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즐기는 것, 미각만 필요한 게 아니다.
자리로 돌아와 차분히 테이블 위에 놓인 만 천원의 음식을 본다. 바닐라 케이크라는 파운드 케이크와 7천 원 상당의 홀쭉한 아이스 잔. 심란하다. 커피를 마시는 데 미각만 필요하다면 붐비는 지하철 2호선에서 팔았어야 한다. 사치를 샀는데 즐길 수가 없다.
블루보틀에 왔다. 자리를 잡으려고 두리번거리는데 어디선가 톡 쏘는 냄새가 난다. 왼편으로 돌리니 탁자와 함께 자리가 있다. 각 테이블 위엔 디저트 접시가 보인다. 우연히 구석자리에 앉아있던 남자가 나가면서 안성맞춤인 자리가 났다. 옆에 보니 콘센트가 있긴 하지만 쓰지 못하게 막아놨다. ‘아무렴 어때’라고 주문을 하러 갔다.
카푸치노는 따뜻한 것만 가능하다. 라떼 아이스를 시켰다. 원두에 관해서 설명을 듣고 보니 묵직한 맛보다 가벼운 싱글 오리진이 낫겠다 싶어 선택하고 마침 배도 고팠던 찰나 각 테이블 위에 디저트 접시를 떠올리며 바닐라 케이크를 하나 시켰다. 친절한 직원은 이름으로 호명 될테니 모니터에 이름을 써달라 했다. 잠시 후 직원이 들고 온 접시 위엔 파운드 케이크 하나가 나왔다. 이게 바닐라 케이크라고? 의아했지만 역시 뭔가 내가 모르는 요란함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들고 자리에 왔다. 자리가 나서 앉게 된 소파 위엔 쓰레기가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주목하지 않는다. 테이블 위에 접시를 올려놓고 보니 간격이 너무 좁다. 너무 시끄럽다. 커피가 나오면 이 수다스러운 공간을 뚫고 직원이 일일이 호명해야 하는구나 싶어 바(bar)로 갔다.
한참을 기다렸다. 블루보틀만의 추출방식이니 그러려니 했다. 자리로 돌아와 차분히 테이블 위에 놓인 만 천원의 음식을 본다. 심란하다. 어수선했다. 20분 동안 커피를 온전히 즐기길 바랐다는 창업자의 가치관은 공간에선 볼 수 없다. 공간은 너무 좁고 좁은 테이블의 간격은 옆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 데 섞여 귀가 아프다. 커피를 즐기는 데에 청력은 다른 곳에 줘버린 것 같다. 너무할 정도로 시끄럽고, 정돈되지 않은 이 공간은 사치스럽다. 사치를 샀는데 사치를 즐길 수가 없다.
20대에 커피를 처음 접하고 커피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사람들의 호응을 끌어냈는지 궁금했을 때 보게 된 글이 있었다. 글쓴이는 카페를 선정하고 평가할 때 테이블 간격을 본다 했다. 옆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면 커피를 온전히 즐기기 어렵다는 이유였는데 그 글을 본 이후로 자리에 대한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 글쓴이는 어느 카페를 자주 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따라간다면 십중팔구 멋진 식사를 할 것같다.) 커피 가격은 그때보다 몇천 원은 더 비싸지고, 카페와 커피 소비자는 많아졌는데 공간은 그대로다.
블루보틀의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은 “와이파이는 주의를 분산시킨다. 고객들이 커피,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뭘 더하기보다 뭘 뺄 수 있을지 늘 고민한다.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의미 없이 6시간을 앉아있는 것보다 단 20분이라도 좋은 커피와 정말 멋지게 보내는 게 낫지 않나”라고 했다. (“‘블루보틀’ 와이파이‧콘센트 없는 이유? 한국에서 통할까?”, 부산일보, 2019.05.03.)
창업자의 가치관이 배어 있을 것만 같았던 블루보틀에서 나는 20분을 전혀 멋지게 보낼 수 없었다. 앉은 자리의 간격은 비좁았으며, 맛은 특별하지 않았다. 비좁은 공간 때문에 시끄러운 소리는 빠져나가지 못했다.
같이 있는 사람과도 즐기기 어려울 정도의 어수선함은 이젠 빼야 할 때가 아닐까. 카페가 가지는 가치관, 공간과 맛이란 원칙을 지키는 곳이 있을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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