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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즘 리플렉팅 Jul 04. 2022

이 좋은 걸 국악인들만 즐기고 있었다니 <동해안별신굿>

국악이 과연 뻔할까? 전통과 실험의 <동해안별신굿>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 지어 저마다 떠내 보내야 하는 마음으로 무당을 통해 기도한다. '제발…. 제발…. 무사히 살아 돌아오기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동해안별신굿>은 '동해안' 근처 지방의 장단을 가지고 각자 무엇을, 어떻게 기도할 것인지 펼친 하나의 실험 판이자 염원이었다.


염원은 항상 원에 담긴다. 가톨릭의 묵주가 장미꽃이어도 구슬로 꿰어진 것처럼, 우리나라의 염원은 '원'으로 무당의 구슬에 달려서 이리저리 비틀어진다.


궁금했다. 운명은 정해져 있을 터, 사람들의 넋을 기리면서, 안녕을 기원하는 굿을 국악으로 어떻게 표현할까. '우리나라 것'임은 누구나가 다 알겠지만, 각 작곡가들이 주제를 가지고, 음악적인 표현으로 했을 때 어떻게 들릴지 몹시 궁금했다.


     

1.  <국악관현악을 위한 ‘흐르는 바다처럼’> 작곡 손다혜

바다를 바라보고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동해안 마을 주민들의 삶은 '별신굿'으로 안전과 풍어의 소망을 기원함과 동시에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로움을 빌었을 것이다. '망부송(望夫松)'은 청사포 마을 한가운데 수령 400년이 넘은 소나무이다. 만선의 꿈을 안고 떠난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내의 염원을 담아 음악으로 표현해보았다. 곡을 쓰다 보니 결국 이 망부송의 전설은 오늘도 바다로 나가는 동해안 마을 사람들의 삶과 많이 닮아있다. 바람을 맞서고 세찬 파도를 이겨내며 흐르듯 먼바다로 나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역동적이며 강렬하게 때로는 아주 고요하게 음악적으로 담아보았다.

- 손다혜 <흐르는 바다처럼> 작곡 노트 중에서
만선의 꿈을 안고 떠난 남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내의 염원과 망부송*
(望夫松 : 바랄 망/보름 ‘망’ + 지아비/사나이 ‘부’ + 소나무 ‘송’)


집박이 부딪히며 <흐르는 바다처럼>은 시작된다. 인터뷰로 미루어 보아 그녀는 오래전부터 바다로, 혹은 뉴스 너머로 다다르지 못하는 응원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음악'이란 활동에 몰입하기 전, 자신만의 단상이 담긴 키워드가 가득한 메모들을 마음에 품고선 이는 어떤 말들을 전하고 싶었을까.


망부는 살아야 했다. '남편의 명줄이니, 시댁의 대를 끊는다니'하면서 '망부'는 살아야 했다. 모진 바닷바람을 맞으며, 어린 자식이 제법 클 때까지 세찬 말들을 들었을 테다. 가끔은 따사로웠을 바닷바람과 햇볕이 모질어서 구슬프게 울었던 때처럼. 그때에 이 노래는 400년 된 눈을 가지고 홀로 선 이, 혹은 아이를 안은 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위로했을 테다.


북 등에 막대 대는 소리는 점점 고조된다. 손다혜 작곡가의 <망부송>은 이미 '떠날 자' 보단 '남겨진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조각조각나다 못해 산산조각 난 마음은 징 같은데 사람의 손이 긁힐 때마다 (갈기는 느낌) 모랫소리처럼 느껴졌다.


손다혜 작곡가의 사전 인터뷰와 음악을 들으며 내가 보았던 응원가와 같던 드라마가 생각났다. 제주 바다를 터전으로 끼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들의 블루스>, 미혼모로 살아가는 아이와 어른의 이야기가 담긴 <동백꽃 필 무렵>이 그것이다.


배우들이 그렇듯 무릇 모든 이가 표현에 있어서 당사자가 될 필요는 없겠지만, 왜 '하필' '망부송'이란 주제를 택했을까. 그녀는 이번 인터뷰에서 밝히길 '지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일종의 응원가로서 다가가길 바랐다고 한다.


