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오래된 마음의 부채이다.
2021년 10월 8일
내가 아는 고양이 이야기해줄게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에게 "움직일 수 있다면"이란 질문을 하고,
'기적'이란 희망을 함부로 이야기하고,
쉽게 날아가는 이야기들을 붙잡고 싶어 했던 검은 고양이 이야기 말이야.
검은 고양이의 이름은 'K'
"아는 요양원이 있어. 이번에 학교에서 장학 프로젝트를 하는데, 너가 인물 크로키하는 걸 좋아하면, 그걸로 신청해봐. 장학금도 타고, 좋은 일도 하는 거야. 내가 아는 요양원에서 말이야."
"무슨 노인이 책을 읽니! 거기 요양원에 들어온 사람들은 다 치매환자야. 책 같은 건 관심도 없어. 수요를 따질 줄 알아야지."
디자인과에서 경영학과로 전과한 지 한 달 차, 졸업전시로 분주한 학기를 보낼 무렵. 좋은 제안이었다. 단골 카페에 친구 사사와 머리를 맞댔다. 조금 전에 시킨 것만 같은 아이스 라테는 반도 제대로 못 먹었다. 얼음 잔 표면에 송골송골 맺힌 물들이 떨어져 나무 코스터를 붉게 물들였다.
"그래! 책으로 하자! 어르신들을 인터뷰하는 거야! 내가 메이크업 교육도 받았으니까 화장도 해드리고!"
"전, 카메라 있으니까 사진이랑 영상 담당!"
그렇게 듀오로 결정됐던 우리들의 계획은 보건교사 은영이가 젤리를 찢듯 찢어졌다.
"애들아. 머리를 좀 써라. 둘이 각각 하면 100만 원이잖니."
여전하구나‥. 맞는 소리 같기도 한 교수의 말이었다. 정의와 철학을 물을 때, 아프리카로 봉사 활동하러 가서 행복을 느껴보라고 한 사람은 여전했다. 100만 원이란 액수도 어쩜 이리 똑같은지.
"너, 그렇게 살지 말아라. 나니까 얘기해주는 거야. 너네가 돈이 걸려 있어서 이따위로 하는 거야."
교수는 자신의 손아귀에서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팀이 되지 말라고 찢어 놓았으면서, 모처럼의 휴식을 방해하고, K가 하지 않은 잘못을 넋두리하듯 탓하는 전화를 하고, 돈 때문에 우리가 성실하지 못하다고 화를 냈다. 왜?
정말이지 그만두고 싶을 때, 요양원으로 떠났다. 마침 정의론 수업에선 공리주의 이야기도 들었겠다. 정말 그만 둘 이유는 차고 넘쳤다. 사사 친구가 K의 어깨를 두드렸다. 조금 더 해보자고.
그렇게 도착한 요양원은 정말 치매환자로 가득해 보였다. 책 같은 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적막함과 분주한 요양보호사 선생님들로 가득했다. 교수가 준비해온 플랜카드 아래로 펼쳐진 풍경은 K의 몸짓까지 포함해서 모든 게 학교 홍보 이용자료로 쓰일 것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분주하게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어르신들을 화장해드렸다. 솔직히 무서웠다. '책은 필요 없는 이들' '치매 환자'인 사람들을 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치매 환자로 분류된 어르신이 K에게 '언니 이야기'를 해주기 전까진 말이다.
'치매 환자'와 '책을 읽지 않는 이들'은 교수의 생각이고, 선입견이었다. K는 상급자에게 시달려서 지친다는 핑계로 멍청하게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사람이었고 말이다.
"지금 만날 어르신은 치매세요. 말도 잘하셨었는데, 이젠 말수도 적어지셨어." 아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그래. 사람 이야기를 만나기 까진 말이다.
"죽었어... 옆 자리에 있던 언니가...
너무 보고 싶어. 너무 보고 싶어...
그래서 말하기가 싫어..."
