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마지막 예능을 봐야 한다면
인생 마지막 순간에 하나의 예능을 봐야 한다면, 어떤 예능을 보고 싶은가? 나는 감히 <유퀴즈>를 선택할 것이다. 아프리카, 유튜브, 트위치까지 감히 인방러 7년 + 1N년 의 짬바를 거쳐 인터넷 문화에 찌든 나는 이 프로그램이 무척이나 반갑다.
유튜브 한 바퀴를 돌고나도 더 성장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예전엔 웃기라도 했다면 이젠 이 채널이 저 채널 같고 진행자만 다른 느낌이다. 고르고 선별해서 구독했을 텐데도 씁쓸한 뒷맛이 남는 영상 콘텐츠가 넘쳐난다. 하지만 유퀴즈는 다르다. <유퀴즈>를 통해 지켜보는 삶은 타인일지라도, 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힘과 위로가 느껴진다.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질문 아래, 세대를 넘어 우리가 어떠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질문할 것인지 묻고 답한다. 사람들의 이야기하는 모습을 ‘잘’ 담아내어 각박한 삶에서 챙길 수 있는 여유와 미소, 행동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게 한다.
학교 후배 또치와 길을 걷고 있는데 요즘 즐겨보는 유튜브는 뭔지, 앞으로의 콘텐츠와 플랫폼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선배님. 요새 뭐 보고 있어요?
"또치야. <유퀴즈 온 더 블럭> 꼭 봐."
"왜요?"
"그걸 보고 나면 앞으로의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느낄 수 있어. 우리가 아무리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공통관심사 없는 친구들이랑 얘기할 땐 '그게 뭐야?'라든지, '재미없어', '잘 모르겠어'란 이야기를 하잖아? 그런데 유퀴즈는 달라. 이전 세대에도, 다음 세대에도 얘기할 수 있는 포맷이야. 마치 옛날에 양심냉장고가 생각나게 한달까. 우리가 자라나서 혹은 죽기 전에 유튜브 그거 영상 하나 안 봤다고 후회하진 않을 거야. 그런데 유퀴즈는 달라. 동생들과도 부모님과도 얘기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 그런 공감점이 있는 게 큰 매력이야."
"꼭 볼게요!"
콕 찝어 유퀴즈였다. 자주 봤던 게임 채널이나 또치가 선호하는 좀 더 즉흥적이고 재미가 있는 채널을 추천해 줄 수도 있었지만, '지금' 있는, 그리고 앞과 뒤를 이을 수 있는 세대공감 재미감동서스펜스어쩌구대충 즐거움 모두 담아 콕 찝어 <유퀴즈>였다.
1. 진정성이란 스테디셀러를 베스트셀러로 만들다.
'나는 어떤 삶을 살다 가고 싶은가?'라는 질문으로 깊게 고민했었을 때다. 취준생이라 취업을 하는 게 우선이지만, 어떤 회사를 가야 할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너무 고민됐다. 월요일을 앞둔 주말에 가장 많이 본 말은 '회사 가기 싫다'는 말이었다. 월요병에 걸리고, 직장은 그저 월급을 받기 위해 다닌다는 말,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은 필요하지만, 사치라는 말에 지쳐있었던 때, <유퀴즈>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시민을 만나는 포맷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지금도 길거리로 나가 인터뷰하는 유튜버나 스트리머는 볼 수 있다. 시민을 다루는 포맷 자체는 많지만 유퀴즈가 특별한 이유는 뭘까? 대형방송국, 연예인일 수도 있지만 ‘잘 다듬어진, 능숙함’이라고 생각한다. 날 것이라기보다는 편안함 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정성'이 있다. ‘진짜’ 이야기는 오래도록 갈증 나고 자주 찾는 소재다. 유퀴즈는 유재석이란 국민 MC의 능숙한 태도와 조금은 완벽하지 않아도 친근한 조세호란 캐릭터를 활용하여 화자가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한다.
매회 유퀴즈를 보면서 '어떻게 이런 삶이 있을 수가 있지? 너무 멋지다'는 생각을 한다. 멘토링 강연이나 세상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놀라운 일들을 한 연사가 있는 강연들에 가면 “그건 어떻게 하셨어요? 저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등, 더 나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질문을 하게 된다. 유퀴즈는 그저 시민을 만났을 뿐인데 장인이 있고, 자신만의 철학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평범함 속에 특별함이 뭔지 주목한다.