'그 자갈과도 같은 길을 걷더라도 외로워하지 마시어라' 하는 것처럼 황망했던 모래 위로 세찬 바닷바람이 불 때, 손다혜 작곡가는 위로한다. '설령, 당신이 그리 외로울지더라도. 울어도 된다. 허나 멈추지는 마시오라. 곧 빛이 비출 것이다.'라는 듯이 실로폰이 울려 퍼진다.


굵은 빗방울이 조금씩 내리는 듯하다. 망부의 어린아이를 대변하듯 아이의 순수한 말과 몸짓을 나타내듯 실로폰은 울린다. 이미 떠나갔을 사람의 넋은 팀파니나 큰북으로 표현됐다. 이후, 네 차례 공연에선 이 악기들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검은 사제들>에서 굿이 재앙이 사라지고, 빛이 오길 기다리는 원으로서 또 다른 세계의 사제들의 기도를 불렀다면, 손다혜 작곡가는 400년의 역사를 뚫고 저나 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이들을 향해 기도하며 마음을 어루만지었다.



2. 작곡 정혁 산조아쟁을 위한 협주곡 ‘<검은 집(The Black Home)>’

이 곡은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사건을 중심에 두고 작곡되었다. 정확히는 이 비극이 벌어지고 한참이 지난 오늘과 순수히 추모받지 못하는 자들 그리고 그들의 온전한 안식을 바라는 이들에 대해 내가 가진 심상을 그려낸 곡이다. (중략)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희생된 그들의 온전한 안식은 마치 그들을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집은 불편한 현실 속에서 마치 검은색으로 색칠되어 모습을 숨긴 채 적막하게 그리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검은 집과 같다. 단지 이러한 심상을 음악으로 이미지화한 것이고, 비극적 서사나 해학을 말하려는 작품이 아님을, 그럼에도 추도적 자세로 하여금 작곡에 임했고 그것을 음악에서도 일부 드러내고자 했음을 알린다.

'집으로 가자.
망망한 검은 바다로부터 땅에 이르러
터덜터덜 고향으로 다다랐을 때
마치 숨은 듯 검게 색칠되어 하염없이 숨죽이던 그 집은
불을 켜고 문을 열어 기다렸던 그대들을 반길 거라고.
그 한숨 섞인 외침이 들려오는
짙게 검어진 그대들의 집으로.'

- 정혁 <검은 집(The Black Home)> 작곡 노트 중에서
“이 작품을 ‘추모곡이다’라고까진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추도적인 자세로 이 작품을 쓰는 데 임했고, 특히 무속 악기로써도 ‘산조아쟁’이 굉장히 빛을 발하고 있는 악기인데, 산조아쟁의 거친 무속적인 미학을 많이 살리려고 노력했습니다.”

- '정혁' 인터뷰 중에서


“<검은 집>이라는 건 그들이 돌아갈 집이 당당하지 움츠리고 있다는 거죠.”


‘소외되지 못하고, 움츠린 ‘나’’는 곡에 기대고 싶었다. 하지만 기댄 벽은 무너졌다.

   

‘현’의 연주는 어쩐지 배의 창가처럼 느껴졌다. 하나의 창가, 두 번째 창가, 세 번째 창가…. 어쩌면 아직 나는 그가 내고자 한 슬픔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 그의 인터뷰를 보고 나서야 ‘천안함’이 아닌, ‘위로하고자 한 사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위로와 슬픔을 듣지 못하는 것은 앞서 포스터나 텍스트로만 본 그의 음악 설명에 관한 선입견 때문일 테다.


당시 ‘세월호’와 더불어 애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비극적 사건임은 같을지언정 나는 ‘세월호’는 마땅히 추모할 법한 당위성을 가지고 바라보았지만, ‘천안함’은 조금 더 다른 정치적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그의 인터뷰와 곡을 통해서 내 안에 선입견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소외받은 슬픔’이라 함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몇 사람 혹은 대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모습이 대다수였을 세대에 그는 지나칠 수 있을 법한 사건을 잊지 않고 말하고자 했다.


