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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Aug 30. 2020

딸 도둑들

딸 부잣집 엄마는 괴로워

흔히, 딸 많은 집을 가리켜  "딸 부잣집" 이런 식의  별명이 붙여진다.


딸이래도 줄줄이 3명 이상이 돼야만 “딸 부잣집” 자격이 된다. 나는 딸, 딸, 딸만 있는 집의 막내다. 그런고로 우리 집도 딸 부잣집이다.


내가 자랄 때는 남아 선호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사내아이를 낳지 못하면 며느리 자격 미달, 심하면 박탈까지도 있었다 한다. 그 당시의 "딸부자"라는 말은 며느리인 엄마의 입장에서는 욕설 같은 불편한 말이었다.

할머니의 심기가 뒤틀린 날에는 "너는 어째 아들도 못 낳냐!" 하는 말을 간혹 들었다고 한다.


세명의 며느리 중에서 유독 엄마만 딸을 주르륵 셋을 낳았다. 아들! 하는 그 시대의 “아들 바람"은 은근히

스트레스였다. 막말로 "그게 어째  내 맘대로 되냐고요!" 속으로만 중얼거렸을 뿐이다. 그냥  찍 소리 한번 하지 못하고 살아야만 하는 시대였다.


시대가 변하고 세상의 문화도 달라졌다. 어른들의 구호였던 "아들 바람"은 점점 딸 선호도로 변해갔다.

성별 상관없이 생기는대로 환영, 또는 아예 자녀 안 가지기로 하는 커플도 많아졌다. (아직도 일부는 아들 선호를 하지만) 그나마 빠르게 변하는 세상은 “ 아들 보단 딸이 좋지!” 하며 딸, 딸, 딸을 외친다.


왜? 비싸게 키워놓은 아들은 장가가면 끝장이다. 오직 며느리와 장모의 남자가 된다나?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그래서 딸이 좋다. 늙으면 부부 곁엔 딸이~, 엄마에겐 딸이 있어야 돼~라는 믿음 같은 소망들이 막 생겨나기 시작했다.


딸부자는 부모에게 무슨  베네핏처럼  든든한 존재이기도 하다. 딸 가진 엄마는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아들 가진 엄마는 고작해야 국내선 정도라나. 뭐 그런 의미로 딸 부잣집의 엄마는 신난다. 딸부자란 말의 효력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엄마도 막내딸 덕에 미국 비행기를 몇 번이나 탔다. 딸 가진 행운을 나름 누린 셈이다.

이 딸, 저 딸이 돌아가며 사는 효도 밥을 드시기도 하고, 여행도 가신다. 조금만 편찮으시면 딸들이 바로  뛰어가고.. 딸이 좋긴 하다.  


겉으로 보면 우리 집 딸들도 이것저것으로 엄마에게 효녀 노릇을 하는 것 같다. 딸 부잣집이라 엄마는 아들만 가진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하지만 백 프로 순수한 효녀 노릇은 아니다. 망원경으로 보듯 은밀히 들여다보면 엄마한테 베푸는 것 이상으로 뭔가를 가져온다. 압수(?) 비슷하다. 엄마가 어쩔 수 없이 내놓아야 하는 일도 있다.


어떤 것은 슬쩍 가져 오기도 한다. 예쁜 이불도 가져오고, 찬장 안에 사다 놓은 접시 세트도.. "아~ 이거 예쁘다~"하면, 엄마는 딸이 달라고 하는 줄 안다. 당장 가져가라고 쥐어준다.


어떤 때는 엄마의 육체적인 노동력을 대가로  용돈을 좀 얹어주면서 몇 배로 착취한다. 엄마는 손자, 손녀를 돌보아 주는 유모가 되기도 했다. 집을 지켜 달려든가, 급한 볼일이 있으면 엄마를 파출부처럼 불러대기도 한다. 엄마는 딸들을  지키는 파수꾼 같다. 이 일에 정신적, 물질적, 온갖 수단을 다한다.


