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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Aug 23. 2020

지금 외출 중

혼자 잘 노는 일이란  

얼마 전, 한 지인과 산책 중이었다.

”혼자 어떻게 놀아요?”라고 한마디 불쑥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나랑 정기적으로 만나는 동생 같은 친구다. 딸 둘과 지낸 지 오래된 싱글맘이기도 하다.

큰 얘가 하이스쿨을 다니고, 둘째도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모두들 “ 나,  방해하지 마!” 하고 방문들을

꼭꼭 잠그고  칩거하다시피 한다.


옛날처럼 같이 붙어 다니는 일도 점점 줄어들었다. 딸들은 컴퓨터 게임만으로도 혼자서 잘도 논다.

밥 먹을 때나 아쉬운 볼일이 있을 때만 엄마를 찾을 뿐이다. 엄마는 그저 딸들을 지키는 파수꾼이면 된다는 식이다. 엄마 따윈 관심이 없다.


정신없이 돌아가던 생활 패턴이 갑자기 한산해졌다. 이젠 시간이 남아돈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은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 되었다. 그녀 말로는 가끔은 하는 일없이 멍 때리며 벽만 쳐다보다 잠들 때도 있다고 한다.


특별히 티브 시청이나 SNS를 즐겨하지도 않는다. 즐기는 취미도 없고, 딱히 좋아하는 일도 없다. 유일한 게 있다면 이웃 엄마들과 모여 수다 떠는 일이 전부다.


이렇게 가까워진 이웃 친구들 마저도 어느 날부턴가 하나. 둘씩 동네를 떠났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너도 나도 큰 집이 필요하다며 서버브로 이사를 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사도 마치 유행병처럼 돌더니 휘~익하니 모두들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도 혼자 잘 놀고, 동네 여자들의 수다방도 없어졌다. 이제 그녀에겐 혼자 잘 노는 일이 절실해졌다.

“혼자 잘 놀려면 뭘 해야 할까?" 하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했다.


우리 둘은 취향이 틀리니 내 것(취미)을 카피하라고 들이밀 수도 없다. 퀴즈 맞추듯 "이건 어떻고 저건 어때?" 하며 말을 맞추어 보았다. 의외로 그녀가 잘하는 일들이 많다.


수예, 피아노, 수영, 독서, 음식 만들기 등등.. 웬걸? 나보다 잘하는 것이 많다!.  그녀도 카운트를 해 보더니 "어? 나도 제법 하는 게 있네~" 하며 빙그레 웃는다. 그동안 놓아버린 일들이다. 까마득히 뒷전에 놓여있었던 것들이었다.  


그녀는 하고 싶은 것 두 가지를 픽(pick)했다. 피아노 연주와 수예다. 취미로 삼을 수 있는 좋아하는 일을 고르기로 했다. 바빠졌다.


소위 지금 그녀는 다른 세상(?)에서 혼자 놀기 연습 중이다. 제대로 빠지려면 확실한 것 하나를 애인처럼 삼아야 하는 일이 과제처럼 되었다.


연애를 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일 찾기에 열렬해졌다고 할까. 뭐 그렇다. 좀 근사하게 말하자면, 그녀는 지금 화려한 외출 준비 중이다.


흔히 외출이란 소소한 볼일 목적도 있지만 생일파티나 지인들의 모임 등 좀 특별한 행사가 아닌가. 폼나는 옷으로 제법 근사하게 차려 입고, 한바탕 신나는 시간을 보내는 일이지 않나.

 

이렇듯 나만을 위한 놀이 시간이란 특별한 외출 같은 것이 아닐까? 여자에겐  더 많은 외출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외출=혼자만의 에너지 충전 시간이다.


흔히 요즘 말로 자신에게 바치는 찐한 애정의 시간이 되겠다. 여자에게 외출이란 신선한 바깥바람을 느끼는 것과  같은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 그런 거다.


싱글이야 좋아하는 일만 있다면 언제고 혼자 잘 놀 수 있지 않는가. 문제는 결혼한 여성들이다. 우리들에게 외출이란 잠시 주부, 엄마, 직장이라는 타이틀을 집어던지는 거다.


매일매일 먹고사는 일로도 힘에 부칠 때가 많다. 커리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한다. 청소며 빨래, 자녀 교육, 며느리 노릇 등 온갖 집안일이 산더미다.


무지 바쁘다. 친구들과의 시끌벅적한 만남도, 수다도 나의 지친 생활을 위로하지 못할 때가 많다.

