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 Ⅱ 후기
문방구 앞 동전 게임기에서부터 수백 가지의 팩 게임과 PC 게임 그리고 현재의 모바일 게임까지. 게임을 안 하고 산 시절이 없었다. 8비트의 게임 음악에서부터 오케스트레이션이 화려한 음악까지 게임 음악 곳곳엔 노스탤지어가 배어있다. 지난 11월 29일, 30일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음악 오디세이: 천하제일상>이 열렸다. 국악관현악으로 다시 태어난 거상을 듣고 왔다.
온라인 게임이 한창 부흥했던 때에 <천하제일상 거상>(이하 거상)도 그 자리에 있었다. 온라인게임 중 가장 오래 정붙이고 한 게임 중 하나가 거상이었다. 스타크래프트엔 재미를 못 붙였지만, 거상은 왠지 재미있었다. <바람의 나라>가 정액제로 유료화된 이후로 학생 신분으로 비슷한 정서를 즐길 수 있는 MMORPG 게임은 <거상>이 유일했다.
음악의 서사를 알려준 게임, <거상>
MP3 플레이어가 없던 그 시절, 음악을 듣는 방법은 한자리에서 계속 듣는 것이었다. 부모님이 CDP를 사주시기 전까진, 테이프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DJ의 소개에 맞춰 녹음하거나, PC로 틀어놓고 모니터를 끈 다음 이부자리에 누워 한참을 볕 좋은 내 방 한구석에서 음악을 들었다. 지금처럼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편리함은 없었지만, 왠지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불편함은 소중했다. 나름의 고단한 하루가 끝난 날이라던가 시험이 끝난 날엔 집으로 얼른 돌아가 음악을 듣는 풍경을 그리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학창 시절 나의 오후는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시험도 없는 여름 방학 오후, 나의 방을 메우던 음악은 거상 필드 음악이었다. 게임의 흐름이 끊기면 안 되기에 전투를 제외하고 멀뚱히 캐릭터를 세워 놓곤 밥을 후딱 먹고 오기 바빴다. 그럴 때면 스피커에선 필드 음악이 흘러나왔다. 한참을 가만히 있으면 음악은 고조되거나 예상할 수 없던 음악으로 넘어갔다. 나름의 서사가 있었다. 어린 시절, 게임 음악이 제법 길다는 사실은 호기심을 부추겼다. '여기선 어떤 음악이 나올까?' 궁금함으로 음악을 듣기 위해 다른 나라로 가 한참을 서 있기도 했다. 전투 음악은 다를까 싶어 오히려 대전이 길어질 때면 더 신나 했다.
방을 기웃대던 저녁노을보다 키가 제법 더 자란 겨울이 되어 백건우 선생님의 라흐마니노프 앨범을 듣기 전, 음악에 서사가 있음을 알려준 건 거상이었다.
방구석에서 공연장으로
국립극장에서 레퍼토리 시즌 음악으로 거상이 올라온 것을 알곤 재빠르게 예매하고 고대하며 기다렸다. PC 스피커가 아닌 관현악으로 듣는 음악은 얼마나 더 풍부할까! 이번 국립극장의 <음악 오디세이: 천하제일상>은 기존 로그인 BGM을 편곡한 손다혜 작곡가의 <국악관현악을 위한 '새로운 세계'>가 유튜브와 인스타로 선공개됐다. 손다혜 작곡가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감수성과 가장 탄탄한 구조로 구성돼 있었다. 여기서 더 들으면 흥이 깨질까 싶어 공연장에서 들을 생각으로 기존 음악은 듣지 않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티켓을 배부받은 후엔 티켓 매표소 바로 옆에 위치한 별도의 부스에서 굿즈와 함께 현장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버튼형 목걸이를 받았다.
객석에 들어서니 무대 양옆 디스플레이에선 사전에 촬영한 작곡가들의 60초 인터뷰가 연이어 나오고 있었다.
공연은 선공개된 손다혜 작곡가의 로그인 BGM 편곡 <국악관현악을 위한 '새로운 세계'>를 시작으로 5개의 필드(일본, 인도, 대만, 중국, 조선) 음악 순으로 진행되었다. 각 음악이 연주되기 전엔 작곡가의 짧은 곡 설명을 시작으로 각 테마곡마다 배정된 알파벳을 소개하는 투표 독려 영상이 이어졌다. 공연이 연주되는 동안엔 필드 테마에 맞춘 캐릭터가 필드를 걷는 듯한 모션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과거엔 <거상> 게임 유저였던 나, 이곳에선 국악 관객?!
