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say

두 번째 폭설 2

나비효과

by 프리즘 리플렉팅


두 번째 폭설2, 2012年 12月 11日과 12日.
나비효과



“엄마, 오늘 그거. 골목식당 하는 날이다. 그거 홍탁집아들, 엄마 오늘 일 가?” “아니.” “그럼 저녁에 그거 보자!” “오늘 저녁엔 오랜만에 계란팩이나 해야겠다.”



12월 13일. 아침의 대화였다.

그날 저녁 나는 앞옆뒤 다른 그 새끼한테 오지게 욕을 하고 전화를 끊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엄마. 엄마. 그거 틀어놔야겠다. 엄마엄마. 나 오늘 그 말 전하던 새끼한테 욕했어. 너 그렇게 살지 말라고.” “그래. 앞으론 절대 네 맘속에 말 들을 말하지말아.” “속이 다 시원하네. 엄마 그거 틀까?” “응. 그래”


“엄마 나 이제 금요일에 수료식 있는데, 나도 아르바이트 찾고 이제 준비할 텐데. 느리지만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우리 좀 더 잘 지내보자. 그치?” “그럼~!”


그렇게 모녀는 각자의 대화를 마치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엄마는 일을 나가셨고, 나는 아침부터 웬일인지 전날 급하게 들이켠 커피 탓인지 긴장의 끈을 모두 해체한 탓인지 모를 메스꺼움에 속을 계속 게워내고 있었다. 오늘 하루는 약속을 어떻게 가야 할지도 모르겠더랬다. 어제 후배 친구를 만나 스케쥴표에 약속들을 정리하던 날 기억했는데. 두 달 전 장염 탓에 응급실을 다녀와 받은 약을 먹기로 했다. 미리 정리해 놓아서 다행이었다. 저녁까지 잘 참아보다가 약속 한 친구에게 연락을 해야겠다는 셈이었다. 내 바람과 달리 속은 좀처럼 나아지질 않았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엄마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엄마 또 핸드폰 잘못 눌렀나 보네 하며 전화를 걸었다.


“엄마 무슨 일이야?”

“야... 아호... 엄마... 넘어져서 팔목이 부러진 것 같아.”

“그게 무슨 말이야?”

“아 너무 아파... 아... 인근 근처 병원 와있는데. 이따가 어디 어디로 와.”

“응 알았어.”


속이 안 좋은데 왜 이런 일까지 겹칠까. 내 속을 달랠 기력도 없이 1초가 흘러가고 있었다.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괜한 엄마의 엄살이겠거니 생각했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니까. 아 어쩐다. 대강 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안경을 꼈다간 여간 귀찮을 것 같아 렌즈를 대충 눈에 찔러 넣고 모자를 썼다. 대충 엄마가 챙기라고 했던 것들을 챙겨 집 밖을 나섰다. 택시는 여간해서 잘 잡히지 않았다. 5분 걸린다는 차는 폭설 탓인지 엄청 느리게 오고 있었다. 전화할 때마다 엄마가 괜찮게 들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마음은 빨리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기사 아저씨와 눈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제설차 하나 다니지 않는 이 도로를 좀 보라며. 생각해보니 어제 대설주의보 문자가 왔고. 나는 어제 종종걸음으로 겨울의 빛을 느끼며 집 밖으로 나갈 일이 생겨 정말 다행이다 싶으며 걷다가 그 작은 골목에서 넘어질 뻔했다. 이 날씨에 웅덩이에 고여있던 조금의 물이 얼었던 것이다. ‘아. 이 정도의 날씨였구나.’ 후배 친구와 헤어지며, 전날 저녁 다른 친구에게 문자를 하며 빙판길 조심하라고 했는데. 나는 엄마에게 빙판길 조심하라는 말을 못했었다...


서울에서 쌓이는 눈을 처음 봤다. 폭설은 엄마의 통증을 더욱더 힘들게 했다. 고모에게 부탁해 병원에 접수를 마치고 이동하는데 눈 때문에 이동이 더디었다. 택시 안에 엄마의 하느님을 찾는 신음만 가득했다. 나는 창문을 내릴 손 하나조차 쓸 기력이 없었다. 응급차는 원하는 병원에 갈 수가 없었고. 사설 응급차마저도 눈 때문에 지금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오려면 2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었다. 나는 엄마가 ‘아버지’란 이름의 주님을 찾을 때마다. 그분을 원망했다. 창밖에 눈이 흩날렸다. “아씨. 그만 좀 내려라.”라고 조그맣게 이야기해도 눈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입술이 하얘져 가는 엄마를 바라보며 거짓말했다. “엄마. 엄마. 조금만 참아. 거의 다 왔어.” “아버지... 아이고.. 아버지...”


병원에 도착했다. 고모의 부축을 받으며 정형외과로 이동했다. 엄마는 계속 진통제를 찾고 있었지만. 병원 상의 절차가 그렇듯 배드(병실)로 이동하지 않으면 처치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엑스레이를 보았냐며 고모가 모니터로 확인시켜 주는데 팔목의 뼈가 이별하듯 멀어져 있었다. 난 상상도 못 할 고통이었다. 차분해져야 하는데. 나는 막막했다. 차분한 고모의 지침에 따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서명을 마쳤다. 한숨 나올 것 같은 복잡한 속은 한 숨 만으로는 가시지 않았다. 엄마는 그 아픈 와중에 진통제를 맞고 가시지 않은 통증 속에서 나 밥 먹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난 아침부터 속이 안 좋았다고. 고모는 점심이 끝나자 모녀의 끼니가 걱정됐는지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몇 가지 영양음료를 사 오셨다.


고모는 엄마가 걱정되셔서 식사하라며 배드를 높였고, 엄마는 통증에 발버둥 쳤다. 고모는 너라도 먹어야 한다며 여기서 먹을래 물으셨다. 나는 병실에 냄새가 퍼질 수 있으니 배선실에서 먹겠다 했다.


모르는 전화번호와 아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끊임없이 왔다. 기력을 차릴 새도 없게. 오늘의 나를 보살피지 못하는 나와 아침 빙판길을 조심하라고 말하지 못한 나. 꼭 오늘 같은 날에 고모마저 없었다며 어찌 됐을까 까마득했다. 신 속을 가까스로 붙잡고 챙겨야 할 몇 가지 물품을 캐리어에 담고 오후가 되어서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느슨했던 오전의 부목은 좀 더 튼튼하게 덧대어져 있었다. 붕대는 꼼꼼하게 감겨 있었다. 아마 1차 병원에서 엄마가 고맙다고 인사를 전했던 의사가 제대로 맞추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다쳤으니 아팠지. 일찍이 엄마는 고모와의 실랑이를 두고 다신 그런 통증은 겪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도. 나도 그건 보기가 힘들더라. 그런데 엄마. 고모는 엄마를 모르니까 그랬지. 고모도 엄마의 통증을 모르니까 챙겨주려고 했던 거고. 나 밥 잘 챙겨 먹었어. 라며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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