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살아있기 위해선 '세상'이 필요하다.
'한 사람만 있어도' 이 말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방법을 말할 때 자주 쓰인다. 이 말은 틀렸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필요하다.
혼자 끊임없이 울어야 했던 사람들을 보며 사회는 마치 관찰 예능처럼 한 마디씩 던진다. '한 사람' '그 사람의 얘기를 들어줄 한 사람만 있었어도…' 상투적이다. 이젠 자연스레 그다음 말도 안다. '맞아요' 아니. 그건 틀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들어줄 한 사람은 지쳐간다. 부담이 된다. 그다음으로 넘어가려면 '세상'이 필요하다. 세상에선 ‘나'의 존재가 필수다. 그다음은 사람들의 '동료애'와 같은 대화들이다. 일상이 필요하다.
강신주 작가는 어느 강연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사람 안에서 질문이 곪아 썩으면 죽는 것이라고.
믿었던 세상에서 존재가 지워진 사람은 세상에 질문을 던진다. '왜'
'왜'라는 질문은 계속 곪게 된다. '왜'란 물음 안에서 '살아 있음'은 곪아 썩어간다. 그렇게 또 어떤 사람의 존재가 지워졌다. 오늘은 어떤 사람의 존재가 지워지고 있을까.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이라는 이 문장에서 봐도 아이 하나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한데, 어른이라고 다를까. '사람'이 살아 있기 위해선 마을이 필요하다. 세상이 필요하다.
소수라 일컫는 메시지를 던진 사람이 '영웅'처럼, '아이콘'처럼 하나의 캐릭터가 되지 않길 바란다.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기 위해서 '용기'내지 않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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