여섯 명의 작곡가가 제각기 특색있었다. 필드가 달라서 생긴 차이점이 아닌, 각자가 갖고 있는 음악적 해석과 어법이 달랐다. 방구석이 아닌 객석에서 듣는 거상 OST는 색달랐다. 미디 음악에 가까웠던 거상 음악이 관현악 사운드로 어떻게 구현했을까!
숲의 싱그러운 파랑을 꿈꾸는 사무라이와 무녀의 모험
실제로 거상 스토리가 '검은 상단'이라는 큰 조직의 음모로 시작이 되거든요. 그래서 그 캐릭터들이 시작하는 서사를 작품에 담았어요.
관현악을 처음 시작할 때, 일본의 고토, 샤미셴 같은 악기가 연상될 수 있는 오케스트레이션을 활용했고요. 미야코부시 음계나 일본 특유의 전통음악 리듬들을 차용하여, 기존에 있던 테마들하고 적절하게 혼합해 봤습니다.
게임 시작에 모험가들이 도깨비 아이를 만나서 노래 구절을 듣고서 시작하거든요. 거기서 아이가 말하는 게 '파랑'에 관한 거예요. 숲의 파랑, 바다의 파랑, 평화에 대한 어떤 소망인 거죠. 지금 현세가 굉장히 혼탁하고, 절망적인 부분들이 있으니. 우리가 모험을 통해 그것들을 극복해 내고,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그런 마음들로 느껴지더라고요.
사무라이 그리고 무녀. 그 캐릭터들이 시작하는 서사들을 작품에 담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감상하실 때, 일본풍의 음악들을 들으시면서 조금은 음산하실 수 있어요. 위기를 거쳐서, 평화롭게 해소가 되는 부분이 있으니. 끝에서 안정을 찾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게임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났던 작품은 과연 일본 테마곡을 작곡한 장태평 작곡가의 <파랑 파랑>이었다. 장태평 작곡가의 <파랑 파랑>은 필드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게임 음악 어법상 필드 음악 방문한 국가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곡이다. MMORPG의 형태인 거상은 특히 필드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많은 게임이기 때문에 사냥터와 달리 비교적 피로도가 낮은 음악적 구성을 띄고 있다. 도입부에 악센트를 두기보다는 후반부로 갈수록 고조되는 형식이다. 별다른 가사는 들어있지 않지만, 필드 음악 대부분이 기승전결 구성으로 이뤄져 해당 국가의 이미지나 이야기들을 유추할 수 있을 만큼, 서정적 감수성이 깃든 서사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장태평 작곡가의 <파랑파랑>은 게임 필드 음악으로서의 구성, 나라가 갖고 있는 이미지와 스토리텔링 구성이 가장 잘 맞아떨어진 곡이었다.
장태평 작곡가의 <파랑 파랑>은 다섯 곡 중 필드 음악으로서 가장 높은 이해도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게임 전문가나, 오래된 거상 유저들의 의견이 반영됐다면, 분명 장태평 작곡가의 <파랑 파랑>이 우승했을 것이다. 역시나 후기를 찾아보아도, 가장 높은 호응을 보인 작품이었다.
국악관현악으로 만나는 인도 신화와 전설 속 신과 영웅
인도 필드 음악을 먼저 들어봤고요. 들어봤을 때, 신비로움이 많이 묻어나는 음악이더라고요. 그래서 거를 어떻게 하면은 활용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게임 안에 문화나 역사, 건물 같은 것을 집어넣으셨다는 얘기를 떠올렸어요. 신화를 이용해 보면 재밌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대표적인 라바나, 비슈누, 시바 - 이 세 명의 신을 가지고 테마로 음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세 명의 신 테마의 분위기가 각기 완전히 달라요. 라바나는 조금 어두우면서도, 강렬한 느낌. 비슈누는 평화적이면서 광활한 느낌이 들고, 시바는 파괴의 신이니까 - 빠른 리듬의 격정적인 리듬으로 흘러가는 테마를 가지고 있는데요. 각기 다르다 보니까 어떻게 조화롭게 흘러가는지를 먼저 봐주시는 게 좋을 것 같고. 어쨌든 인도 음계를 썼는데, 국악관현악이라는 형태로 확장하다 보니까 - 국악기들이 이 선율을 어떻게 연주하는지. 그 점을 포인트로 들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첫 번째 날, 우승작이기도 한 홍민웅 작곡가의 <신화의 숨결>은 풍부한 관현악 사운드를 기대한 사람들과 게임 음악의 극적인 이미지를 듣고 싶었던 두 관객을 만족시키는 곡이었다. 아무래도 라바나, 비슈누, 시바라는 압도적인 규모의 이미지를 지닐 수밖에 없는 신이란 이미지에서 착안한 음악이었기에 도입부부터 강렬하게 관객들을 맞이한다.
