, 대피한 세라의 미용실 손님들에게 세라의 미용실이 복구될 때까지 도울 거라며, 자신의 미용실에 오면 머리를 공짜로 해주겠다고 한다. 애디는 그 모습을 발견하곤 네 속을 모를 줄 아냐며 애디에게 쓴소리를 한다. 지칠 법도 한순간에 세라는 자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반드시 잘 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세라는 저돌적이고, 추진력 있는 사업가다. 이를 탐탁지 않아 하는 당시엔 더 했을 가부장제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성 캐릭터들의 내면 묘사는 세라의 모습을 더 선명하게 하고, 극의 현실감을 더한다.

눈부시네요. 누님. ⓒ Netflix

세라는 공장 건설과 함께 사업을 확장하고자 지역 사회에서 제법 권위가 있는 부커의 보증을 받으려 전미흑인사업자연맹에 나선다. 남자들이 대부분인 연맹에 껴서 부커를 만나고, 자신의 사업에 대해 연설할 수 있는 발언권을 얻고 싶어 하지만, 흑인 여성인 세라에게는 기회의 'ㄱ'의 획을 시작하는 어떤 점 하나 조차 오지 않는다.


백인이 흑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분리와 평등을 얘기하고, 제아무리 성공하고 싶은 백인 여성 애디도 권위적인 남성들이 모인 총회에선 그저 예쁘장한 백인 여성으로만 곱게 소비된다. 애디는 단상에 올라섰다가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드레스 입은 예쁜, 이 앞에서 복권을 판매할 여자'란 소개만 받고 내려갔다.


"우리는 남자들 세상에 살아요. 마음 맞는 여성들과 화합할 기회라면 언제든지 함께하겠어요. 우릴 피해자로 몰지 말아요. 우리가 선택한 자리니까."


한 번의 연설 시간이 지나 C.J. 는 세라에게 보증을 받기 전에 부인들의 모임에서 인맥을 만들어보라고도 하지만 세라는 여기 사업하러 왔지 부엌에서 샌드위치나 만들고 싶진 않다고 한다. 세라는 우연히 부커의 부인인 마가릿 워싱턴을 만나 모든 여성에게 가격 부담 없는 살롱을 만들고 싶다는 자신의 포부를 전한다. 그리고 나름의 전략을 짰지만, 실패하고 만다.


세라는 마가릿 워싱턴에게 모임을 요청하며 흑인 부인들끼리만 나눌 수 있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흑인 여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세라는 부인들에게 남편들 보다 총명하지만 목소릴 내길 두려워하지 않냐고 현실적인 상황과 두려움을 꼬집어 말한다. 세라의 저돌적인 발언에 부인들은 자신들을 피해자로 몰지 말라고 한다. 자리를 뜨려는 부인들을 붙잡고 세라는 자신의 두려움을 말한다.


"물론 저도 두려워요."

(우린 남자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선택지가 없다는 말에) 세라(마담 C.J. 워커)의 말ⓒ Netflix
"왜 주저하는지 알아요. 우린 우리 남편들이 폭력을 행사할까 두려워하죠. 때로 침묵만이 유색 여성이 기댈 수 있는 안식처죠. 그러나 전 마침내 제 얘기를 전하게 됐고, 더는 침묵할 수 없어요. 안해요!"
ⓒ Netflix

세라는 결국 발언권을 기다리지 않고, 단상 위로 나간다. 자신이 만들 여성 기업은 일자리 창출뿐만 아니라 흑인에게 기회를 주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언제나 그랬듯 세라는 진정성 있는 스피치로 관중을 압도한다.


디저트를 들고나온 여러분의 아내를 보라며 뒤에서 썩히긴 아깝지 않냐고, 자신이 만들 여성기업은 진정으로 흑인의 지위를 상승시킬 것이라고 한다. 


세라(마담 C.J. 워커)는 단단한 가부장제와 차별 속에서 틈을 만들고, 틈을 넓히려고 한다.


애디도 이런 세라를 인정하는지 먼저 박수를 친다. 훌륭한 연설 같은데 워싱턴은 세라를 무대 뒤편으로 데리고 나가 경솔하다고 평가한다. 유색인 인종이 결국 따라 하려는 것은 유럽식 미(美)가 아니냐며, 흑인 여성이 남성을 능가하는 것은 아무도 원치 않다고 말한다. 세라는 이건 경쟁이 아니고, 모두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방법이라고 설득하지만, 부커는 흑인 남성의 지위가 우선이라고 한다. 모발 관리사를 보증할 바엔 소금쟁이나 보증하겠다고. 아까 경솔함만 봐도 여성이 어찌하여 자기 자리를 지켜야 하는지 봐야겠다고 한다. (심한욕) 이런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니…. 나도 모르게 회의감이 다 들었다.


