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뮤비해석과 이야기들
그림자가 사라지는 밤이 되고 나서야 맘껏 그리워할 수 있었는데, 이젠 이 노래 덕분에 낮이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이하 리뷰 내용은 주관적인 견해와 해석으로 가수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으며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본 <프리즘 리플렉팅> 페이지 외에 다른 곳에서 일부라도 인용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다른 분들의 뮤비해석에 반영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링크 공유'로 생각을 나눠주시길 바랍니다.
몇 해 혹은 한 해에 걸쳐서 떠나보낸 또래 연예인들의 죽음은 인연 한 번 닿아본 적 없던 내 인생에도 큰 아픔이 되었다. 매일 아침 등굣길에 힘이 되어주던 노래의 가수가, 매력적인 사람이, 용감한 사람이, 신나는 노래를 들려준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뉴스 속보에 떴다.
연예인 때문에 슬퍼하는 것은 이 사회에선 쉽게 용납되는 일이 아니라서 하루빨리 일상생활로 복귀해야 했다. 하지만, 끝내 감히 그 마음을 헤아려봄 직한 어두움들이 찾아오는 날들이면 그들이 어김없이 생각났다. 너무 많은 추억과 기억 곳곳에 그들이 있었다.
매일 밤 설리를 찾았다. 죽었다는 걸 알면서도 내 우울함의 정당한 이유라도 될 것처럼 찾고 찾았다. 그런 날은 꽤 많았다. 스마트폰 사진 앨범에서 예뻐 보여서 저장한 사진 속에, 20대에 되고 싶던 모습으로 혹은 무관심하고 관심 있던 모습으로 곳곳에 있었다. 그런 발견을 하면 할수록 그의 죽음은 믿기지 않았다. 아마 그의 죽음을 접했던 때의 충격이 쉽게 사라지지 못한 탓이었으리라. 우울한 날들을 보내며 그 깊은 밤들을 어떻게 견디고 있었는지를 상상하면서 그가 남기고 간 흔적들을 찾았다. 계속 그가 미처 말하고 싶던 건 끝내 말하지 못하고 가진 않았을까 하는 마음들이 눈물처럼 그리움에 맺혔다.
이번 신곡의 뮤비를 보면서 이제 우울한 어두움이 조금씩 걷히는 것을 느꼈다.
가사의 첫 문장인 'So are you happy now’가 '설리 you happy now'라고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 한 가지 말을 두고 여러 해석을 나누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번 아이유의 신곡 <에잇>은 앨범커버의 모양부터 뮤직비디오, 가사까지 중의적으로 해석될만한 것들이 많아 보인다.
8의 의미와 도마뱀
이번 앨범 커버엔 어떤 나라에서든 알아차릴 수 있는 공용의 기호를 썼다. 단순히 기호로선 무한이라는 뜻이다. 영어 제목은 'Eight'이며, 한국 제목은 '에잇'이다. 굳이 '팔'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일까. 제목을 읽어보면 "에잇!"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 뱉는 말로도 보인다.
숫자 '8'은 공교롭게도 종교적인 의미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불교에서의 반복은 '윤회'를 뜻한다. 기독교적 의미로는 조물주의 7일 창조 이후 맞이하는 여덟 번째 날로서의 8이 있고, 노아의 홍수의 성경 구절 속에서의 숫자들 - 아브하람의 아들, 예수가 부활한 날로서의 8이 있다. 즉, 성경에서의 의미로 8은 '구원' 새로운 출발, 재창조를 의미한다.
연예인으로서 그에게 일어난 슬픈 일을 모르는 대중이 아닌바, 소중한 이들을 떠올리며 수많은 추억과 기억을 여행했을 무한의 시간을 담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립고 애틋한 감정 모든 것들의 반복. 끝나지 않는 상대를 향한 반복되는 감정들.
이는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도마뱀'과도 연결이 된다.
도마뱀은 '꼬리를 잘라내도 꼬리가 자라는 동물'이다. 벌레를 잡아먹고, 잡으려 하면 손아귀에서 도망친다.
도마뱀의 꼬리처럼 잘라내도 다시 자라고 마는 모습처럼, 아픔 또한 다시 자란다. 이는 아픔의 연속일 수도, 다시 태어나는 도마뱀의 꼬리처럼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다.
검은 매니큐어, 화려한 드레스와 벽돌집
뮤직비디오에서 아이유는 기억장치에 누워 모든 시간을 저장하려 한다.
기억장치에 누운 이가 입은 하얀 옷, 그의 손톱이 까만 것으로 보아 그는 세상에 없는 이의 모습으로 보인다.