김장 때면 "아무렴, 김치 맛은 엄마 손맛이지!" 하며  엄마를 메인 요리사로 초대한다. 맛깔스러운 장아찌며 밑반찬도 가져온다. 물론 엄마가 건네주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눈독을 들이대니 어쩔 수 없다. 엄마 손맛이 좋다는 입 서비스 한마디로 공짜 음식이며, 물건 등을 아무 거리낌 없이 챙겨 온다.


이러니 딸들이 도둑이나 다를게 뭐가 있나?

해서 둘째 언니는 “내 딸년도 그렇고, 딸들은 어째 도둑년 같아~~"라고 대 놓고 말한 적이 있다.

큰언니와 나를 향해 뱉은 말이다.


 우선, 딸년”이라는 말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딸년"이라는 말이 좀 뭐하지만 사실, 욕설이 아니다. 경상도에서 여자아이를 가리켜 "가시나"라는 말을 쓴다.  굳이 갖다 붙이면 “딸년”은 어른 가시나다. 간혹 딸이 미워 보일 때 엄마들이 쓰는 애칭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아무튼 둘째 언니가 제법 센(?) 말로 둘(큰언니와 나)을 공격했다. 세 딸이 공범(도둑년)이었으면 이런 말도 나올 리가 없다. 한 명이 살짝 양심적인 딸이었다고 할까? 그것이 둘째 언니다.


그녀는 항시 엄마의 당당한 대변인(?)이다. 엄마는 울화통이 터져도 속으로 삼키기만 할게 분명하다. 아무리 용돈이니, 밥 한 끼 등의 뇌물로 잘한다고 해도 항시 딸년들이 좋겠는가?


둘째 언니는 본인이 맹세하듯 딸 도둑(년) 공범자가 아니다. 세 딸 중에 엄마의 노동력을 요구한 적도 없다. 무엇보다 엄마 집에서 멀리 떨어져 산다. 전철로도 2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다.


아무리 급한 일 이래도 엄마 호출은 없다. 뭐든지 솔선수범한다. 베풀기만 할 뿐 받아 챙기는 일도 없다.

제일 착하고 인정이 많기로는 둘째 언니가 최고다. 그야말로 셋 중에 가장 순수한 (?) 효녀다.


그녀가 언니와 나를 향해 "딸 도둑년"이라는 말을 뱉은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큰언니와 내가 엄마의 노동력을 가장 많이 착취한 인간들이라는 것이다.


큰 언니는 " 음, 아무렴 여든 엄마는 내가 지켜!” 하면서 엄마를 지척 거리에 두고 살고 있다.

근데, 어떻게 된 것인지 엄마가 언니를 돌볼 때가 더 많다.


큰 언니는 몸이 허약하다는 이유로 툭하면 몸살이 난다.  급한 볼일이 생기면 엄마 집으로 경보음이 울린다. 형부 저녁상을 차릴 손이 필요해서다.

김치를 담그고, 된장을 빚을 때도 엄마는 달려가고 또 달려간다.


생각해보면 나도 큰 언니 버금가는 정도다. 방문차 시카고에 오신 엄마를 3년간이나 반강제적으로 사시게 했다. 나랑 살고 있었던 레베카 (큰 언니의 딸)가 하이스쿨에 다니는 중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레베카를 케어(care)하고, 집안 살림을 하는 일이 버거웠다. 그야말로 엄마의 도움이, 노동력이 필요했다.


둘째 언니 설교대로라면, 엄마 노동력에 비하면 딸 도둑들이 엄마에게 베푼 효심은 본전도 안된다고 한다.

노동력의 가치를 굳이 따진다면, 우리가 생색내고 들이댄 효도 관광이니, 선물이니, 용돈으로는 마이너스라고 한다. 엄마는 그 정도로 헌신. 봉사하셨다.


 "힘들어~"라고 징징대는 딸들이 늙어가는 엄마의 황금 같은 시간과 에너지를 뺏어 버렸다.

 딸들이 효도를 한다고 생색을 내면서 어째 엄마는 딸들의 극성에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이제 허리도 점점 굽어지는 여든이 넘은 엄마다.

마음이 한없이 애틋해진다. 둘째 언니 말대로, 진짜

도둑 딸로 산 적이 많으니 어쩌나.


아! 더 이상 딸 도둑(년)은 싫어!

엄마! 미안~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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