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같은 그림

결말은 다르게 지을 수도 있어.

by 프리즘 리플렉팅

나는 소설을 싫어했다. 소설 읽을 바엔 수필을 읽지. 왜 허구의 것들을 좋아한담 싶었다.


난 거짓을 싫어했다. 허구가 싫었다. 수필은 허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꿈꾸는 건 SF만큼이나 내겐 와닿지 않았다. 이 세계에 없는 것들에 대해 논하는 게 집중이 안 됐다. 죽음을 접하기 전까진 말이다.


비슷한 나이대의 연예인이 하늘로 떠나는 날이 많아졌다. 엊그제 들은 소식은 기억 한켠에서 너무 따뜻하게 남아있는 사람이 죽었단 소식이었다.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반려견의 죽음과 또래 연예인의 죽음 이후에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이전까지는 '애도와 추모는 조용하게'가 기본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죽음엔 요란하게 슬플수록 내 슬픔이 좀 더 견디는 힘을 가지게 되는 걸 알았다.


세상엔 어떤 이가 죽었느냐에 따라 슬픔도 대우를 받는데, 그중에서도 나와 관련 없는 이의 죽음은 절망적이게도 슬픔 취급을 받지 못한다. 이를테면 연예인, 연예인, 연예인¨.


정말이지 그럴 때면 갑자기 오늘 한 일들이 죄 다 '소비'란 단어로만 뒤덮이고, '너의 슬픔' 같은 건 아랑곳하지 않는 세상이 눈에 띈다.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는 백색소음들이 다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20대 때 헤어진 연인이 생각날 때 보다 백만배는 더 슬프고 힘이 없다. 밥맛이 없다.


비보를 접하고 난 이후 세상은 식물원을 홍보하는 네온사인처럼 모순적으로 흘러간다. 슬픔이 삐져나올 때마다 갖가지 철없단 핑계와 맘속으로 스스로에게 욕짓거릴 하며 다시 눈을 메마르게 한다.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이렇게나 한참 이후에 알게 되는 타인의 슬픔들¨ 2020년에도 항상 속수무책이다.


방금 들른 카페, 마트, 빠르게 소비와 유통이 이뤄지는 곳들에서 난 그녀의 소식을 뒤늦게 안 사람1일 뿐이고, '연예인 걱정은 쓸데없다'는 세상에서 연예인 걱정을 하는 1인으로 남는다. 자본을 가진 자가 가장 여유롭게 웃는 곳이 이토록 많은 곳에서 마음 편히 털어놓은 사람 없다는 사실에 난 나에게 계속 말을 건다. 고리타분하게도 나는 갑자기 '현실'이란 벽에 부딪히는 것 같다. 웃음은 잘만 다뤄지는데, 어떤 이의 죽음은 애석하게도 잘 다룰 수가 없다. (언젠가는 내 가족의 죽음이 그럴 것이다.)


작년에도 그랬듯, 연예인 친구도 아닌 그저 그들을 바라보던 시청자 1인은 슬픔과 애도를 삼일장도 치르지 못한 채 보내야 한다.


그 겨울에도 그랬고,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럴 것이다. 연예인이 죽는다고 내 슬픔이 인정받기란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게 사회인의 모습을 갖추는 거라고 망연자실해 헛헛한 밤을 보내다가 그림을 그렸다. 이 슬픈 결말을 다시 쓰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자. 누군가도 나처럼 이 슬픈 밤을 힘없이 보내고 있을 테다. 적어도 내가 그릴 수 있고, 적을 수 있는 말들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리라 생각하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녀가 좋아한 캐릭터들과 메인 MC였던 프로그램의 고양이를 그려 그들이 그를 맞이하고 안아주는 모습을 스케치했다. 따뜻한 색으로 배경을 물들이고,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으로 아픔이나 추위 따윈 없는 세상에서 행복해질 수 있도록 따뜻한 상상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의 소식과는 상관없는 '고수익 창출'이라는 스팸성 광고를 게시하기도 하고, #소통이나 #맞팔해요 같이 그녀의 죽음과는 상관없는 게시글에 그녀 이름을 태그했다.


나도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혹시나 그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볼까 싶어 몇 개의 기억을 담은 태그를 걸고 그림을 올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늦은 새벽과 다음 날 아침까지도 그림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사람이 있나 보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나 보다. 수필과 다르게 허구여도 좋으니까.


상상 속에서 행복만 있을 수 있도록, 슬픔은 쥐여주지 않고 싶어서. 그래서, 그래서, '나도' 그래서 그림을 그린 것처럼, 상상 속에서 결말은 다르게 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멋쟁이희극인박지선 #사랑하는우리지선이를_부탁해 | 인스타그램 ⓒfrom.doyun
#박지선_자기님, 따뜻하고 아픔없이 잘자요. 너무 고마웠어요. | 인스타그램 ⓒfrom.doyun


정해진 안녕 따위는 없어 아름다웠던 그 기억에서 만나

♬ 아이유(IU) - 에잇(Eight) (Prod.&Feat. SUGA of BTS)

정해진 안녕 따위는 없어, 아름다웠던 그 기억에서 만나 / 슬프지 않은 이야기를 나눠우울한 결말 따위는 없어 / 난 영원히 널 이 기억에서 만나 Forever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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