기억의 시작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아이유의 모습으로 넘어간다. 첫 등장에서 큰 커튼을 열고 등장한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영혼이 되어 자신이 편안하게 머물렀던 곳에 다시 방문해서 옛 기억을 더듬어 보는 듯하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집에 들어선 모습인지, 아니면 연예인 시절의 화려한 모든 이미지의 총합인지도 모른다.
불 꺼진 거실에 복숭아 모양 조명이 보인다. 모든 불이 꺼져있다.
아이유의 전신이 보이는 샷의 풍경이 되는 벽돌집은 설리의 집과 비슷해 보인다.
눈에 그려진 그림
모든 게 어두운 공간 안에서 회상하듯 떠올려진 장면 속에서 그는 편하게 빛을 받으며 누워 뭘 먹기도 하고, 환하게 웃기도 한다. 이 장면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눈가에 그려진 그림이다. 여기서 설리를 안 떠올릴 수가 없었는데, 설리는 인스타라이브 중에 립으로 아이 메이크업을 하듯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개구진 표정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모습과 스타일까지 설리가 많이 떠올랐다.
곧 불 꺼진 방안을 둘러보는 그의 손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그의 오른손에 약지에 낀 반지로 이어진 진주들, 오른손 약지에 끼는 반지는 '평온'을 의미한다. 진주는 만들어질 때 생기는 고통 때문에 아픔이나 눈물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픔이 평온으로 이어진 걸까.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아이유는 꺼진 방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다 2층 창문 앞에 선다. 창에는 유성이 떨어지는 게 보이듯 빛들이 아래로 향하고 있다. 혹은 반대로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처럼도 보인다. 유성 같은 빛은 가슴을 스치는 위치에 있다. 그날의 뉴스처럼, 모든 이들의 마음에서 떠나갔던 날을 상기시킨다.
비는 자연의 순리를 그대로 따라 정확히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화려한 옷의 아이유는 울적한 표정으로 떨어지는 비를 응시한다.
오렌지 = 주홍빛 태양
저녁은 주로 주홍빛으로 묘사된다. 그림자가 제일 길어지고, 밤을 앞둔 시간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가장 차분해지고, 잠에 드는 시간. 그림자가 곧 없어질 밤이 돼서야 마음껏 그리워했다.
푸른 숲을 보면서 그냥 숲이기 전에, 나는 누군가의 양지가 생각이 났다. 발인이 있다고 한 날 f(x) 멤버 빅토리아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왔었듯 그날은 날이 정말 좋았다. 그날 돌아가던 저녁 빛이 어땠는지 그날의 날씨가 기억에 박혔다. 양지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했을 노을 속 저무는 태양은 '오렌지빛'으로 물든다.
섬 - 외로움이나 고독보다는 영겁의 시간을 지나야만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섬
슈가의 랩이 시작되면서, '섬'이란 말이 등장한다.
섬 그래 여긴 섬 서로가 만든 작은 섬 / 예 음 Forever young 영원이란 말은 모래성 / 작별은 마치 재난문자 같지 / 그리움과 같이 맞이하는 아침 / 서로가 이 영겁을 지나 / 꼭 이 섬에서 다시 만나
- 아이유 <에잇(8)> 속 슈가의 랩 중에서
나는 '섬'이란 말을 타블로의 <Airbag>을 들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이후로 내게 '섬'은 주로 외로움, 사회로부터 고립된 이미지로 여겨졌지만, 슈가의 랩 속 섬은 타블로의 <Airbag> 속 섬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슈가의 랩 속에서 표현된 '섬'은 타인들에 의해 발견된 외로움이 담긴 곳이라기 보단 서로 이어지지 못한 독립된 '공간'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곳의 섬은 각자가 머무는 아주 개인적인 공간이기도 하며, 영겁을 지나야만 만날 수 있는 이가 있는 현실과 또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집에 가기 싫은 밤이면 택시 기사 아저씨가 빠른 길만 피해가. 라디오에선 말 많은 디제이가 쉽게 웃어주는 게스트와 노래는 틀지 않지. 대화가 길어져. 평상시엔 듣기 싫어서 주파수를 돌려 달라 했겠지만, 뭐, 듣고 싶은 노래도 없는데. 계속 떠들게 내 생각 음소거를 해. 알 수 없는 말에 폭소가 이어지고, 굳은 표정이었던 기사 아저씨도 함께 웃는 것을 보니 요즘 뜨는 유행어인가 봐. 어쩌면 나만 섬인가 봐.
- 타블로 <Airbag> 중에서
하늘나라 & 비행기
비행기 장면 속 아이유는 창밖을 바라본다. 옆 좌석 승객의 스마트폰으로 미루어보아 이는 연예인 아이유의 모습으로 보인다. 창밖엔 아이유가 같이 노는 편안한 공간에서 함께한 도마뱀이 창밖에 있다. 창을 살짝 건드리자 곧 안전벨트를 하라는 메시지와 함께 폭풍우가 몰아친다.