설령, 그의 가치관이 ‘소외된 이들의 슬픔에 주목’이 아니더라도, 이 순간, 공연에서 느껴야 할 것은 그가 주목하고 표현하고자 한 ‘바다가 삼킨, 아직도 끝도 모르게 끝난 이들의 모습’이다.


아쟁들이 차례대로 내는 현 소리들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산조아쟁은 앞서서 더 거칠게 찢어졌다. 작곡가는 <검은 집>에 관해 인터뷰하면서 검은 집의 의미를 ‘외롭고, 움츠러든 사람들의 집’이라 표현했다. 산조아쟁은 무당이 칼춤을 추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20대로서 보수적인 국악계에서 할 말을 못 한 응어리에 어디에 풀고 있었을까. 그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는 ‘국악’이란 음악이었을 터. ‘판소리’가 그렇듯 맞물려 생각건대, ‘정혁’이란 작곡가의 ‘한’은 무엇이었을까.


이 사람은 어떤 슬픔의 결을 만졌길래 이런 선율을 내는 음악을 만들고, 만들어 왔고,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남성훈 연주자의 독주 부분은 어린아이가 일어서서 보게 만드는 퍼포먼스의 영역으로서도 뛰어났다. 그가 언젠가 한 번은 인터뷰를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긴장한 사람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프로다운 모습을 보았다. 저 사람이 곡에 몰입하게 만든 정혁 작곡가와 나누었을 둘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곡이 후반에 치달을수록 곡에서 '하고 싶은 말 진짜 많아 보이는데 미처 다 못다 한 느낌’을 받았다.


<검은 사제들(THE PRIESTS)>(2015)
“도망가. 네가 제일 잘하는 거잖아.”            

“왜. 더 멀리가지 그랬냐?” “신발을 두고 가서요‥.”     

“다 도망가도, 돌아올 놈은 정해져 있다.” “저는 빚이 있습니다. 그때, 전 돌아가지 못했어요.… 동생을 물고 있는 개가 너무 컸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네 잘못이 아니야. 네 동생이 더 작아서 그런 거야. 짐승은 절대 자기보다 큰 놈에게 덤비지 않아. 그리고 악(惡)도 언제나 그런 식으로 우릴 절망시키지. 너희들도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그런데 신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어.””     

“네….”     

“아가토….”     

“네. 여기 있습니다.”     

(붉은 묵주를 건네며)    

“너, 이제 선을 넘었다.”     

”알고 있습니다.”     

“평생 악몽에 시달리고, 술 없인 잠도 못 잠들 텐데?”    

“네….”     

"아무도 몰라주고, 아무런 보상도 없을 텐데…? “     

”’사람의 아들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이 하는 말도 두려워하지 마라.‘“    

”’비록 가시가 너를 둘러싸고, 네가 전갈 떼 가운데에서 산다 하더라도‘“    

”’그들이 하는 말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을 떨지도 마라.‘“


최 부제는 두려움에 도망쳤다 다시 돌아왔다. 자신의 고통을 바로 마주한 최 부제는 어두운 골목을 보며 돌아갈 곳이 어딘가를 본다. 곡을 들으면서 계속 <검은 사제들>이 생각났다. '동해안별신굿'과 <검은 사제들>을 엮게 만든 시발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작곡 노트와 인터뷰 속 작곡가, 그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데도?’란 말에 굳건한 눈빛으로 대답을 대신한 최 부제와 겹쳐 보였다. 용맹한 범띠이자 생일로 받는 뻔한 세례명도 아닌, 잘 택하지 않는 세례명을 굳이 찾아 쓰는 고집스런 사람. 하지만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슬픔을 직면하기로 결심한 사람. ‘아가토’, ‘정혁’을 보면서 ‘아가토 - 최준호 부제’가 생각났다. 앞으로의 정혁이란 사람이 무언가에 직면할 때의 음악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달이 뜨고 하늘은 영들을 위해 축복하는 밤. 그날 세찬 비가 내릴 때. 마침내 <검은 집>의 사람들도 위로받을 수 있을까. 


