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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Jul 19. 2020

밥과 친구사이

밥과 친구의 찐한 사랑

"밥" 이란 것이 단순히 배고프면 먹는 음식이 아니다. 우리 생활을 유지하는 의식주 중에 최고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밥 때문에 울고, 웃고, 사랑하기도 하고, 이별도 하니 밥은 곧 라이프다. 그러니 "밥(음식)"은 삶을 리더 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밥의 정치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밥 한 끼로 군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듯이 사람의 마음도 또한 그렇다는 뜻이 아닐까.


밥은 사회생활에서 친구를 만드는 일에도 기여를 하고, 깨는 일에도 한 역할한다. 밥과 친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실과 바늘 같은 관계다.


친구를 만드는 일은 "그래, 밥 한번 먹자고~!" 하면서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밥 한 끼를 나누며 시작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밥과 친구는 가족과 달리  무조건 먹여주는 사이는 아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친구관계를 무리 없이 이어가기 위해서는 주고받는 밥 정치가 원만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잘 되지 않으면 아무리 잘 맞는 친구라도 절단이 나는 사태가 일어난다.  


왜냐면, 밥과 친구는 나와 너의 사회적 관계라 무조건 일방통행이 되면 곤란해진다. 즉, 한쪽만 밥을 사는 일이 일어난다든가, 남의 밥을 얻어먹으려고만 하는 근성은 뻔대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첫 단추를 잘 꿰맞추듯 , 밥과 친구 사이는 처음 시작부터 꿍짝이 맞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친구라고 해 봐야 주로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내가 만나는 친구는 한두 명의 또래와 교회의 언니뻘과 동생 같은 몇몇 싱글 맘들이다.


나의 경우에는, 친구 유형과 형편에 따라 밥과 친구에 대해 내가 정한 원칙을 고수하는 편이다. 싱글맘인 동생 같은 친구는 무조건 내가 밥을 산다. 무엇보다 좋아서 하는 일이다. 빈둥거리며 사는 내가 베푸는 일 한 가지를 하고 싶어서다. 만나고 싶으면 먼저 연락한다. 서로 바쁘게 살다 보니 이런 일은 몇 달에 한 번꼴이다. 일단 이렇게 먹는 밥은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간다. 보통은 장소를 옮기지 않는다. 바로 그 자리에서 커피와 간단한 후식까지 해결한다. 상대방이 부담을 가질 수 있기도 하고, 그냥 번거롭기도 해서다.


보통은 내가 밥을 사면 상대방도 기분 좋고, 미안해서 저절로 "아, 커피는 내가 살게 "한다. 기꺼이 내는 한 끼 밥에, "내가 밥 사니, 너는 후식이래도" 이런 식의 거래성 밥 사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풀 코스를 내가 산다. 아주 가끔 상황에 따라 커피정도는 사양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커피 값과 팁을 내느니 친구 집으로 자리를 옮겨 마시기도 한다.


이런 친구는 밥 한번 먹은 것을 꼭 갚으려는 친절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유로 보통 다음 약속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한 끼 먹은 밥에 무슨 빚이라도 진 것처럼 한사코 갚겠다고 나서면 집으로 간다. 그 집밥을 먹고 차 한잔을 마시는 것으로 한다. 이런 식의 밥과 친구는 내가 좋아서 일방적으로 밥을 사는 거라고 보면 되겠다.


다음은, 지극히 일반적인 밥 친구다. 정기적으로 마음이 당기면 만나는 또래 친구다. 내가 다니는 단골 치과에서 일하는 친구로, 근 10여 년간을 보면서도 밥 친구가 되지 못했다. 우연히 여행 이야기가 통해서  밥 한 끼를 먹게 되었고 서로 꿍짝이 맞았다. 정기적인 밥 친구가 되었다. 지금까지 무난하게 밥 정치(?)가 통해서 만남이 이어가고 있다.  


서로 처음에는 밥 사는 일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차츰, 둘 다 숨겨진 왕성한 식성을 과감 없이 드러냈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 것도 비슷했다. 한번 밥을 먹게 되면 연약한 여자 둘이서 애피타이저는 기본이다. 주로 3인분까지 시킨다. 웨이트리스가 보기에도 "어? 한 분 더 오세요?"하고 물어볼 정도다. 테이블이 무슨 잔치상처럼 꽉 메워진다. 남으면 가져갈지언정 무조건 잘 먹자는 스타일이다. 어릴 때 아버지가 잔치상 같은 밥상 앞에 앉으실 때면 꼭 하신 말이 생각난다. "아~ 목에 때 벗기는 날이야~" 바로 그런 날 같다.


이 짓도 서로 죽이 맞으니 한다. 만약 한쪽에서, 밥값을 염두에 두고 "아니~왜 이렇게 많이 시켜?, 난 쬐~끔만 먹는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그래서 밥과 친구는 천생연분이어야 한다. 남편과 아내는 밥(음식)으로 너무 잘 맞지 않아도 "아이고~"하고 참고 산다. 하지만 친구사이는 밥 정치가 안 맞으면 매번 짜증이 난다. 대번 갈라서게 된다. 밥과 친구사이가  중요한 이유다.


이런 식의 푸짐한 식사는 당연히 밥 값이 세게 나온다. 그러다 보니 반씩 부담하는 것으로 잠정 합의(?)를 보았다. 의기투합이 잘 되니까 가능한 것이다. 밥 정치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밥도 친구도 모두 만사 오케이 즐겁다. 대화는 술~술 수수께끼 풀리듯 일사천리로 이어진다.