연예인으로서 위태로웠던 날들을 상징했을 것으로 보인다. 곧 꿈에서 깬 놀란 아이유는 걱정하며 도마뱀이 제자리에 잘 있는지 확인한다.
도마뱀은 사라졌고, 베란다 창이 활짝 열려있다. 믿기지 않는 듯 밤하늘을 바라볼 때 빛이 아이유를 스친다. 곧 아이유의 가슴을 파고드는 이미지 속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의 모습이 나타난다.
소녀는 주홍빛으로 물든 풍경을 배경으로 덩굴진 수풀을 스케이트 타듯 내려가고 자유롭게 뛰어다닌다. 결심이라도 한 듯 더 높은 곳으로 뛰어오르자 태양과 만나고, 하늘에서 용이 된 도마뱀의 등을 안는다. 폭풍우 속 같은 하늘에서 둘은 서로를 지나가며 안부를 묻는 듯이 서로를 응시한다. 비행기 속 아이유는 눈물이 고인다.
굳은 다짐이라도 하듯 내뱉는 '우울한 결말 따위는 없어'라는 가사와 함께 사라진 줄 알았던 도마뱀은 용이 되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소녀를 구한다. 소녀는 그런 용을 발견하자 안도한 눈빛을 보이며 용에게 안긴다.
'하늘나라'는 모든 안식의 표현이며, 죽은 영혼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곳이다. 비행기는 지상에서 바라보던 드높은 하늘 속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연예인으로서 스케줄을 수행하며 비행기에서 구름 사이를 오가며 느꼈을 감정으로 보이기도 한다.
Forever Young
블랙핑크의 <Forever Young>이 젊음을 아낌없이 불태우는 노래의 제목으로,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는 의미였다면, 아이유의 <에잇> 속 'Forever young'은 영원히 20대로 머물 이들을 기리는 말로 보인다.
슈가의 랩이 염원을 담은 'Forever young'이라면, 아이유는 '우리(we)'라는 말을 덧붙여 'Forever we young'으로 마무리 짓는다. 그때 그 시절 떠나보낸 이들이 혹여라도 외롭지 않게, 혹은 부르고 있는 자신이나 듣고 있는 모든 이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듯이….
이런 악몽이라면 영영 깨지 않을게
꿈은 꿈에서 깨고 나서야 꿈인 줄 안다. 가슴 시리도록 애틋한 꿈은 가끔 악몽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떤 두려움이 가득한 꿈이라 하더라도 보고 싶은 이들이 등장한 꿈들이 그것이다. 좀처럼 현실에 머물지 못하게 하고 하루를 위태롭게 만드는 악몽일지 모르지만 한 편으론 꿈에서만 만날 수 있기에 영영 깨고 싶지 않은 꿈이 될 때가 있다.
슬픔에서 건져 올린 듯이 적셔진 머리가 마음을 쓰리게 한다. 지난 <Love Poem>이 한 번 깊은 곳으로 털어버리는 마음이었다면, 이번 곡은 다음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슬픔을 받아들이고, 다음을 시작하는 이야기.
이번 노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구간은 '우울한 결말 따위는 없어' 다. 꼭 어떤 죽음이든, 기억이든 '우울한 끝'으로 만들지 않으리란 다짐이 느껴졌다.
최근에 꿈에서 깨고 나서야 꿈인 줄 알았던 기억이 있어서일까. 이번 노래는 꼭 뮤비의 내용과 가사처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갑자기 떠나 쉽사리 지울 수 없고, 영원히 기억에서만 만날 수밖에 없는 소중한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내내 꿈에 한 번을 나오지 않았던 내 동생 별이가 그랬다. 내내 꿈인지도 모르고 이마를 쓰다듬고 콧잔등도 쓰다듬다가 이마에 뽀뽀를 해주다 일어났다. 일어나서 보니 허공에 입 맞추는 걸 깨닫고 꿈이라는 걸 깨달았다. 마지막 이마 뽀뽀와 손으로 쓰다듬던 별이의 이마와 콧잔등의 감각은 진짜일 정도로 남아있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모든 것들이 그리워지는 밤이면 가장 가까웠던 내 동생 별이가 너무 그리웠다. 따뜻한 별이의 품도, 베고 누웠던 별이의 곁은 이제 없지만, 이 노래에 기대어 잠시 기억 속에서 누웠다.
기대고 싶은 노래가 생겼다. 감히 너무 고맙습니다.
♬ 아이유(IU) - 에잇(Eight) (Prod.&Feat. SUGA of BTS)
닮기도 다르기도 한 빛의 프리즘처럼. 세상의 빛이 되고픈 사람들의 이야기 <프리즘 리플렉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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