워싱턴(부커)의 말은 당시 시대적으로도 더 심했을 '가장'이자 '남성'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특히나 세라가 더 진취적으로 사업에 몰두할수록 실질적인 가장이 아닌 C.J.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자신의 남성성을 찾고 싶어 한다.


세라의 곁에는 랜섬이나 세라를 인정하는 남성들이 있긴 했지만, 가까운 남편을 비롯해 이웃, 처음보는 남자에게까지 무수한 견제를 받아야 했다.


틈틈이 세라의 흠을 노리는 사람들 틈바구니 안에서 세라는 유색인 최초로 핫콤과 글리신을 10센트 상점에 올릴 계획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미용학교도 열고, 강연도 열고 유색인들에게 교육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계획한다.


<셀프 메이드 마담 C.J. 워커>에서 여성 캐릭터인 세라(마담 C.J. 워커)>는 오로지 '어머니'의 모습을 한 여성의 역할로만 소비되지 않는다. 그는 '전문가'다. 사업가 기질이 있는 사람이다.


극을 계속 보다 보면, 아무래도 여성 서사를 비롯해 성공 신화에 관련된 다른 작품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바로 다음웹툰 원작의 JTBC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와 작년에 재밌게 봤던 <동백꽃 필 무렵>이 그것이다.  


<셀프 메이드 마담 C.J. 워커> VS <이태원 클라쓰>, <동백꽃 필 무렵>

무엇이 무엇이 똑같고 다를까 (왼쪽부터) <셀프 메이드 마담 C.J. 워커> ⓒ Netflix,  <이태원 클라쓰> ⓒ JTBC, <동백꽃 필 무렵>  ⓒ KBS

밑바닥부터 올라온 성공 서사의 <이태원 클라스>와 비교

ⓒ 카카오페이지

<이태원 클라쓰>를 알게된 건 영화관이었다. 올해 초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영화관의 넓은 화면으로 예고편을 봤었다. 인상도 참 강렬했던지라 난 처음에 조이서(김다미 분)로 이태원에서 일어나는 클라쓰가 대체 어느 정도길래 저렇게 웅장하나 싶었다. 코로나가 터진 후 집콕을 하며 그때 예고편이 생각나 넷플릭스에서 첫 화를 보고, 흥미로운 배우들의 연기에 무료로 풀린 웹툰까지도 챙겨보며 드라마를 정주행했었다.


정주행을 너무 몰입해서 한 탓일까 과거에 부조리에 맞섰던 기억에 악몽까지 꿀 정도로 열심히 봤는데, 중후반으로 치닫을 수록 이건 부조리에 맞서는 박새로이의 성공 서사라기 보다는 <원피스>의 한국버젼 같았다. (feat. 너, 내 동료가 돼라 = 너 나와 함께 일하지 않을래?)

한 쪽은 원양어선을 탔었고, 한 쪽도 배를 탔었네.... (좌) <이태원 클라쓰> ⓒ JTBC, (우) <원피스> ⓒ Eiichiro Oda.
(좌) <이태원 클라쓰> ⓒ JTBC, (우) <원피스> ⓒ Eiichiro Oda.

초반에 <이태원 클라쓰>는 손현주의 연기로 과몰입을 할 정도로 드라마에 흡입력이 있었는데, 손현주가 없어서 그랬을까 중후반으로 갈수록 집중하기 어려웠다.


초반과 비교해 연기도, 대사도 너무 진부했다. 비슷한 연령대에 캐릭터들의 입체적인 선택과 서사가 시작되면서 배신과 동료애를 그리는 장면들이 등장했는데, 장면들 속 배우들의 화를 내는 모습이 비슷했다. 점잖게 있다가 갑자기 화를 내는데, 그 톤이 전부 박새로이(박서준 분)처럼 되어선 나중엔 '이렇게 화내겠지?' 하면 그렇게 화를 냈다.

