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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Sep 27. 2020

좀 까칠한 시어머니가 좋아

조용한 시어머니와 당돌한 며느리가 만나면

 시어머니가 좀 까칠했으면 좋겠다.


이 세상의 시어머니가 어째 친정 엄마만 한 이도  없을 테고, 기본적으로 까칠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우선, 우리 집 시어머니도 어느 댁과 다를 바 없이 뭐든지 아들 편이다. 이러한 진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해서 오래전부터 "그게 그런 거지 뭐" 해 버렸다. 그러니 편해졌고, 여유가 생겼다.


오히려 “그러려면 그러세요” 하니 당돌하게 자유로워졌다. 뭐 시어머니는 아들 편, 친정엄마는 딸 편이라는 공식만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하지도 않다.


이런 기본적인 규칙 외에는 시어머니는 별 소음(?)이 없으시다. 그저 잠잠히 조용할 뿐이시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노래 제목이 있지 않나. 그것을  조금 바꾼다면 "가까이 하기에 불가능한 당신"이 시어머니다.

 

그게 내식으로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시어머니는 싱거운 분이다. 짜기는커녕, 뭔지 간이  제대로 안된듯한 느낌의 사람 같다고 해야 하나. 뭐든지 나랑 꿍짝이 맞질 않는다. 아무튼 재미가 없다.


근 30년 넘게 한국에서 공무원으로 일만 하셨다. 직장여성으로서 커리어 하나만으로도 "내 삶은 충분해!"할 정도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다. 열심히 돈 벌어서 가족들 뒷바라지를 한 것이 시어머니의 업적이다.


미안하지만, 살림에 관한 한 도무지 상식이 없으시다. 친정엄마와 언니들이  도맡아 해 주셨기 때문이다. 밑반찬을 기대한다는 건 아예 무리다. 김치마저도 담을 줄 모르는 공주과시니 말이다.


그 덕택(?)에 집안 살림이 어쩌네 하는 소리는 아예 하지도 않는다. 며느리 훈련시키느라 이것저것 가르쳐줄 일도 없고, 잔소리 같은 것도 없다. 이것저것 부탁을 하거나 귀찮게 하지도  않는다.


딱 필요한 것만큼 도움을 청한다. 그것도 희한하게 아들만 호출한다. 단지 아들이 더 좋고, 아들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다.


이래서 우리 집은 며느리가 힘든 게 아니라, 아들이 힘들다. 며느리는 돈 버는 일로 노릇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어머니에겐 돈벌이가 최고이기 때문이다. 여든이 넘은 그녀도 얼마 전까지 일을 했을 정도다.


사실, 시어머니는 굉장한 일꾼이시다. 돈을 버는 일에 평생을 헌신했다. 고로 돈 버는 일이 최고로 재미있다.

노는 일은 잘 모르고, 안 하신다. 철저하게 독립적(?)이다. 게다가 칩거를 고수한다. 여행은 사절이다.


세상에 이런 편한 시어머니가 어디 있담?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건 사실이다.

뚝 하면 불러대고, 이것저것 간여하는 호들갑스러운 시어머니보다는 훨씬 양반이다.


하지만 인간관계란 양쪽의 조화가 어느 정도는 맞아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한쪽이 시큰둥하거나, 박자가 맞지 않으면 둘은  늘 외로운 달그림자를 사이에 두고 있는 것과 같다.


시어머니와 내 사이가 그렇다.  나는 어머니를 만나면 조용해서 싫고, 심심해서 외로워진다. 내가 전적으로 수다쟁이가 되어야 한다. 모든 걸 알아서 해드려야 한다. 이것도 일이라면 상당한 일이다.


시어머니가 별 말이 없고, 사교성이 없는 건  그냥 타고난 스타일이시다. 가족끼리 모여도 수다라는 것이 별로 없다. 고작 몇마디정도다. 잠시 계시다  슬그머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둘러보면 피아노를 치든가, 티브를 보고 계신다.


나는 적당히 할 말도 하고 산다. 거절할 것도 하는 당돌한 며느리에 속한다. 일하는 것만큼 열심히 놀자, 그러면서 삶의 생기를 갖자주의다. 이런들 저런들 나는 노는 게 좋고, 나랑 꿍짝이 맞아 잘 노는 시어머니가 좋다.


 그래서 시어머니도 좀 까칠했으면 하는 거다. 까칠하다는 것이 무슨 성질을 부리거나 며느리를 못살게 볶는 시어머니가 아니다. 


까칠하다는 건 자신을 드러내며 사는 것이 아닐까. “난 이렇게 살고, 이런 사람이라고~” 라는 것과 같은.

누구에게나 까칠함은 필요하다. 까칠하다는건 자신을 사랑하고, 당당하게 즐거운 삶을 찾는 모습같은것이 

아닐까 싶다.


내가 생각하는 까칠한 시어머니는 화통하고, 왁자지껄하며  잘 노는 시어머니다. 가끔은 싫은 속내를 보여주기도 하는 시어머니의 모습이다.


난 시어머니가 가끔 마켓에도 같이 가자고 채근을 했으면 좋겠다. 샤핑도 좀 가자고 했으면 신이 날것 같다.

예쁜 옷을 고르는 즐거움도 느끼고,  붉은 립스틱도 한번 발라보았으면 한다.


멋진 레스토랑에도 가자고 주문도 했으면 한다. 마주 보고 앉아 흘러간 삶의 이야기나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 가족들의 소소한 흉도 꺼집어내며 깔깔거리고 싶다. 미국에서는 영화관에 노인들이 수두룩 한데 함께 영화도 보러 갔으면 좋겠다.


가끔은 "있잖아, 내가 왕년에~" 하면서 뻥도 좀 쳤으면 좋겠다. 무슨 날이면 돈 봉투를 내미는 대신 "어디 좋은 레스토랑 예약해! 저녁 내가 산다!" 뭐 이런 식의 기분파, 분위기파가 되었으면 좋으련만..


그나저나 시어머니의 라이프 스타일은 변하지않을것이요,

더구나 나에게 꿍짝을 맞추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일을  시어머니에게 양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조용한 시어머니처럼? 음, 그건 안될것같다. 난 어디까지나 까칠하고,  잘 놀고싶은 며느리가 아닌가.


조용한 시어머니와 당돌한 며느리가 만나면?

정말이지 , 그 사이엔 매번 외로운 달그림자가 드리운다. 아~ 싫다 ~.


어째, 좀 같이 까칠해지는 시어머니,

어떻게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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