세상엔 돌아가지 못하고 잠시 멈추어 있는 영들의 집이 있다. '연옥'이다. 어쩌면 나의 동료는 그런 연옥을 이 곡에서 느꼈나 보다.

 

"저는 음악과 <검은 집>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검은 대리석으로 지어진 황량한 신전 같은 장소 같다는 느낌이요. 아무도 없는 거 같은데 검은 집 음악이 들리는 이유는 영혼이 속삭여서 그 공간을 울렸기 때문이라고 느꼈어요. 그리고 노래가 끝나고도 그 속삭임, 한 같은 응어리가 아직 남아있는 거 같아요.“

- 친구로부터의 메모



3. <거문고를 위한 국악관현악 ‘대지의 파도, 하늘의 울림’ (Rhythm of Earth, Rhythm of Heaven : Concerto for geomungo and gugak orchestra) 거문고로 잇는 대지(인간)의 음악과 하늘의 음악

거문고는 분류하기 쉽지 않은 악기이다. 어떤 면에서는 한국의 치터(선율을 연주하기 위해 나무틀을 가로질러 비단 줄을 연결한 것)와 같고, 다른 면에서는 타악기(드럼처럼 악기를 채로 두드리는 것)와 같다. 이 협주곡에는 거문고의 이 두 가지 면이 모두 담겨 있다. 이 곡에는 한국의 <동해안별신굿>에서 볼 수 있는 활기찬 리듬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이 곡은 두 종류의 음악으로 나누어지는데, 바로 대지(즉, 인간)의 음악과 하늘의 음악이다. 거문고는 무속 의식을 이행하는 무당처럼 강렬한 리듬 연주와 초월적인 서정성을 번갈아 가며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작곡 Thomas Osborne(토마스 오스본)의 <대지의 파도, 하늘의 울림> 작곡 노트 중에서
협연 허익수(거문고)

이전에 갈기갈기 찢어진 소리에서 ‘대지(땅)의 소리’로 이어지는 토마스 오스본이 나타내고자 한 소리들은 거문고 소리를 타고 나무가 되고, 숲의 소리가 되었다.


외국인 작곡가로서 낯섦 때문인지, 존중의 차원인지 가장 토속적이었다.



4. <대금과 가야금을 위한 2중 협주곡 <만파식적의 꿈>

이 곡은 오래전부터 구상했던 곡으로 인류 전체의 평화와 민주에 대한 열망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중략) 초반부의 가야금 가락은 2021년 본인이 복원한 '염정관'의 가야금 산조 '진양'가락을 사용하였다. 이 부분은 고통스러운 2022년의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고통을 시작으로 대금과 가야금은 대화를 하며 '평화와 민주'에 대한 간절한 기도를 한다. 이 악장 후반부의 대금 독주(카덴짜)는 만파식적의 염원을 표현한 것이다. (중략) 모든 장단은 원형대로 사용하지 않았고 작곡가에 의해 병용되어 사용되었다. 이 악장은 민중들의 항쟁과 결국 '정의가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그리고 있다.  

작곡 김대성 <만파식적의 꿈> 작곡 노트 중에서
협연 이지영(가야금) 류근화(대금)


평화에 대한 열망을 담아 인류의 행복을 기원하는

'소외됨 없이 음악을 이끄는 자, 김대성’   


김대성 작곡가는 국악계에서 발로 뛰는 작곡가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 때문일까 그의 음악은 마치 맨발을 땅에 대고 걷거나 뛰기도 했다. 가야금과 대금이 내는 소리는 ‘마침내’ 땅에 디딘 느낌을 냈다.


피리는 높지도 낮지도 않음 중간음을 열심히 냈다. 대금은 피리를 이끌며 대지에서 허공, 산, 바람의 풍경의 세찬 기를 느끼는 듯 잔잔하면서도 단단한 소리를 냈다. 김성국 단장의 유난히 춤추는 지휘는 ‘바람 따라, 물결 따라’ 내는 소리처럼 느꼈다.