음악을 듣는 내내, 마치 전투 필드에서 악귀에 들린 신들을 구해내기 위해 떨어지는 화염들에 맞서는 듯한 장면이 그려졌다. 세 신이 차례대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 상대편 유저 진영이 가득히 깔린 모습. 예상한 대로 강력한 신에게 밀리는 듯 인도 음계가 진행되고, 십전대보탕을 10개쯤 들이키며 좀처럼 깎이지 않는 신에게서 지친 듯한 인상의 하강 음계가 이어진다. 그래도 신은 계속 전진한다. 강렬하게 양쪽 진영이 전투하듯 주고받는 듯한 인도 음계가 섞인 상승 음계와 태평소가 서로 주고 받듯 고조되다 결국 전투에서 살아남은 승전자를 알리는 듯한 대금 소리가 울리면 인도 음계는 걷히고, 우리가 아는 국악 선율이 인도 음계의 주권을 가져오듯 연주한다. 쓰러질 법한데 쓰러지지 않는 듯한 긴장감에서 전투력이 돋보인 곡이었다. 작곡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중간중간 쉬어가는 듯한 부분으로 인해 앞으로 어떤 전개가 될지 기대하게 되고, 좀처럼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갑자기 멈추고 악보를 넘기는 풍경은 탑(Top) 샷으로 찍는다면 진귀한 풍경이었을 모습까지도 곳곳에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포인트가 가득했다.
만일 내가 제작자로서 필드 음악으로 의뢰했다면, <신화의 숨결>은 전투 음악으로 남겨놓자 했을 것이다. 필드 음악이 아닌 전투 음악이었다면 너무너무 잘 만든 곡이었다고 생각한다. 서사적인 면이 일부분 느껴지긴 했으나, 필드 음악으로서는 너무 강강강의 형식이라 음악을 들으러 일부러 나라를 돌아다녔던 유저로선, 인도 필드에 다시 가고 싶을 정도로 인도 필드의 감수성이 느껴진다고 하기엔 조금은 피로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인도 음계를 들어낸다면, 거상 인도 필드라 느껴지기엔 어느 공연에 올려도 되는 국악관현악 음악이라고 봐도 무방했기에 다소 아쉬웠다.
이미 알고 있는 국악관현악 사운드로의 구성으로 가득 채운 곡이어서 현장에서의 압도적 규모와 풍부한 국악관현악 사운드를 기대한 관객들이라면 이 음악을 선택할 것 같았다. 역시나 첫 번째 날 우승 곡이 되었다.
미지의 섬. 미지의 땅. 미지의 공가능로 향하는 한 걸음
다른 지역 BGM들보다 선율이나 뭔가 되게 좀 모호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정말 난감했어요. 여기서 어떤 특징을 꺼내와서,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국악관현악을 즐기러 오신 관객분들, 거상 게임 유저들 - 이 두 팬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이해시킬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었고. 그 점을 많이 고민하면서 작곡했습니다.
대만 필드 BGM이 가지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청량하고, 맑은 느낌을 받았거든요. 거기에 인상을 받아서. 국악관현악에도 그런 느낌을 살리려고 기획을 했습니다. 거상이라는 게임에서는 국악기로 보편적인 게임 음악의 감성을 녹낼 수 있을까 고민을 좀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국악기 고유의 방식을 조금 집중을 해봤습니다.
처음에는 독주 악기들 중심으로 절제적이고, 실내악 적으로 음악이 흘러가거든요. 그게 점차 확장되면서 거대한 국악관현악 사운드로 확장이 되고. 그렇게 창대하게 마무리가 되는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그러면서 또 국악기의 진행 방식과 선율의 울림들과 그런 것들이 어떻게 확장되는지. 음악적인 재미를 느끼시면서 감상하시면 재밌게 감상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2022 세종문화회관의 관현악 시리즈 <전통과 실험 - 동해안>의 <산조아쟁을 위한 협주곡 '검은 집'(The Black Home)>(이하 검은 집)을 시작으로 국악관현악을 작곡한 이후 발표한 두 번째 국악관현악 작품이다. 정혁 작곡가의 정가와 실내악 규모로 여러 곡을 꾸준히 작업해 온 것을 봐온 입장에서 이번 곡은 거상의 게임 음악으로서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국악관현악 사운드의 새로운 장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데뷔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제법 작곡가로서 문법이 자리 잡는 듯하다. 올해 발표한 <Nostal Breeze>, <Sometimes Breathe>와 같은 작품들에 이어 이번 <절벽의 섬>도 푸른빛 바다를 낀 자연을 유랑하는 심상을 보여주었다.