유퀴즈를 보고 나서는 가장 좋아하는 방법으로, 가장 소중한 것을 지켜내는 방법을 알게 됐다. 갈등과 폭력에 맞서기 위해 같은 행동을 하는 대신 꽃을 심을 수 있다. 옛날의 나는 배우지 못했지만, 오늘의 나는 어려운 형편에 놓인 학생들을 위해 기부를 할 수 있다. 유퀴즈를 보고 나면 가장 단순하고 나답게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
2. 출연자를 한 번 더 생각한다.
유퀴즈는 시민이 낙오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한다. 시민을 만난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유튜브 진행자도 당장 거리로 나가 만날 수 있는 가장 쉬운 소재가 시민일 것이다. 하지만 만나기 쉽다고 다루기 쉬운 건 아니다. 대상이 친숙하다는 것이 장점이겠지만 잘 가꿔진 방송인은 아니기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는 말을 할 수도 있고, 쉬운 소재이니만큼 거칠게 이용할 수도 있다. (이미 그런 몰래카메라 형식의 유튜브와 가족 몰카 등 어그로를 끌기 위한 자극만 좇은 영상이 어떠한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퀴즈는 시사상식 퀴즈와 백만원이란 상금을 주 진행요소로 쓴다. 하지만 퀴즈를 틀렸다고 해서 멍청이처럼 낙인찍거나 하지 않는다. 보고 난 시청자도 인터뷰이를 쉽게 비난하지 않게 된다. 왜일까. 한 사람의 세상의 깊이를 조금 엿본 다음엔 너그러워진다.
사람이란 콘텐츠를 표현하는 방법 - <골목식당> vs <유퀴즈>
작년 겨울, 심지어 최근 3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골목식당의 애청자였다. sbs 다시보기로 챙겨보다가 오로지 골목식당을 편하게 보기 위해서 푹tv까지 결제했다. 하지만 최근 2개월가량은 골목식당은 10초 점프하면서 보거나 그마저도 보지 않아 해지할 생각을 하고 있다.
골목식당의 취지는 상생이지만, 솔루션이라는 내용 전개 특성상 고정 출연진과 일반인 출연자의 관계는 수직적일 수밖에 없다. 백종원이라는 선생님 밑에서 배우거나 조언을 통해 개선해나가는 전개. 김성주나 조보아, 정인선처럼 MC가 공감하고 얘기 나누면서 '함께'해요라는 액션을 취해도 결국 카메라가 잡고 편집해서 보여주는 건 제작진의 해석이 담긴 손님 옆에 달린 자막, 당황한 출연자의 표정, 긴장한 모습, 흔들리는 동공 같은 모습이다. 가끔 골목식당을 보다 보면 질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시청자로서 우리는 이미 한 번 가공된 사실을 접한다. 방송을 보며 쉽게 평가했던 일반인 출연자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아무리 식당 주인이라는 직업으로 음식에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결국 일반인이다. 손님을 생각하지 않는 태도로 식당 운영을 쉽게 생각하고 관리 안하는 식당 주인을 두둔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매주 역대급을 뽑아내기 위해 자극적으로 만드는 행위들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과해 보일 정도로 일반인 출연자를 수혜자처럼 대상화시키고 그들의 몸짓, 눈빛을 극적으로 클로즈업해서 마치 진행자의 시혜적 태도를 받기만 하는 광대로 만들어 쉽게 그들을 쉽게 소비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방송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가보면 그 주에 있었던 자극적 하이라이트엔 그들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쉽게 내뱉어진 욕설 리플이 많이 있다. 제작진은 시청자들에게 출연자들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깊게 고민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골목식당도 백종원의 진정성과 책임감에 자신들의 책임까지 전가하는 모습은 그만두고 이제는 본질로 돌아왔으면 한다.
골목식당은 이제 매력 있지 않다. 골목식당에도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다. 빌런에서 천사로 변신한 듯한 홍탁좌 편이 끊임없이 회자하는 이유는 한 인간의 성장이 보였기 때문이다. 재료가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철없는 아들의 모습에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느끼고 일하는 모습으로의 변화는 시청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하는 이유와 동기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포방터 돈가스 사장님이 계속 대단하다고 회자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극적인 모습은 없었지만, 일생을 음식에 대한 책임감과 전문성을 갖추고 무리하지 않는 모습은 분명 성장 동기를 자극했다. 진정성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줘도 괜찮을 텐데 어떻게든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다 보니 자막이 많아지고, 출연자들의 표정이 불필요하게 많이 클로즈업된다.