발을 가진 자만이 땅에 디디는 소리를 느낄 줄 알 테지만, 그가 내는 소리는 어떤 때엔 그렇지 못한 소외된 자들도 이끌고 가는 군중의 대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군중은 군인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음악 속 사람들은 ‘국민’이었고, 곧 ‘사람’이었다.


많은 연주가 이뤄진다던 <풀꽃>처럼,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흐린 눈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싶은지, 후대에 어떤 음악을 통해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떤 소외 한 톨까지도  ‘사람’으로서 받아들이고 자신의 음악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가야금 협연자로 참여한 이지영 선생님은 하얀 옷을 입고서 어떠한 것도 비추며, 어떠한 색도 묻지 않는 오간자로 된 듯한 순수함만이 깃들었을 법한 색의 고운 옷을 입고 계셨다.


이따금 선녀 같은 그녀는 다른 소리들이 연주될 때,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연 현장에서 하늘을 잇는 듯한 기도처럼 느껴졌다. 그녀와 하늘 사이엔 천장이 있었겠지만, 마치 명주실로 어여쁘고 밝게 빛나는 쉽게 끊어지지 않은 염원이 현처럼 보였다. 가야금을 바치는 것도 아닌, 자신을 바치는 것도 아닌 모습 말이다.


나에게서 ‘가야금’은 이번 연주로 ‘슬픔에서 근력 있는 음을 낼 수 있는 악기’로 변했다. 이지영 선생님의 연주는 신비로웠다.


가야금의 독주는 튼튼하고, 열망적이면서도 순수하고 유연한, 근력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처음이었다. 여리기만 한 줄만 아는 가야금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다니….


아이의 “곱다”와 삶을 다 보낸 이가 말하는 “곱다”의 깊은 다르다. 마치 <우리들의 블루스> 속 김혜자가 죽음/마지막을 기다리며 돌 속에 핀 노란 꽃을 보며 “곱다”라고 하는 표정의 주름과 밀도가 깊이 있게 느껴지듯 말이다. 이지영 선생님의 가야금에선 그런 ‘고움’이 느껴졌다. 다만, 삶을 다 보낸 이의 ‘곱다’도, 어린아이의 ‘곱다’까지 어느 지점에 머물지 않고, 그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아름다움과 카리스마가 있었다.


류근화 연주자의 대금이 큰 구름이라면 관현악의 작은 대금들이 소리를 낼 땐 연달아 오르는 구름같이 느껴졌다.


‘가야금’의 가녀린 미에서 ‘대금’은 중후한 소리로 움직였다.


류근화 선생님과 이지영 선생님의 인터뷰를 미리 보고 온 이유 때문이었을까. ‘전통’이나 ‘역사’를 떠나 ‘편하다. 편하다….’ 협연자들이 내고자 한 음들은 작곡가가 나타내고자 한 ‘평화’를 오롯이 한치의 오독 없이 표현하고 있었다.


5. 국악관현악 <춤추는 바다>

(<동해안별신굿>은) 듣고 공부하면 할수록 독특한 매력에 감탄한다. 아마도 동해안 바다의 다양한 기운으로 인하여 그러한 음악이 생성되었으리라. 이 작품은 바다에 대한 아름다움과 문화에 대한 예찬이고 그러한 문화를 만들고 유지해 온 우리 선조들에 대한 예찬이다.

작곡 김성국, 서울시관현악단 단장


"<동해안 별신굿>을 만나고 난 이후부터 ‘전통의 소재’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보물’을 발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왜 어렸을 때, 소풍 가서 나무 밑이나 나뭇가지 위나 바위 밑이나, 보물을 찾잖아요. 누군가는 그냥 지나가지만, 그것을 찾아서 얻는 사람들은 그것을 ‘보물’이라고 알게 되고, 확신하게 되는 순간, 그것의 느낌은 굉장히 말할 수 없는 충만함이 있는데, 어떤 교류를 통해서 ‘전통 재료들’을 선보이는 그런 역할을 ‘저희 악단과 함께 중심적으로 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같이 보물을 찾아보자!’라는 생각으로 ‘전통과 실험’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게 되었습니다."

