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준 변화된 일상
어느 날 늦은 밤이었다.
샴페인 시티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조카, 레베카가 전화를 했다.
"이모! 여기는 이제 아무도 없어~외로워 죽겠어!"라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급히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들려왔다.
레베카는 대학이 있는 샴페인 시티에서 대학 후배들과 자취를 하고 있다. 코로나가 폭발할 무렵 모든 학생들은 일찌감치 가족이 있는 집으로 떠났다. 식품점 외에는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급기야는 함께 살고 있는 후배 유학생들도 모두 고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하던 작은 도시는 한적한 시골처럼 생기를 잃었다.
레베카는 8월에 병원을 그만두고 시카고로 근무지를 옮길 예정이었다. 대학 가는 텅 비었고 친구 하나 없는 그곳에서 지낸다는 건 고역이었다. 미리 앞당겨 사직서를 내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당분간 위험한 시기를 지내며 휴식하면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 하루아침에 마비된 유령의 도시처럼 적막한 곳에서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외톨이 신세가 되었다.
코로나가 미국을 강타하면서 코로나 확진자가 되거나 사직으로 또는 거리두기를 하면서 하루아침에 외톨이로 지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소위 코로나 외톨이다. 사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요즘은 연로하신 부모님은 물론이고 홀로 지내는 사람이나, 심지어 가족과 함께 하는 사람이든 누구나 외톨이 신세다. 일상생활에서의 관계의 단절로 비롯된 것이다. 직장, 학교, 친구들로부터의 거리감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회사로부터 무급휴직을 통보받고 5월 4일까지 대기 중이었다. 각주(states)마다 셧다운으로 이미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 경력 11년째인 나라고 별수 있나? 하루아침에 백수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냥 집콕하면서 식품점을 가는 일 외에는 누구와도 만날 수 없고 갈 곳도 없었다. 그것 또한 사실은 외톨이 생활이나 마찬가지다.
2주를 보내고 3주째 들어선 월요일 아침, 느닷없이 회사 인사과로부터 전화를 받고 화요일부터 출근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회사가 예상보다 빨리 불러준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한편으론 더 쉬고 싶었지만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집에서 외출도 없이 감금된 것처럼 편안한 외톨이로 지냈다. 회사로 나가면 외톨이 신세는 좀 면하겠지라고 생각했다. 회사에 출근했더니 웬걸,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마침 선배 언니도 며칠 전부터 호출되어 일을 하고 있었으나 일하는 데스크는 떨어져 있었다. 매일 몇백 명으로 정신없이 북적거리던 회사는 부서마다 몇몇 안 되는 직원들만 출근한 상태라 전체적으로 썰렁했다. 방문자도 허용되지 않은지 오래다. 이전처럼 역동적으로 움직인다는 느낌도 없었다.
시카고가 속한 일리노이(Illinois) 주는 매일같이 코로나 확진자수가 꺾일 기세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런 이유로 직원들은 마스크를 하고 모두 거리두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평소엔 가장 기다리던 점심식사시간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회사의 방침에 따라 자기 데스크에서 혼자 먹거나 멀치감치 떨어져 식사를 해야 한다.
점심 먹는 재미로 직장에 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부서의 점심시간은 사장님도 끼고 싶어 할 정도로 특별한 시간이었다. 12시 정각이 되면 한국부서의 직원들은 각자 도시락을 들고 식당으로 모인다. 라면을 끓이고, 계란 프라이를 하고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하는 등 각종 요리를 해서 한자리에 앉아 음식을 함께 나누었다. 이제는 그런 즐거움이 사라졌다.
모두들 마스크를 쓰고 있어 반쯤이나 가려진 얼굴을 마주 보고 나누는 대화도 신통찮다. 길고 깊이 있는 대화란 힘들고 어색하다. 모두가 누군가로부터 왕따를 당한 사람들처럼 혼자다. 모든 업무는 전적으로 이메일로 이루어진다. 멀치감치 떨어져서 대화하느니 아예 얼굴을 마주보는 일없이 전화 한 통으로 끝낸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직장생활이다. 이처럼 직장에서도 누구나 외톨이 신세가 되었다. "우리"라는 공동체에서 "나"와 "너"의 삭막한 관계가 되었다. 코로나 시대의 따분한 직장생활의 현실이다.
매일 주일이면 친정을 가듯 설레는 마음으로 가던 교회 주일예배도 온라인으로 드리게 된 지 오래전이다. 이민생활에서 교회란 큰 활력을 주는 곳이다. 대부분 이민자들의 삶은 주일날의 교인들 간의 친목으로 이루어진다. 그것마저 사라진 지 오래다.
교회와 신앙생활을 통한 이민생활의 즐거움이 없어졌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이민자들의 외톨이 삶이다. 이민자들에겐 주일날 교회를 가는 일이란 고향집처럼 기다려지는 그리운 곳이다. 인터넷도 없고 SNS에도 낯선 교회 어른들은 더 많이 외로워졌다. 가족을 만나는 일만큼 교회 친구들의 얼굴을 대면하는 정겨운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도시의 폐쇄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암울하고 우울한 외톨이 신세가 모두에게 얼마간은 지속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망한다. 우리의 사소하고 평온한 일상을.
초겨울처럼 쌀쌀한 날씨에 그저 웅크리고만 있던 초록색 나뭇잎들이 이제야 활짝 돋아나기 시작했다. 연초록 잎들의 싱그런 인사를 받는 아침은 소박한 어제 같던 오늘을 선사한다. 어느 집 창가에 놓여있는 작은 십자가의 불빛 하나에 위로와 감사를 떠올린다. 매일 아침 출근길마다 매번 눈길을 끄는 어느 집 잔디밭에 우뚝 서있는 팻말에는 "be Kind(친절하자고요, 다정다감하자고요)" " Hope is Alive (희망은 여전히 여기에)"라는 말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듯 힘을 주고 미소를 짓게 한다.
코로나로 인해 외톨이가 되어 홀로 지낼 가족들과 친구들, 이웃들의 마음이 따스해졌으면 좋겠다.
나에게, 모두에게 이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
우리, 곧 괜찮아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