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많이 사람들의 뒷모습을 못 본채 살아간다. 인터넷으로 인해 건너편에 있는 사람의 표정을 읽지 못하게 됐다. 반응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웃고 즐겁기만 하다면 그만인 콘텐츠를 환영한다. 언제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에 웃고 우는지. 그 사람의 어제는 어땠을지, 어떤 마음으로 신음했을지 덜 생각한다.
이제는 돌로 직구를 던지는 것도 모자라 뼈를 때린다. 팩트로 폭행하고 사이다까지 들이켜야 제법 속이 시원하다. 참 쉽다. 때린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면서, '폭행'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그 감각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참 이상한 애'라고 만든다. 그 말에 무너지는 사람들은 도태된 사람처럼 라벨링하고, 몇 번의 피드백을 해도 1, 2, 3.. 무한대의 숫자를 만들며 '의견'이라는 말 뒤에 숨는다.
어떻게든 팩트폭행을 받아야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처럼 말한다. 마치 그 글을 보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이를 바로잡기 위해 팩트로 뼈를 때려주는 온 영웅들이 만들어진다. 어떤 이는 지금 삶이 잘 흘러가고 있지 않은 마음에 자신을 더 질책하기도 한다. 경주마처럼 채찍질을 당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처럼. 정말 아이러니하다. 밖에선 평가받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는 사회가 되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큰 응원을 받는데, 그 뼈 때리는 말들에 굳건하지 못하면 연약한 사람처럼 대한다. 묻고 싶다. 정말 그렇게 뼈를 때리고 싶을 정도인가? '폭행', 폭력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심지어 잘 모르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더 가혹하다. 너의 삶은 나보다 얼마나 쉬울까 말하는 댓글들이 달린다. 기사 속 너의 삶이 어떤 비하인드가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고통으로 신음하는 사람의 어깨 한 번 쓰다듬어본 적 없으면서 너무 쉽게 이해하고 너무 쉽게 오해한다.
"쟤는 얼마나 세상이 쉬울까. 예쁘고, 돈 많고, 자기 멋대로 해도 사람들이 좋아해 주네. 역시 연예인 걱정은 쓸데없어."
설리의 게시글은 항상 뜨거웠다. 댓글엔 이전에 그녀의 팬이었는데 행보를 보고 돌아섰다던가 그래서 너무 잘 안다는 식으로 성격부터 오늘의 생각까지 아주 잘 안다는 듯이 적혀진 댓글과 그녀의 행보를 응원한다는 얘기들로 뒤엉켜 있었다. 세상 사는 게 쉬워 보인다는 얘기들, 어떻다더라는 그녀의 캐릭터를 하나씩 만들어갔다. 그녀는 그런 캐릭터들 속에서 잘 이겨내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쩌면 우리가 그런 사람을 기대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소비할 땐 '당당한'이란 수식어를 붙여가며 남의 의견에 신경안쓰는 사람으로 소비했었으니까.
이런 사람이 등장할 때도 됐지 하며 우리의 용기를 위임했다. 큰 응원과 그에 못지않은 비난 속에서 그녀가 그런 존재가 되길. 그건 그녀의 책임이 아니었다.
미디어는 그녀의 캐릭터를 부풀리는 데 가속했다. 그녀의 인스타그램은 시시각각 보도되었고, 옷을 안 입은 것도 아닌데 속옷 하나 안 입었다며 법적 처벌이 가능하냐를 논했다. 그녀의 캐릭터를 내세워 '악플의 밤'이라고 기획하기도 했다. 악플을 읽는 연예인들의 표정을 비추며 상처받은 말들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언론 보도에선 '허심탄회하게' 말한다고 되어있지만, 카메라가 비추는 프레임 안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저 악플에 대한 내용을 더 재생산하는 데 그칠 뿐이었다.
악플의 낮과 밤이 있어 밤에 상처받는 이들을 비추려 했다면, 상처를 재생산하기 보다 그들을 보호할 방법이 필요했다. 악플에 다신 낮이 오지 않게 법적인 제재를 통해서 악플을 끝내게 했어야 맞다. 차라리 전문가들을 동원해 이런 악플을 달면 주옥되는 거라고 말해주고, 악플에 있는 모습들이 결코 자신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게 맞았다. 미디어에서 그녀는 '악플'하면 떠오르는 유명인사였고,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카메라 안에서 소비될 뿐이었다. 더 가혹한 말들에 견뎌야 할 다른 모습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우리가 용기 있게 견디길 바라는 모습을 그녀에게 위임한 것처럼. 그게 진짜 설리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녀의 내면이 얼마나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생각에 몇 번이고 어깨가 짓눌렸을지보다 포커싱되는 모습들은 예쁜 모습, 꾸며진 모습 속에서 여전히 우리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채로 굳건히 버티는 설리.
모든 것의 시작이 '우울증'이라고 귀결하는 것도 너무하다. 한 사람의 인생은 그렇게 단편적이지 않다. 마음의 감기라는 것도 진부하다. 언제까지 감기 취급할 건지도 의문이다. 마음이 아픈 것은 '내 일' 아닌 '네 일'이 되어 개인의 몫으로 병원에 맡긴다. 어쩌면 작은 알약 하나보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물어보는 게 더 필요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못 해낸 것 같은 삶이라고 낙담할 때 당신이 어떤 때에 웃고, 어떤 때가 가장 당신다워 보이는지 말해주는 게 더 필요할 수 있는데 말이다. 힘들면 다른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어야 하는데. 진짜 필요한 팩트는 그런 말들 아니었을까.
우리는 너무 많이 사람들의 뒷모습을 못 본채 살아간다. 인터넷으로 인해 건너편에 있는 사람의 표정을 읽지 못하게 됐다. 반응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웃고 즐겁기만 하다면 그만인 콘텐츠를 환영한다. 언제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에 웃고 우는지. 그 사람의 어제는 어땠을지, 어떤 마음으로 신음했을지 덜 생각한다. 아니면 아예 생각도 안 하거나. 돌직구로 잘 안다 하는 사람이라며 돌을 던지고 이제는 뼈를 때리고 싶어 하며 사이다를 들이킨다. 구역질이 난다. 오해는 쉽고 이해는 어렵다며 또 어떤 사람의 어깨를 짓눌렀을까.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지. 오늘 하루가 끝나지 않는 것만 같다.
화면 밖의 네 표정을 본 적이 있어. 분칠을 벗겨 내고 전부 시늉이었단 걸 알릴 거야.
집단에 파묻히면 양심을 가려지는 법이지
뭔 노력을 펼쳤고 어떤 수모를 겪었던 출세는 너가 다시 욕먹을 자격을 줬어.
누리는 만큼 더 큰 대가를 치러 백 번의 선행은 모래 위
한 번의 과오는 바위에 다 새길 거야
지코 - ANTI (Feat. G.Soul)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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