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say

애도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도 괜찮아.

진심이 연약하지 않은 곳에서 전하는 글.

by 프리즘 리플렉팅

<진심은 통하는 법이지만, 진심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라디오에서 한 말이다. 순간 가슴이 미어지게 아팠다. 저런 진리를 왜 늦게 알았을까. ‘늦게나마’ 알았으니까 다행이겠지 싶으면서도 나는 서른의 후반에서 좀 더 나 자신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갔다. 20대 중반보다 더 나아진 후반의 나는 너무 다행이게 싶을 만큼 자라났다. 20대 초반엔 ‘강하다’라는 말을 들을 테면 엄마를 떠올리며 그 말이 어딘가 억척스럽게 들리기만 해서 마음 있는 사람이 나에게 그 말을 할 때면 ‘나를 그렇게 보지 말아줘’라고 생각하며 바라봤던 생각이 난다.

하루가 갈수록, 한 해가 갈수록 생각 할수록 나보다 더 어른이었을지 모르는 좋아했던 친구의 마음이 가끔씩은 너무 부럽고, 그 때의 내가 온전하지 못했음에 그 시간들을 놓쳐 진실 된 마음보다 알맹이 없는 형태로 대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하는 것은 너무 놀라울 정도의 인연이고, 그 인연에 겁이 나던 나도, 무서워서 도망갔던 기억도 네가 진심이었다는 걸 알기 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이후가 무섭진 않은데. 그냥 가끔 그 시절에 그 사람이 아련하게 보고 싶다. 물론 이를 두고 그 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다르듯이 그 때의 너와 지금의 너는 다를 테지만 이내 너와의 겨울의 만남 속에서 나는 너를 꼭 안고 너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 때의 나를 믿어주고 널 보여주어서 고맙다고,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그러면 곁에 누가 있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다. 정말 네 행복을 바라는 때가 왔네.

이 말을 전할까 싶으면서도 (나의) 진심은 때때로 세상에 꺼내어졌을 때 형태가 너무 무르고 보잘 것 없어 보여서 연약하다. 연민이나 동정 아닌 그 온전함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을 알아도. 마음을 연 상대에게만은 그 욕심이 자연스레 들키길 바란다. 한없이 연약해져도 좋을 만큼의 사랑은 몇 되지 않는다. 이 한 달에서 두 달 되어가는 시간 동안 그 연약한 마음을 이리저리 굴려댄 사람들을 보면서 가슴 아팠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순수하게 알아봐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감정이나 판단이 아니라 그 상황에 나를 놓아놓고 보게 해주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슬퍼해도 될 날이 좀 더 많다면 좋겠다. 서로의 애도의 시간이 다르다는 게 ‘지겨운 것’이 아닌 우리의 시간이 좀 더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 이야기가 이상하게 들릴 만큼 적어도 내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선 그런 순간들이 이상해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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