스트레스를 풀러 나갔다가 머리는 더 산만해져 돌아올 때도 있지 않는가?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째 더 외롭고 축 쳐질 때가 있기도 하다.


정보의 범람처럼 모임의 홍수 속에서 산다. 계 모임, 생일 파티, 직장 회식이다 뭐다 너무 많다. 그래서 더욱

나를 달래주는 시간, "지금 외출"이 필요하다. 혼자 잘 놀면서 나를 애정 하는 시간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외출을 하기 위해서는 멋진 옷을 입고, 액세서리를 걸치듯, 좋아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모두가 잠든 시간, 혼자 새우깡 (좋아하는 간식거리) 먹으면서 오래된 추억 서랍을 뒤져 보는 것도 좋겠다.

"음, 내가 옛날에 뭘 잘했지? 또 무얼 좋아했나?" 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외치며 외출을 준비하는 거다.


나 같은 경우엔 글을 쓰면서 제대로(?) 놀기 시작했다. 이전엔 시간이 나면 몇 시간이고 컴퓨터만 들여다보는 일이 많았다.


“아, 여기 샤핑몰도 검색하고, 어? 저건 뭐지?" 하며 들여다보고 , 이러다 보면 시간은 금방 흐른다. 여기저기 정보가 흘러넘친다. 오히려 아무것도 얻질 못한 채 멍한 채로 잠들 때도 있었다.


낮엔 풀가동이다. 8시간 일하고, 퇴근하면 주부 활동(?)도 좀 해야 한다. 밤에 글을 쓰려니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당연히 시간이 금쪽같이 소중해졌다. 한동안 손에서 놓았던 독서도 해야 한다. 와~너무 바빠~~ 소리가 절로 난다.


그러다 보니 충전의 시간이 필요해졌다. 녹슬고 무딘 나의 감성을 리 프레쉬(Re-fresh)할 여유가 절실했다. 이쯤 해서 혼자 놀기를 애정 있게 시작했다.


나의 감성 리 프레쉬는 여행과 영화보기다. 여행은 일 년에 한. 두 번 하는 편이다. 나의 감성 리 프레쉬의 주인 격이다. 지금은 팬데믹으로 행사를 접어놓은 실정이지만.


영화는 어쩐지 여행과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매번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고 할까, 그렇다.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어쨌든 근 2년을 문화생활이라곤 제대로 하지 못했다. 몇 개월에 영화 한 편 볼까? 고작 그 정도였다.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만 길게 늘어만 갔다. 이제 주말이면 영화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간다. 볼 영화, 본 영화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본 영화 리스트는 추억을 회상하게 한다. 제목만 보고 리뷰할 수 있어 나름 흥미롭다.


혼자 즐기는 영화는 나만의 시간이다. 내 취향을 마음껏 고를 수 있고, 영화에 푹 빠질 수 있어 좋다.


주말이면 티브이는 완전히 나의 차지다. 고맙게도(?) 남편이 일을 가기 때문이다. 레베카(조카)도 가끔

주위를 얼씬거린다. "아, 이모의 시간~" 하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주중에는 그, 레베카, 주말에는 나, 이런 식으로 하나의 티브이를 놓고 일정을 고수한다.


주말이 오면 괜히 마음이 들뜬다. 고요한 밤, 영화 속으로 빠져 보는 설렘이 있어 좋다.

미국 영화관이라면 의례히 손에 큼지막한 팝콘 봉지가 들여져 있겠다. 팝콘을 좋아하지 않아

대신 새우깡이다.


미국에 온 뒤로 이상하게 새우깡이 좋아졌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그 유명한 농심 새우깡 말이다.

한 봉지 뜯으면 어째 끝장을 보는 그런 간식거리가 아닌가. 어릴 때에 즐겨 먹었던 것이라 진한 향수 같은 것이 담겨 있다.


나의 야밤 영화 상영과 함께하는 간식거리다. 입안에서 아작아작 소리 나는 감칠맛이란

"음~혼자 노는 맛이란 새우깡처럼 아주 고~소한 일이네~” 하는 소리가 절로 나게 한다.


혼자 잘 노는 일이란 이렇게 큰 일이다.

건강하고 , 씩씩하게 살기 위해서, 내일도 힘든 세상살이를 잘 견뎌내기 위해서

감성을 리 프레쉬하는 나만의 시간을 찾아간다.


어어~방해하지 말라고요!


사실, 난 지금 외출 중.



함께 하는 영화

Made In Italy-Liam Neeson(리암 니슨) 주연

화가인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가슴 훈훈한 영화./ 평범한 영화지만

이탈리아의 멋진 Tuscany  배경속으로 떠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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