앞서 홍민웅 작곡가가 국악관현악으로 낼 수 있는 사운드 스케일을 최대한 키웠다면, 정혁 작곡가의 <절벽의 섬>은 최대한 압축한 느낌이었다. <검은 집>과 비교해 보면 굉장히 소박한 정식 같았다. 다른 작곡가들만큼 충분히 규모를 키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힘을 뺀 듯한 느낌으로 구성한 듯했다. 그래서 그런지 악기 저마다의 고유의 소리가 온전히 전해졌다. 독주 악기에 집중한 덕분에 고요함 속에 관객들이 집중하게 했고, 의도된 여백들이 힘 있게 다가왔다. 정혁 작곡가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질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악기마다 최대치를 내고자 하는 개성이 과연 돋보인 작품이었다. 서늘하고 보다 차가운 순백색의 색채감을 띠는 기존 대만 필드 곡과는 다르게 <절벽의 섬>은 푸르르면서도 보다 따뜻한 색채감을 띠고 있었다.
들리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정가에선 사람 목소리를 악기처럼, 국악기는 사람 목소리처럼 연주한달까. 정혁 작곡가의 작품은 들리는 게 보이는 듯한 심상적 이미지가 돋보이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정혁 작곡가만의 감수성이 보였다. 소금으로 시작되어 여러 대의 관악기로 퍼져가는 구성은 마치 한 마리의 작은 새를 좇아 새들이 무리 지어 바다 깊이만큼 높이 절벽을 에워싸고 날아가는 듯한 풍경이 그려졌다. 끝없는 바다와 절벽이 보이는 광활한 자연에서 숲으로, 나무로,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으로, 풍경에서 점점 안쪽으로 들어가며 작곡가는 자기가 보고 온 자연의 질감을 한 장면 한 장면 보여준다. 정혁 작곡가가 그린 자연의 풍경에서 인간의 형체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더 작고, 옅게 깔린 존재가 풍경 이곳저곳을 느껴보는 듯하다. 인간보다 생명을 품어주는 듯한 자연의 이미지, 절벽을 구성하는 풍경의 질감이 두드러진 곡이었다. 다른 작품들이 타임라인을 따라 수평적인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면, <절벽의 섬>은 거시적인 풍경에서 미시적으로 접근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시원한 피톤치드 향이 물씬 풍기는 작품이었다.
게임 유저로선 '이게 대만 음악이라고?'라며 의아함이 컸을 듯하다. 프로그램 북에 타임라인이 표시되어 있긴 하지만 재생 시간이 별도로 표시되는 것은 아니다 보니 들으면서 어림짐작으로 어떻게든 곡 안에서 대만을 발견해야 하는데 그조차도 옅게 깔려있어 거상 유저들에게 <절벽의 섬>의 대만은 낯설었을 듯하다. 거상 유저들도 이번 공연의 타깃이었던 만큼, 기존 게임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캐릭터나 좀 더 작곡가의 구체적인 심상에 대한 스토리텔링이 있었다면 관객들에게도 음악이 선명하게 들렸을 듯하다. 공연 전 작곡가의 곡 소개는 음악적 기법을 위주로 해, 일반 관객으로선 심상에 유추하는 수밖에 없었다. 음악적으로 이해하긴 어려워 꽤 난이도 있는 곡으로 다가왔다.
<절벽의 섬>은 대만 필드 음악보다는 정혁 작곡가가 두드러진 작품이었다. 기존 음악보다는 대만의 절벽이라는 피사체에 더 집중한 해석이 더 드러나 있었다. 거상 필드 음악으로서는 아쉬웠으나, 국악관현악 작품으로서는 여타 다른 공연들을 포함한 국악관현악 작품과 다르게 독창적인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아쉬운 면은 분명했지만, 앞으로 국악이란 장르적 한계를 벗어나 작곡가로서의 앞날이 기대되는 면을 보여주었다.
진돗개에게 반한 차우차우가 부르는 달콤하고 아름다운 세레나데
중국의 어떤 음악을 확연하게 딱! 느낄 수 있게 하는 악기 같은 걸 당연히 쓰면 좋겠단 생각을 처음에 했었는데, 이번 작업의 저의 목표는. 그 어떤, 다른 어떤 '특수적인 악기들을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피아노, 신시사이저, 여타 다른 서양 계통의 악기를 최대한 배제하고, 우리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가지고 있는 악기들과 소리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관현악을 만들어보자!'에 초점을 맞춘 것 같아요.
'섹션마다 가져갈 수 있는 점수가 무엇일까'라고 생각했을 때, "어! 이거 내가 아는 음악인데!" "어! 이거 나 들어봤는데!" 이런 것들이 후킹(hooking)하게, 확실히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여러분들에게 익숙한, 여러분들이 들어봄 직한, 여러분들에게 가슴을 딱! 후벼 팔 수 있는, 후킹이 되는 것들을 느끼셨으면 좋겠다. 더군다나 로맨틱함과 사랑스러움이 잘 묻어나야 하는 곡이라고 생각해서, 전반적으로 굉장히 밝은 음악을 지향했습니다.