자, 이제 누가 치매 환자지? 사람들이 붙인 네임택을 덥썩 문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부끄러운 마음을 안고, 그림을 전달하러 또 다른 날에 온다는 말과 함께 다른 방을 들어갔다. 그곳엔 침대가 세 네가 있었고, 구석진 곳엔 흥미로울 게 없어 보이는 이야기가 들리는 TV가 켜져 있었다. 문을 열자 보인 창가를 향해 나있던 침대 위 어르신에게 인사를 드렸다.
고작 20대 중후반 된 우리들에게 어르신은 끊임없이 존대를 해주었다. 학교란 곳에서 갈기갈기 찢어져서 온 마음들을 어루만졌다. 뭉클한 마음보다 이젠 가야 한다는 소식이 앞섰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그림 완성되면, 올게요!"하고 요양원을 나섰다.
"언니, 오길 잘한 것 같아요." "맞아..." 근처 끼니를 때우기 위해 올라선 버스에 저녁 노을빛이 들어서고 있었다.
부끄럽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교수님은 실패하셨어요. 저흰 돈 때문에 이따위 말들을 들을 필요 없어요."라고 말하고 싶던 때때로의 마음들을 억눌러가면서, 그림을 그렸다. '아는 요양원'엔 어찌 이리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서 혼자서 움직일 수도 없었다.
대나무 숲에 소리치고 싶은 억울한 말들과 부끄러운 마음들. 여러 가지 마음에 추를 달 수 있다면 K는 그 무엇을 세워도 아래에 있을 것이다. 끝끝내 완성된 그림을 들고 전해드리러 갔을 땐 다행히 사사 친구와 단 둘이라 창가에 계시던 할머니와 오래 이야기할 수 있었다.
K는 마치 무엇이라도 된 듯이 갑자기 할머니를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자유롭게 갈 수 있다면,
어딜 가장 가고 싶으세요?"
할머니는 뇌졸중 충격에 신경계를 크게 다쳐서 하반신을 못 쓰시고 계셨다. K는 미쳤다. 이런 질문을 하다니, 거듭 죄송하다는 말에 할머니는 미소를 보이시며 창가를 바라보셨다.
"먼저 간, 남편 산소에 가고 싶지요.."
할머니의 마음속 오래된 사랑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한국전쟁 때 시작된 인연으로 이어지게 된 이야기들. 할머니는 이야기 곳곳에서 웃으셨다. K는 할머니 오른편에 앉아 울고 있었다.
어젯밤 아이유의 <밤 편지> 뮤비를 봤어서 그랬을까. 그 노래가 너무 좋았어서 그랬을까. 할머니의 이야기들이 마치 <밤 편지> 속 소녀로 보였다. 사랑하는 마음에 혹여 잠에 깰까 조심스레 보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는 사람의 이야기처럼, 할머니는 창가를 보며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리저리 허락받고 움직여야 하는 공간에 들어선 K와 사사 친구는 어수선한 방에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붙잡고 싶었다. 어르신의 따님은 요양보호사로 취직을 하셨단다. 거봐. 교수가 틀렸다. 누가 그들을 '치매 환자'로 '책은 필요 없다'했나. 무엇보다 기록이 필요한 이곳에서 많은 이야기와 이름은 쉽게 지워졌다. 옆자리에 친했던 언니의 이름을 부르며 그리워하는 이, 복도에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 모두 '노인'이란 이름으로 지워지고 있었다. '날 받아 놓은 사람들만 있는 곳'이란 바깥의 선입견은 K였고, K는 진짜 이야기가 있는 그들의 공간에 들어선 것이다.
그 주에 본 근처 독립 책방 매대엔 마지막 날들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을 기록한 책이 있었다.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란 띠지와 함께. 우리는 이 매대에 올라갈 수 있는 '독립 출판물 1위'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르는, 아니. 그러지 않아도 좋았을 기록집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수요'가 뭐란 말인가.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소거된 수요는 정말 수요가 아니었다. 현장에 가지 않으면 몰랐을 이야기들을 멋대로 판단한 상급자의 말로 대신했다.