인간사가 이처럼 척척 순조롭기만 하면 좋으련만. 어디 사람이 내 마음대로 되냐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세 번째 유형은, 남의 주머니 사정이 어찌 됐든 공짜밥을 즐겨먹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어딜 가도 이런 사람은 꼭 있다. 나이에 상관없이. 개인적으로는 이런 배려심 없고 뻔대 같은 친구는 없다. 아니, 안 둔다는 게 맞겠다.


나랑 살고 있는 레베카(조카) 이야기다. 대학 선배로 가끔 만나는 좀 친한 언니가 있다. 몇 번을 만나는 동안 밥을 산적이 없다고 어느 날, 푸념을 쏟아냈다. 밥값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게 치사해서 "그래 버텨라! 착한 내가 밥 산다 사!" 하며 이를 악물고 몇 번이고 밥값을 고스란히 지불했다. "이런 인간과는 절교야!" 하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라 작정까지 했다. 몇 번까지나. 많이도 참은 셈이다.  


문제는, 그 아씨가 특별한 친구도 없는 데다 레베카를 좋아한다.  그저 별 사심 없이(밥 잘 사는 동생이라서가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수시로 통화하고 또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자세히 들어보니, 그 친구는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무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집안의 내력이 그런지 어릴 때부터 깍쟁이 기질을  타고났다. 뭐든지 아끼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게만 산다면 반드시 부자로 살 것 같은 사람이었다.


구두쇠 아씨인 건 확실하다. 절약하느라 깍쟁이 노릇을 한다지만 자기 밥값까지 은근슬쩍 떠넘기는 심보는 친구 자격 첫심에서  박탈이다.


그래도 기회(?)는 한번 주어야 하지 않겠나. 만날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레베카에게 비결(?) 하나를 말했다. 그 아씨는 천성이 " 응, 내가 밥 살게~" 하고 선뜻 말을 못 하니 너(조카)가 그 말을 대신해주라고 했다. 만나자고 전화하면 "아! 언니가 밥 산다고?! 아이고 좋아라~”라고. 그것도 애교 있게, 쏘아붙이듯 단 한방에 날려야 한다. 발칙하고, 당당하게.


아무튼, 레베카는 짠순이고 뻔대인 그 아씨가  죽어도 안 할 말을 대신했다. 물론, 그녀는 아무런 저항 한마디 못하고 순순히 백기를 들었다. "응, 알았어"라고. 그 후부터 두 사람의 만남은 정기적으로 이어졌고 밥 값 때문에 신경 쓰는 일도  없어졌다. 미국식으로 딱 반씩 부담한다. 자연스럽게 평화로운 협상이 이루어졌다. 둘은 이전보다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사이가 되었다.  밥. 친구, 둘 다 잘 풀린 셈이다.


그러고 보면 미국 사람들은 참 합리적이다. "각자 부담(pay separately)"생활이 마치 규율처럼 되어있다. 일찌감치 밥값 안 내려는 뻔대를 염두에 둔 것 같다. 회사에서 매니저도 직원들의 밥을 사는 법이란 없다. "밥 먹자!" 하면 음식을 오더 하고, 텍스(tax)와 팁(tip)이 포함된 각자 부담액이 이메일로 전송된다. 그런 다음 그룹 대표가 돈을 거둔다. 주로 직장에서 공동식사나 일대일 식사 테이블에서의 공짜 밥 어림도 없다! 아무튼 미국 사람들의 밥 친구는 과감하고 심플하다.


그런 그렇고, 밥과 친구는 언제나 한 짝이다. 특별히 주고받는 사이다. 너무 한쪽만 일방적이어도 무너지는 관계다. 죽이 맞지 않는 친구는 무리하게 맞추느라 시간과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나는 30대에는 노느라 바빴다. 한인타운을 몰려다니며 밥 먹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 당시의 밥과 친구사이란 연예인과 패션, 남의 이야기가 주된 관심사였다. 어느 날, 공허한 생각이 들었고, 곧 소란스럽고 화려한(?) 걸(girl) 그룹을 탈퇴했다.


너무 많은 친구도 필요 없다. 과감하게 자르고 재편성 할 필요가 있다. 지금쯤 드는 생각은 한. 두 명의 친구로 깊고 오랫동안 갈 수 있다면 성공이다. 그야말로 마음을 나누는 밥과 친구사이다. 그거 하나면 족하지 않겠는가. 기쁘면 목이 터져라 웃어대고, 슬픔에는 서로 눈물도 찔끔한다. 하루살이 힘겨움도 나눈다. 친구가 있어 좋고, 어느 장소에서 함께 나눈 밥이 이야기를 만들고 추억을 만든다. 그렇게 함께 나이를 먹고, 꿈을 꾸고 , 세상을 바라보면서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무슨 그리 많은 친구가 필요할까.


 청춘일 때 밥과 친구는 삶의 넑두리와 꿈을 나누는 것이 되고, 중년이 되면 사소한 푸념과 마음의 슬픔을 나누는 것이 된다. 노년이 되면 밥과 친구란 어떤 의미가 될까?.. 난 아마 친구랑 얼끈한 김치찌개나 구수한 된장찌개에 밥 한술을 뜨며 자질구레한 여행 이야기를 들먹거리지 않을까. 서로 얼굴에 진 주름에 가슴 찡 하며 아이 같은 미소를 주고받기도 하면서. 아! 인생이란 이렇게 평범하고 별거 아니라고 말하겠지.


밥과 친구사이의 찐한 사랑이란 이렇게 변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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