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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즘 리플렉팅 Jun 20. 2019

[사라지는 동네] - 그게 그렇게 웃긴가요

대다수의 슬픔과 대다수의 웃음 속에서 당신은 어떤 얼굴이었나요


 커뮤니티 사이트에 재개발 때문에 쫓겨나게  세입자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평범한 아파트 바닥이 보이는 , 상자로 집을 만든 자녀에게 보상을 언급하면서 집을 나가라고 하는데도 이를 듣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밑에는 재개발할  주민들이 구호로 외치는 말들이 달렸다.  귀엽다는 말과 함께. 게시물의 원출처에는 포크레인 장난감차까지 등장했다. 여전히 물러서지 않는 자녀를 보고 사람들은 '귀엽다' 했다.

웃어도 괜찮은가 질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머카테가 아닌 이슈였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강자의 언어이기 때문에 웃기고 귀여워 보일  있다고 했다. 동의할  없었다. 강자의 언어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지금 생각도 다르지 않다. 물론 적절한 보상을  받기 위해 버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개발에 동원된 용역과 싸움에서 밀려나는 주민이다. 갖은 방법으로 주민을 몰아내는 건설업자를 떠올리면 웃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어느 구역에선 자신의 터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다.

쫓겨날 일이 없는 사람들의 유머는 웃기지 않았다. 지금 당장 상자로 만든 집은 사라져도 그들의 실제 집은 사라지지 않는다.

댓글을  달을까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커뮤니티에서 댓글 논란이나 싸움은 득이  것이 없었다. 나는 그저 생각을 공유해줘서 고맙다는 말로 에둘러  게시물을 무시하려고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명은 이것은 웃을  없는 일이라고 했지만, 나의 댓글엔 대댓글로 연이어 뾰족한 말들이   없이 뻗쳐 나갔다. 나갔다 들어오면 댓글이 하나  늘어나 있었다. 그들은 내게 눈치가 없는 사람, 게시판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 눈치 없는 밈으로 굳어진 어떤 연예인의 이름을 들먹이고 있었다. 웃음을 지키기 위해서였을까. 그렇게 뾰족하게 몰아내는 그들의 마음은 편했을까. 무엇이 그리 웃기고, 무엇을 그리 지키고 싶었을까.



그들이 그때 슬퍼한 모니터 너머의 얼굴을 보았다면 좀 달랐을까.


그날 이후로 커뮤니티에 접속하는 횟수를 줄였다. 어느 글에, 어느 댓글에서 그들이 같이 웃고 있을까 그들은 어떤 얼굴로, 어떤 생각으로 규칙을 들이밀고 웃어야 한다고 말했을까. 며칠은 눈물이 났다. 검색창에 남겨진 댓글에 재개발, 상처, 악플, 댓글 등의 검색어가 그간 있었던 슬픔을 말해줄 뿐이었다.


이슈와 유머 목록이 매일매일 새롭게 채워져 간 게시판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울고 있었다. 대다수의 웃음과 대다수의 슬픔에 속할 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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