'중국의 토종개인 차우차우가 우리나라의 토종개인 진돗개와 사랑에 빠졌다'는 흥미로운 판타지로부터 시작된, 착안이 된 작품이고요. 그렇게 되다 보니까 음악적으로도 두 가지 모티브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차우차우의 모티브는 아까 말씀드렸던, 중국의 필드 BGM과 중국의 마을 BGM을 차용했고, 진돗개를 대표하는 음악으로는 진도아리랑, 남도의 민요들의 선율들을 조각조각 갖고 왔어요. 개가 소재가 된 작품이다 보니까. 개타령들 - 우리나라의 개타령인 통영 개타령이라든지. 이런 선율 조각들을 가지고 와서, 조선 진돗개의 모티브를 만들었습니다. 차우차우의 모티브와 진돗개의 모티브가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하 신선한 진행과 유쾌한 음악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드라마의 장태평 작곡가, 에피소드의 성찬경 작곡가
장태평 작곡가의 <파랑 파랑>이 드라마였다면, 성찬경 작곡가의 <사랑에 빠진 차우차우>는 에피소드 형식미가 보인 작품으로, 중국과 거상이 가지고 있는 한국적 이미지가 부드럽게 융화된 곡이었다.
국가와의 만남, 거상 그 자체
<파랑 파랑>이 마치 일본 국가를 오가며 이뤄지는 전투와 평화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게임 속 루프물 형식의 드라마였다면, 성찬경 작곡가의 <사랑에 빠진 차우차우>는 한 드라마의 에피소드를 뽑아 만든 게임 음악 같았다. 다른 작곡가들은 국가의 상징에서 착안한 것에서 더 발전시켜 성찬경 작곡가는 거상 게임 내에서 필드를 대표할 수 있을 만한 동물인 차우차우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신선하게 풀어내 보였다. 장태평 작곡가가 거상 스토리와 서사를 작품에 담으려고 한 것처럼, 성찬경 작곡가의 <사랑에 빠진 차우차우> 또한 각 나라를 오가며 교류한다는 거상이란 주제를 가장 진취적으로 한 작품이었다.
나의 사랑도 아닌데 웃음이 나
프로그램 북에서 성찬경 작곡가는 거상으로 한국 지리를 익혔다고 할 만큼, 유년 시절의 추억이 있는 게임이라 했는데, 과연 거상이란 게임을 잘 이해하고 있는 작곡가였다. 차우차우는 중국 사냥터 필드 내 인기 몹이기도 하다. 필드에서 돌아다니는 차우차우를 클릭하면 나는 소리를 연주에 활용했다는 점에서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일반 청중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엿보였다. 중국 필드의 음악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작곡가만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진돗개와 사랑에 빠진 차우차우의 세레나데'가 무엇인지 직관적으로 잘 풀어냈다. 독특할 뿐만 아니라 '사랑'이란 보편적 이해가 가능한 주제를 택함으로써 관현악은 조금 낯설 수도 있는 거상 유저들에게 진입장벽을 한층 낮췄다. 게임 유저들에게 친근한 차우차우는 필드에서 만나본 적 없는 진돗개에게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 사랑이란 감정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싶게 만드는 매개체가 되어주었다. 차우차우의 소리도 게임 내 효과음이 아니라 연주자들이 도중에 직접 부르게 하여 실황 공연의 재미로 더 크게 다가왔다. 성찬경 작곡가의 <사랑에 빠진 차우차우>는 이번 공연에서 듣고 싶었던 거상의 요소들을 기대 이상으로 풀어낸 작품이었다.
성찬경 작곡가는 이번 작품이 두 번째 게임음악 작업이라고 한다. 이전 국립극장의 <소소 음악회>에서 <크레이지레이싱 카트라이더> 편곡을 맡아 '국악 드리프트'로 호평을 받았다고 하는데, 괜히 경력자가 아니다.
모든 곡의 완성도가 무척 뛰어났지만, 성찬경 작곡가의 <사랑에 빠진 차우차우>와 장태평 작곡가의 <파랑 파랑과>은 다섯 작품 중에서 거상과 게임 음악이라는 점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다.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작곡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잘 풀어냈다. 성찬경 작곡가의 <사랑에 빠진 차우차우>는 듣는 재미와 상상하는 재미로 웃음 짓게 만든 작품이었다.