처음부터 이들의 이야기들을 기록했더라면, 치매가 있단 이유로, 거동이 불편하단 이유로 사람들은 오징어 게임의 1억처럼 쉽게 사라졌다. '이렇게 살다 갈 삶'이란 결론 속에서 사는 사람의 삶. 늘 부끄러웠다.
그래서, 늘 마음에 부채를 안고 살았다. '기록'이란 말은 강박처럼 K의 마음에서 꿈틀거렸다.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이야기들이 무엇인지 발견하려고 늘 초미세망원경처럼 굴었다.
고맙다고 손을 꼬옥 잡아주실 때마다 K는 잊혀져가는 옛사랑 노래와 같은 진부한 것들이 새롭게 느껴지고 K가 딛고 있는 모든 것들이 새로워졌다. 그때마다 K는 자신이 더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렸다. 그런 말씀을 드릴 수 있어서 기쁘고 행복했다. 그 기억을 안고 살았다.
그렇게 2020년이 왔다.
취업이란 물살에 휩쓸려 방에서 빨래만 널고 있던 겨울, 우연히 흘러나온 라디오 코너에 사연을 보냈다가 생방송으로 전화연결을 하게 됐다. 고정층이 확실한 그곳에서 K는 확실히 튀는 색이었다. 한 해 시작이 좋다고 생각했다. 작가들은 분주하게 아주 빠르게 사연을 정리해주었다. K는 신이 났다. 전국에 내 목소리가 나가다니! 이름과 사연이 흘렀다니!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을 쯔음, 작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 저희 코너에 '참 좋은 당신'이라는 코너가 있거든요. 혹시 들려주실 만한 사연이 있을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네! 당연히요!"
2021년 10월 8일
이것은 오래된 마음의 부채이다.
이 영상은 하반기 시험의 결과가 어떻더라도 앞으로 가고 싶다는 바람이자 다짐이다.
라디오로 전국 각지에 할머니의 이야기가 들렸고, 부채감은 덜어졌다 생각했지만, 오롯이 K만의 시선으로, 손길로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고 싶은 욕심은 여전했다.
"영상으로 만들어야지. 만들어야지." 하는 새에 유튜브 업로드를 위해 연락드린 따님으로부터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일주일은 허영심과 선민의식을 걷어냈다. 혹시나 떨어져도 계속 영상을 할 것인가 물었다. 그 이후 일주일은 차곡차곡 시퀀스에 영상을 올렸다.
K는 우주에 남아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는 이제 필요가 없어져버린 로봇처럼 수요 없는 공급을 하는 것 같았다. 여전히 '수요'를 걱정하고, 2017년 이후에 배운 '소구점'이란 있어 보이는 당위성들을 찾으려고 했다. 모든 허례 의식을 걷어내고, K는 모든 기록의 시작에 있던 인물 만을 생각했다.
K는 혼자만의 시사를 거듭하며 5번 연출을 바꿨다.
신상을 드러내는 것이 두렵지만, 영상에 할머니만을 내보이는 건, 할머니를 외롭게 만드는 결정 같아 그냥 얼굴을 공개했다.
혼자서 모든 결정과 물을 길 없는 질문들이 고이고 쌓였다. 수요일에 <유퀴즈>를 보면서 하루 종일 못 먹었던 끼니를 때우며 아침까지 편집을 했다.
"다시 올게요. 또 올게요."라는 말들이 어르신에겐 "안녕"이라는 것. 땅만 바라보던 이가 고개를 들고 미소를 보이게 하는 것. 자신을 보이는 자리에 나왔어도 계속해서 타인들의 삶의 이야기를 하는 이들의 끈끈한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바라보며 부끄럽고, 아팠다. 모순적이게도 이는 동력이 됐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봐줄까 보다, '더 늦지 않게'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게 지금 K의 일이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달려 나가는 검은 고양이처럼 K는 달리고 달렸다.
K는 Knight(기사)의 약자였다.
검은 고양이, K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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