"나느으흔!!! 이렇게 어쩌구 할테니까..." <이태원 클라쓰> ⓒ JTBC

점점 비슷한 캐릭터들의 연기 톤을 비롯해 나중엔 멋쩍어지면 머리를 벅벅 긁는 박새로이(박서준 분)와 '난 장가의 사람'이라는 말의 지긋지긋함, 소시오패스의 조이서(김다미 분)는 너무 멋있고 쿨하게 그려지는 모습에 학을 뗐다.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됐는데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간직한 박새로이는 더 이해가 안됐다. 너는 너의 선택을 한 거라며, 자기는 그런 거 신경 안 쓴다고 하는데, 절친이었으면 손절했을 모습이다. (몇 개월, 1년은 참아줄 수 있어도 저건 아니지. 자기 아버지가 누구 손에 어떻게 죽었는데)


작년에 재밌게 본 여성 서사의 <동백꽃 필 무렵>과 비교

ⓒ KBS

작년 말 브런치에 리뷰를 남기면서 나는 <동백꽃 필 무렵>이 어머니로서만 소비되지 않고, 동백이는 동백이 대로 자신의 삶을 헤쳐나갔다고 만족했다는 평을 했다. 하지만 <셀프 메이드 마담 C.J. 워커> 속에서 강인한 세라의 모습을 보며 <동백꽃 필 무렵> 속 사람으로서 다면적인 역할을 해내는 여성의 모습이 너무 부족하게 느껴졌다.

<이태원 클라쓰> ⓒ JTBC, <동백꽃 필 무렵>  ⓒ KBS

물론 이 두 작품이 실화가 아니라는 점을 비롯해 <셀프 메이드 마담 C.J. 워커>는 10회 이상 넘어가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점, 로맨스 물이 아니라는 점 등 형태상의 다른 점은 있긴 하지만, 주 전개 요소인 성공 신화나 여성 서사로서의 맥락으로 따지고 본다면 <셀프 메이드 마담 C.J. 워커>와 두 작품은 전개에 있어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


인물을 다면적으로 비추는 자연스러운 표현 맥락에서부터 시작해, 배우들의 연기 그리고 다양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의 개성들로 이루어진 <셀프 메이드 마담 C.J. 워커>는 한국 드라마가 잘 팔리는 로맨스에만 머물고 있진 않은가 생각하게 만든다.


ⓒ Netfilx

만약 넷플릭스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렇게 가슴 뛰는 사랑스러운 인물과 이야기를 모른 채 미용은 그저 진부하고, 따분하게, 거짓 아닌 진실로 살아남긴 어려운 이미지로만 남았을 테다. 


세라의 추진력이나 억척스러울 정도로 사업에 몰두하는 모습이 멋있긴 하지만, 단순히 멋지게 그려진 고군분투만이 이 작품을 감사할 정도로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미용'이란 낯선 주제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나는 그간 주류에 속해 본 적 없던 사람의 따뜻한 성공이 너무 그리웠다. 우리들을 위하는 사람이 사랑에만 매몰되어 있지 않았고, 침묵 대신 소신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한 사람 그 이상의 서사를 너무 잘 담아냈다는 점도 이 작품을 특별하게 한다. <셀프 메이드 마담 C.J. 워커>엔 새로움이 가득하다.


<이태원 클라쓰>에서 박새로이가 부조리에 소신 있게 대항하는 모습이나 <동백꽃 필 무렵> 속 악당은 대낮에 향미 500잔에 맞고 쓰러지거나 하는 모습 등 두 작품에 호기심을 갖게 된 흥미로운 지점들은 분명 있다. 기존에 한국 드라마에서 그려진 매력적인 '젊은 여성'이 아닌 삶으로서 매력적으로 다가온 동백이의 모습에 끌렸던 것처럼, <셀프 메이드 마담 C.J. 워커>를 보고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되었다. 작품을 보기 전과 후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이 작품은 흥미롭고 매력적이다. 그런 점에서 비교한 국내 두 작품에서 주 서사를 이끄는 장치 중 '로맨스'의 비중이 컸다는 점은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셀프 메이드 마담 C.J. 워커>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라는 것과 4회로 끝난다는 점에서 자본과 단발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는 것을 무시할 순 없겠지만, 국내에서도 좀 더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 표현기법을 보고 싶은 바람이다.

ⓒ Netflix

이토록 가슴 뛰게 만드는 마담 C.J. 워커의 이야기는 넷플릭스에 있다. 미용에 관해 새로운 관점을 갖고 싶거나 세라(마담 C.J. 워커)가 어떻게 백만장자가 될 수 있었는지, 그의 소신 있는 태도가 궁금하다면 지금 당장 넷플릭스에서 <셀프 메이드 마담 C.J. 워커>를 보자.


♬ 오늘의 선곡은 다 알고 들으면 소름 돋고 박수치게 되는 LATASHÁ의 <Who I AM>

This is who I am, This is what I do, This is who I am,  I'm the living the proof.
<SELF MADE - MADAM C.J. WALKER> ⓒ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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