동방의 빛나는 아침의 나라 '조선(朝鮮)'에서 건네는 인사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필드잖아요. 그만큼 BGM도 사람들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거를 새롭고 조금 신선한 느낌으로다가 전달해야 하겠다고 생각이 많이 들어서. 기존에 있던 리듬을 다르게 한다거나. 조선 마을 같은 경우는 4/4박자인데, 8/10박자로 바꿔서 접근한다거나. 익숙하지만, 다른 느낌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봤고요.
BGM이 단편적으로 활용됐던 것들을 큰 서사를 가지고 그 안에 입혔기 때문에 익숙했던 멜로디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조각조각이 어떻게 들리는지를 찾아 들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결국은 게임이라는 어떤 장면, 전투라 하면 전투에 대한 모습들을 역동적으로 사람들에게 격정적인 느낌을 주게끔 하기 위해서 BGM이 만들어지는데, BGM들을 단편적인 걸 들고 오는 게 아니라. 제가 생각하는 국악관현악 안에서, 10분이라는 길이 안에서, 전체를 들으면서 "여기는 내가 익숙한 대관령의 멜로디가 나오네?" "여기는 조선 마을의 멜로디가 나오네?" 이렇게 생각하면서 들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작곡가가 사전 인터뷰에서 염려한 많은 고민이 들리는 듯한 작품이었다. 새로우면 너무 새롭다고, 기존 곡에서 크게 편곡되지 않는다면 그대로라고 외치는 듯한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리는 듯했다. 국악기는 이미 조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 안에서 다시 또 조선 필드란 기존의 이미지를 새롭게 전개해야 했으니, 고충이 컸겠다.
강한뫼 작곡가의 <안녕>의 경우, 조선 필드 음악의 반가움이 작곡가의 의도를 앞질렀다. 조선 필드를 관현악으로 재편성한 부분에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반가움과 그리움이 밀려왔다. 그 어떤 필드보다 더 강한 감정이었다. 하지만 이후 전개에선 그만큼의 깊은 인상을 받을 순 없었다. 게임 음악회 같은 연주를 들으러 온 것은 아니었는데, 차용된 부분이 나오고 나서야 음악이 시작된 느낌이 들었다.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가야금이 배경이 되고 대금, 피리, 해금, 소금 등의 관악기가 리드미컬하게 연주되는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는데 10초 남짓 아주 짧게 지나가고 말았다. 조선 필드의 반가움만큼 작곡가만의 해석이 뚫고 나와줘야 하는 부분이 익숙한 관현악 패턴으로 전개되다 보니 아쉬움이 컸다.
관현악이니만큼 악기를 다양하게 사용해야 그것이 관현악이었겠지만, 뭔가 채우려 했던 것일까. 태평소, 꽹과리가 너무 강하게, 보다 많은 파트를 줌으로써 초반에 가야금과 대금, 소금같이 섬세한 음색들로 얇고 가는 질감으로 겹겹이 쌓아 올린 감수성이 둔탁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초반에 쌓아 올린 섬세함과 하모니가 차용된 조선 필드에서 완성된 느낌이 들었다. 앞에서 애써 끌고 온 음들이 완성되길 바라며 결국 작곡가가 말하고자 한 부분이 드러날 거란 기대가 컸지만, 의도를 알 수 없이 끝나버렸다.
기대한 것을 듣지는 못했지만, 그 또한 모든 것이 작곡가의 선택이었겠지만 작곡 과정에서 선택받지 못했던 음계들이 더 강한뫼 작곡가다운 음악을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이라이트 부분에서도 일본 필드와 조선 필드만 기존 게임 BGM의 관현악 버전이라, 새로운 편곡을 기대했던 관객으로선 작곡가의 상상력이 더 가미된 부분은 어디였을까 궁금증이 든다.
익숙하다는 거 말이야. 기회였을 수도
조선 필드엔 용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정면 돌파하듯 가장 익숙한 조선 필드 음악을 맨 앞으로 배치했더라면 어땠을까. 거상 게임이 주제였던 만큼 국악보다 거상을 잘 알고 있는 일반 청중 입장에선 국악도, 작곡가도 모르니 초반에 익숙한 음악으로 유대감을 형성하고 전개를 했더라면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저항감을 소거할 수 있진 않았을까. 작곡가들이 이 경연 대회에 우승하기 위해서 곡을 쓴 것은 아닐 테지만, 그래도 모처럼 승부수를 건다면 호감도를 얻는 전략을 취하는 것도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패를 숨기듯 조각내어 작품 안에 배치한 것과 다르게 접근하는 전략이었다면 남다른 몰입도를 경험할 순 있지 않았을까 미련이 남는다. <안녕>이란 작품 속에 흩진 조선 필드에 대한 작곡가의 해석과 의도를 좀 더 뾰족하게 듣고 싶었다.