작곡가 김성국의 인터뷰 중에서


내가 꼭 보물을 찾고 말겠어!   


‘보물찾기’로 비유한 김성국 단장의 인터뷰를 보면서 나는 내가 꼭 ‘보물’을 찾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M씨어터에 들어오기 전에 신발 한쪽이 망가져서 맨발로 뛰는 일은 더더욱 보물 찾기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언뜻언뜻 나는 그의 음악에서 <섬집 아가>가 들렸다. ‘이거 보물인가…?’


“엄마야 / 아가야 / 울지 마라”라고 음이 들릴 때마다 나는 작곡가 김성국이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 혹은 어린이에 관한 특별한 기억이 있는지 궁금했다.


김성국 단장은 국립극장 때부터 전통을 그냥 ‘역사적 기록이나 범접할 수 없는 방대함과 아우라’로 남기지 않고, 계속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왔다. 그것도 엄청 멋지게. 이번에 그의 변주는 어디에서 어떻게 변했고, 그대로 있었을까. 이토록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적인 '국악'이 있다니…. 그가 아니었다면, 국악이 이렇게 재미난 시도를 할 수 있는 재료들이라는 걸 몰랐을 테다. 세종문화회관은 '김성국' 보유 회관이다.


일반적인 편견처럼 느껴지는 ‘전통’이란 굴레에서 벗어나 ‘전통과 실험’을 이야기하는 그의 행보는 마치 신나게 보물 찾기를 하는 사내아이 같기도 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_노크 초이스] 국악 관현악과 합창을 위한 ‘원願’ - 지휘 김성국, 작곡 김성국/ [National Orchestra of Korea_NOK Choice]
내일의 전통, 이것이 국립창극단이다 | 국립창극단 단체 홍보영상 |◾ 음악감독·편곡 / 김성국


‘보물을 찾아’라는 그의 대사는 만화 <원피스>의 루피 같아 보이기도 했다. 국악단이란 해적단을 이끌고 세상에 환멸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그만의 인생엔 소년미가 묻어있었다.  슬픔과 기쁨을 다 이겨내고도 지지 않고 굳건하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선장’, 김성국 ‘단장’은 그랬다.


중간에 묵직한 콘트라베이스와 비올라, 첼로부터 굉장히 재밌어진다. (묵직한 음을 좋아하고, 이들의 악기 이름을 잘 모름을 이해해주셔라. 반박 시 당신의 음악 학문이 맞음.)


어쩜 박자를 이렇게 재밌게 쪼개지? 재단사들 같았다. 내공이 장난 아니다. 마지막에 다시 <섬집아기> 같은 멜로디가 다시 이어졌다. 거문고인가 마지막 악기의 독주는 너무 슬프다. 비 오는 제주 같았다.


어느새 음악에 빠져있는데, 4인의 대금연주는 다섯이 됐다. 들으면 들을수록 호른처럼 느껴졌다. 새벽을 여는 듯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 <춤추는 바다>는 ‘보물찾기’를 하는 아이들의 재잘대는 목소리처럼, 간질이는 소리로 웅장함을 주며 아스라이 마음속에 뭉클함이란 빛을 주곤 사라졌다.


이번 연주로서 나는 어떤 협연자가 어떻게 음을 내는지에 따라 같은 악기더라도 슬픔이 될 수도, 굳건한 의지가 담긴 카리스마를 낼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문득 보이는 건대, 국악기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는 ‘왕의 자리’가 아닐까 싶었다. 서양악기는 사람의 정면과 키 큰 남자 등 사람의 시선에 의해 디자인됐다면, 국악기가 가장 잘 보이는 위치는 ‘하늘’, 곧 ‘왕’과 비슷해 보였다.


곡마다 지휘자의 움직임이 조금씩 다르던데, 그 문법을 알 수 있다면 더 재밌게 음악을 듣고, 음들을 어루만질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찾은 것 같지.. 나? ‘보물’ 말이야….


세종문화회관 22/06/25/SAT M씨어터 전통과 실험 <동해안별신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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