<유퀴즈>는 달랐다. 유재석과 조세호란 진행자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이일뿐, 일반인 출연자의 위에 있지 않다. 자극적으로 가공하지 않는다.
그간 <유퀴즈>가 일반인 출연자들을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은 느껴졌지만 27화의 문래동 편은 특히 제작진의 깊이 고민한 편집 점이 드러난 편이라고 본다. 철공소 사장님 인터뷰에서 경기상황이 어떠냐는 질문에 사장님은 청년 창업가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집값을 많이 올리고 있다, 기존에 사람도 힘들다고 말했다. 중간에 살짝 편집이 들어선 느낌이 든다. 유재석은 좋은 정책인데 마음 아픈 일이라고 공감하고 자막은 '새로운 변화가 공존의 방향으로 나아가길'이라고 마치고 다음 인터뷰로 넘어간다. 만일 여기서 화제성 논란을 만든다면 문래동 편은 정책으로 쉽게 터전을 자리 잡은 청년 vs 동네의 오래된 중장년층의 구도로 잡을 수도 있었을 거다. 대신 유퀴즈는 청년과 중장년층이 같은 지역이란 공간 안에 어떻게 함께하고 있는지를 그저 보여주고, 더 함께 하는 방향으로 가자는 방향의 자막을 삽입한다.
영상 소비가 대세인 지금, 영상 콘텐츠의 대부분은 눈이며 귀까지 붙잡으려 출연자들의 대화를 자막화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송 영상은 2차 가공을 통해 캡쳐 본으로도 소비되기도 한다. 그래서 구태여 자막처리 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일반적인 흐름에서 포기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래동 편 뿐만 아니라 다른 에피소드들도 마찬가지다. 시청률을 위해서 자극적인 면을 액기스처럼 꼬집어 “여기 보세요. 여기 이상한 사람이 있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느 클립을 보아도 출연자를 특별하게 만들지, 특이하게 평가받지 않게 한다.
애초에 유퀴즈가 지향하는 바도 그런 면은 아니지만, 충분히 이상하게 보일 수 있는 지점과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발언들이 있는 지점에서 유퀴즈는 한 번 더 생각했다. 1회 때부터 32화(19.08.27일 기준)까지 밤 11시 편성이라는 핸디캡을 자극성으로 돌파하려 하지 않았다. 유퀴즈는 쉽게 가지 않는다. 그 점이 지금 유퀴즈를 특별하게 한다.
3. 남들과 같아지려 하지 않는다.
방송 프로그램은 앞으로 어떤 콘텐츠를 다뤄야 할까. 방송이 아무리 트랜디하려고 해도 인싸, 핫플레이스 등 트랜드를 쫓아가려고 하는 건 이제 방송보다 유튜버가 더 잘한다. 그들은 빠르다. 방송이 기록할 때는 늦은 감이 있다. 핫플레이스에 찾아가 누구나 다 시키는 음식을 먹어보고 경험해보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후에도 유효할 콘텐츠가 될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평가하고, 여기선 꼭 먹어봐야 해! 하는 것들의 방법이 비슷비슷하다면 굳이 볼 필요가 없으니까. 와썹맨이 그래서 특별했었다. 유퀴즈는 뭐가 다를까.
유퀴즈는 일방적이지 않다. 매회 질문하는 이유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트랜드를 고집하지도, 방법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저마다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사를 잘 비추도록 한다. 오늘을 살면서 어제의 삶을 이야기하고, 앞으로의 희망을 꿈꾸게 한다. 시청자로 하여금 동시대를 살아 온, 앞으로 같이 살아갈 다른 이들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유퀴즈를 보며 방송이 앞으로 어떤 내용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지를 본다. 넘쳐나는 자극과 호기심 속에서 무엇을 궁금해하고 어떻게 표현할까, 남들과 같아지기보다 애초에 가진 것으로 달라질 방법은 무엇일까 깊게 고민할 때이다.
"수많은 이들의 삶이 그물처럼 얽혀있는 이곳, 그 모든 역사를 알기엔 너무나도 짧은 하루…(중략) 기억하는 만큼 잊으며 사는 우리, 오늘은 또 무엇을 새기고 지웠나. 지워서는 안 될 삶의 일부가 있다면, 각자의 낡은 서랍 속에 고이 간직하기를.. 긴 세월 돌고 돌아 무뎌져가는 이 아픈 기억처럼..."
- <유퀴즈온더블럭> 26화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편 엔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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