낮은 레벨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중독성 있는 으스스한 매력에 끌려 자주 갔던 대관령도 기대했지만, 왠지 잘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유튜브에 혹시라도 업로드된다면, 조각조각 흩어진 음악들을 다시 들으며 복기해보고 싶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조각조각 기존 OST가 들릴 때면, 반가움과 묘한 향수로 어느새 이렇게 커버렸다는 사실에 슬프기도 했다. 만일 기존 게임 음악 콘서트처럼 거상 게임 OST의 연주를 기대하고 온 관객이라면, 조금은 실망할 수 있었겠다 싶었다. 이번 공연은 단순히 규모가 큰 연주 음악회가 아닌 편곡 중심의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작곡가마다 게임에 대한 이해도와 테마에 담으려 한 풍경, 메시지, 어법의 차이가 분명했다. 기존 음악과 달리 구성이 게임 음악 구성보다는 국악관현악 음악에 더 맞춰져 있었기에 국악관현악을 기대하고 온 사람과 거상 유저들의 선호도가 확연히 차이 날 듯했다.
이게 만일 CJ ENM에서 하는 대규모 오디션 프로그램과 같은 형식이었다면 가운데에 큰 전광판과 전문가들의 소견, 유저 투표가 별도로 있었을 수도 있었겠다. 작곡가들 입장에선 반갑진 않았겠지만, 개인적으론 실시간 투표 현황을 볼 수 있어 이색적이고 신기했다.
음악을 이해하고, 거상을 간직하는 방법
큰 규모의 공연인 만큼 - 프로그램 북, 캐스팅보드, 공연 진행 등 언론 보도부터 각종 프로모션까지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쓴 흔적이 보였다. 게임 OST를 단순히 활용하기 이상으로 공연장 안과 공연 프로모션 영상, 프로그램 북까지 적극적으로 게임 컨셉을 차용했다는 점이 신선했다.
이번 공연은 프로그램 북 내에 음악에 활용한 기존 OST 등장 부분, 게이지처럼 표현한 MBTI, 작곡가의 이전 대표 작품들 QR를 삽입하여 이번 공연과 작곡가의 세계까지 소개했다. 기존 국악 공연들처럼 대학이나 과거 수상 내역들을 소개하는 게 아닌, '지금의 공연'에 집중하게 했다는 점에서 이번 공연을 어떻게 대해주었으면 좋겠는지가 보였다. 공공예술기관으로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하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 입장에서 이러한 콘텐츠가 반가웠다.
굿즈의 경우엔 게임 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포함하여 스티커, 포토 카드, 볼펜, 일러스트 파일 등 다채로웠다. 최대한 풍부하게 구성하려 한 듯하다. 게임 내 아이템으로 쓸 수 있는 한정 아이템 쿠폰은 참신했으나, 게임을 하지 않는 유저층이나 드러내기 어려워하는 유저층을 고려하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다른 후기를 남긴 유저들과 마찬가지로 스티커나 파일은 이제 다 커버린 어른으로서 쓰기엔 어렵기 때문이다. 아직은 게임 매니아임을 드러내는 게 눈치 볼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일상생활에서 공연과 거상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탈 것을 활용한 키링 타입의 인형이었다면 어땠을까 싶긴 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푯값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음악 오디세이: 천하제일상> 국악관현악의 판을 넓히다
국립극장은 남다르다
<메이플스토리>, <테일즈위버>, <가디언 테일즈> 등 게임음악을 오케스트라로 연주한 음악회 형식의 게임 음악 콘서트는 많았다. 국내 게임 제작사인 넥슨의 경우 가장 최근까지도 30주년을 기념해 67인조 오케스트라가 참여한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해당 공연은 지스타에서 오픈 1분 만에 마감되기도 했다. 게임 음악 콘서트에 대한 수요는 확실히 입증된 바탕에서 국악관현악 편성의 게임 음악 콘서트는 비교적 적은 편이긴 하다. 최근 국립국악원에서 발매한 <국립국악원 게임 사운드 시리즈>. <GXG 2024 - 게임 OST 국악 콘서트>가 그것이다. <GXG 2024>에선 이번 공연과 비슷하게 게임을 모티브로 한 창작곡을 현장 투표로 선정하는 경연대회가 있었다.
이번 국립극장의 <음악 오디세이: 거상>은 이전에 있었던 여러 시도를 하나로 합친 공연이었다. 필드 음악을 차용한 편곡으로 새로운 음악적 시도는 물론, 기존 BGM을 오케스트라로 연주하고 투표하게 하여 기존 거상 팬들에겐 음악적 경험을 선사했다. 이전 <GXG 2024>는 음악회와 경연대회 모두 게임별로 나누어져 있었다. 경연대회에 참가한 10개의 팀 중 한 팀만이 퓨전 국악 장르였다. 반면에 <음악 오디세이: 천하제일상>은 작곡가 모두가 국악관현악으로 편곡하여 이전의 게임 OST 국악 콘서트를 더욱더 적극적으로 확장했다.
