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리즘 리플렉팅 Oct 30. 2018

 다음 기회에

'청년'이란 이름으로 무의미해지는 때가 있다. 존중과 무시 그  사이에서

2018.10.29. MON

프로그램 중간보고서



나는 오늘 불편한 모습들이 있었다.

그간 불편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울던 모습, 묘하게 뭘 그렇게 적냐는 질문이 별로라는 생각이 들던 나, 짧게라도 물어본 질문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마음이 쿵 내려앉은 느낌.


저자는 “딱 내게 제한된 시간이 있다.” 이 정도를 온 몸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시간을 더 오버해서 더 이상 소비하고 싶지 않은 사람. 어쩌면 조금이라도 도움줄 수 있을지 모른다라는 걸 은연중에 알만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무게와 시간은 너무 의심스러우니 어쩌면 그의 몸짓과 말투에 박힌 뼈같은 표현들은 자신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그 사람의 완곡한 거절이었을지 모른다. 그냥 적당하게 지내는 사람. 어쩌면 적당함보다 부족할지도 모르는 사람. 그래서 이 시간부족에 대한 원인을 생각하며 탓을 돌려보았다.


외부인들의 입장, 애초에 정해진 시간보다 짧은 시간. 이 모든걸 애초에 계획된 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과 운영진들. 그렇게 탓을 해보지만 원하는 대로 마음이 풀리진 않는다. 애초에 원했던 마음은 그 질문에 대한 간단한 대답이라도 해주길 바랐던 마음이었으니까. 애초에 청년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고, 현재 쉼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는 어른들의 이야기였을테니까. 그래서 애초에 대상이 아니었던 외부인에 대한 주목들에 대한 불평들을 해본다. 그래도 마음이 풀리진 않는다. 질문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질문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 어차피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던 거라고.


그래서 오늘 배운대로 똑같이 생각해본다. 내 느낌은 정확하고 옳다했으니까 지금 거지같은 내 기분은 옳다. 저자가 전한 말처럼 ‘전문가라고 기대하지 말 것.’에 대한 이야기도 떠올려본다. 전문가보단 때론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것 말이다.


불평드는 마음에 ‘그래도’란 말을 덧 붙이고 속는 셈 치고 책을 사보기로 한다. 생돈을 날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이 갖고 있던 문화상품권을 충전했다. 그 사람이 자신의 책을 말할 때 만큼 있어보인 진정성이 거짓이 아니길 바라는 직감을 믿으면서. 하지만 끝나고 나서 그렇게 질문을 단호하게 거절하던 모습은 잊지못할 것 같다. 길지 않은 질문이었는데. 그렇게 까지. 한 마디도 못해줄 다음 시간을 기약하는 사람이 주는 ‘다음 기회’라는 건 내게 지금은 곧 ‘꽝’이라는 말과 같은 거니까.


'청년'과 무소속이 밝힌 외형차별  


'청년'이란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듣다보면, 청년이란 이름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존재로서 충분함을 우리는 확인받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상 강연이 끝난  돌아선 백스테이지서 이면을  때가 많다. 강연이 끝난 무대 아래에 섞인 사람들은 여전히 청중인 관중과 강연자다. 우리는 청년이기 이전에  사람으로 존중받는게 아니라,  프로그램을 들으러  '청년'이란 이름 아래 ''같은 판단을 당하고, 교묘하게 무시섞인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과연 내가 여기서 '어른'으로서  것이었다면 어땠을까. 길을 지나가는 시민이란 이름보단 조금 존중받는정도, 격식있는 컨퍼런스의 직위있는 사람들이 아닌 그저 삶을 찾아가는 20대의 사람들, 대학의 이름표 없이  사람들, 무차별해지고자  곳에서 우리는 차별화된다. 소중함이 아니라 그저 가벼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되기도 하고, 어차피 실패할 사람들이란 낙담의 용기를 얻기도 한다. 조금 그냥 나은정도의 사람들.


때론 표현을 숨기는 사람은 몸짓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런것들은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이고, 옆에 사람이 그 무심함에 너무 놀라 보여도 주변이 너무 소란스러운 나머지 우리가 받은 느낌은 흩어지는 말들 밖에 되진 않는다.


우리는 정해진 일정 아닌 당신의 일정때문에 조정당했다. 그건 여기 참여자들의 배려였을테다. 당신의 강연을 너무도 듣고 싶었던 사람도 있었을텐데. 원래 날에 더 큰 일정이 잡혔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그 배려가 당연한 것은 아니다.


당신이 쉽게 뱉은 '다음 기회'라는 건 사실상 너무 막연했고, '언제든지'의 문은 우리에겐 열려있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5분 후] 예고편 그리고 세월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