이는 국악관현악단을 보유한 제작극장으로서의 관점이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거상 OST를 연주한 공연이 이전에 없었다는 희소성도 있겠지만 이번 공연은 남다른 시도였다. 과연 로봇을 공연 지휘자로 데리고 왔던 국립극장다운 시도다.
한정적 소비 시장에서 파이를 확장하려면 이미 형성되어있는 파이(소비층)를 끌고 오거나, 이미 큰 파이가 형성된 시장에 편입되거나 하는 시도를 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22년 이상의 코어 층이 확고한 게임 유저들이 있는 게임 유저라는 신규 예비 관객층과 국악 공연계에서 거상 OST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린 편곡, 오프라인 현장 투표라는 대전의 성격을 택한 기획 모두 극장 기획이 탄탄하게 뒷받침된 공연이라고 볼 수 있다.
공연 프로모션부터 현장 공연 진행까지 이런 기획이 다 녹아있었다. 게임의 형태와 특성을 차용한 프로그램 북 디자인 레이아웃, 홍보 영상, 극장 내 포토존 그리고 투표를 통해 '살아 남아야 한다'는 생존/대결이라는 본질까지 모두 공연에 담았다.
한국인에게 국악은 가장 친숙한 정서를 지녔지만, 정작 공연 시장에선 외면받는 장르다. 로비에만 나가도 뮤지컬, 연극에 비해 가족, 친구, 전공자가 대부분의 관객을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소규모 한정된 애호가들을 제외하면 국악을 즐기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관계자조차도 국악은 어차피 안되는 시장이라며 현상 유지만 하면 그뿐이라는 얘기를 한다. 그저 문체부 지원금으로 꺼진 생명력을 보존하는 것 이상으로 국악 공연은 답이 없는 것일까. 국악 공연에서 홍보마케팅은 산소호흡기에 지나지 않을까. 가끔 국가적 행사 할 때만 나타나는 영웅 전설일까. 그게 국악의 전부일까. 이젠 이런 허망한 소리엔, 국립극장의 관현악 시리즈를 얘기하고 싶다. 국립극장은 하지 않냐고.
국립극장 <음악 오디세이: 천하제일상> -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획 시스템의 가능성을 보다
국립극장의 소소 음악회를 비롯해 세종문화회관의 싱크넥스트까지 대규모 공연만을 올리던 공공 극장에서도 제작극장으로 거듭나기 위한 색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예산상 안정성이 있는 공공예술기관을 중심으로 소수 장르를 탈피한 시도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홍보마케팅에서도 새로운 컨셉을 시도해 볼 수 있는 내부적으로 포용하는 판도 넓어졌으면 한다. 기획부터 홍보마케팅까지 국악도 엔터테인먼트 장르로서 더 넓은 이미지 콘텐츠를 추구해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이번 국립극장의 <음악 오디세이: 천하제일상>은 그러한 시도가 확실히 드러난 성공적 사례라 생각한다.
국악, 교과서가 아닌 공연장으로
국립극장의 국악 공연은 본질적으로 MZ하다. 작곡가와 협연자가 단순히 어려서 MZ라는 타이틀을 붙이지 않는다. 확실한 관객 타겟팅을 청소년으로 둔 <소소 음악회>가 그것이다. 포스터부터 숏폼 콘텐츠까지, 여타 다른 극장들이 하지 않을 때, 국립극장은 한다. 교과서 음악에서만 등장하는 유물적 시선에서 벗어나, 입문형 공연을 만든다. 어린이 공연, 청소년 공연, 그리고 전 연령대가 소비할 수 있는 공연까지 제작하고, 이렇게 큰 규모의 공연에서 홍보마케팅 콘텐츠까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국립극장이 있음이 반갑다.
국악은 음악이다. 음악은 살아있는 콘텐츠다. 오래된 건축물도 아닌데, 유지보수에만 힘쓴다는 얘기를 들으면 맥이 풀렸던 때도 있었지만, 이번 국립극장의 <음악 오디세이: 거상>의 공연을 보면서 강한 희망을 보았다. 계속해서 시도하고, 가능성을 찾는 제작극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국립극장의 국악 공연이 앞으로 얼마나 더 확장될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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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소개는 유튜브 국립극장 채널, <유튜브 국립극장, <국립국악관현악단 관현악시리즈Ⅱ ‘음악 오디세이: 천하제일상’> 메이킹 필름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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