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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Oct 11. 2020

가을 타는 남자

남자와 가을

가을 하면 누군가 한 말이 떠오른다.

"고독한 남자가 멋져 보이는 계절이라고."


낙엽 지는 가을은 왠지 여자의 계절일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내 생각에 여자는 가을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음미한다. “와~ 예쁜 단풍구경이나 가자고!" 하면서 마냥 가을의 눈부심에 빠져든다.


반면에, 남자는 "음, 가을이군" 단 한마디를 혼잣말로 삼킨다. 그러면서 은근 가을을 기다렸다는 듯이 좋아하고, 가을에 사무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가을 타는 남자다.


가을에는 숙명적으로 고개가 저절로 떨구어진다. 고독이란 그림자가 나그네처럼 다가선다.

자연스럽게 내면적으로 숙연해지는 계절이다.


가을 타는 남자들은 사색을 즐기듯 고요히 가라앉는다. 왠지 얼굴은 스산해 보이고, 한결같이 

"지금, 가을 타고 있는 중"이라고 쓰여있는 것 같다.


고래고래 소리치고, 여름날 같은 쩌렁쩌렁한 그 모습은 살짝 꼬리를 감춘다. 다소 지치고, 그늘진 모습으로 

변하는 느낌이란 확실히 있다.


회사의 남자 직원들만 보아도 알 것 같다. 가을만되면 연출되는 가을 타는 남자들의 모습은 좀 다르다.

오피스의 창문 너머로 그런 풍경을 구경하는 일은 나름  재미있다. 평소에 보지 못하는 남자의 숨겨진 

모습을 본다고 해야 될 것 같다. 


우리 회사에 유독, 가을 타는 남자가 있다.

가을이 다가서면 어김없이 트렌치코트 깃을 세우고 나타나는 남자다. 게다가 가을이 좀 더 짙어가면 

중절모까지 쓰고 등장한다.  낙엽을 맞고 다니는 신사다.

 

분위기에 살고, 분위기에 죽을 만큼 무척 멋을 내는 부사장님이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트렌치코트가 썩 어울리는 건 그분만의 멋이다.


뭐, 젊은 남자들이 "트렌치코트라면 나도 제법이지~"하지만  그 정도의 중후한 느낌을 따라가는 건 좀 힘들다.

회사의 모든 직원들의 눈길을 집중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일명 "중절모 신사"라고도 불린다.


"어머! 너무 멋지세요!"라고 여직원들은 누구나 한마디를 던진다. 

그 맛에 몸서리치며, 자기 멋에 가을을 즐긴다.


트렌치코트는 "고독한 가을남자의 대명사"같다.

나의 20대에도 멋진 가을 바바리코트를 입은 남자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을 때가 있었으니까. 

아무튼 트렌치코트를 걸친 남자는 가을을 그대로 타고 있는 남자 같다.


가을이면 트렌치코트는 웬만큼 멋 좀 낸다는 여자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걸치는 패션 아이템이 아닌가. 

근데, 내가 느끼기엔 어쩐지 남자가 더 근사해 보이고, 눈에 띈다.


그게 가을과 남자는 앙상블처럼 제법 어울려서 그러지 않을까?, 아니면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자들이 

흔치 않아서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가을이면 트렌치코트의 주인공이 되는 부사장님은 자칭 "가을 타는 남자"다.

가을이 되면 자작시를 비롯해서 몇 편의 시가 이메일로 도착한다. 매년 무슨 행사를 치르듯, 

한국부 직원들에게 어김없이 발송된다. 가을을 알리고, 잠시 가을 낭만에 젖어들게 한다.


"아! 가을입니다, 함께 가을 좀 타자고요"  뭐 이런 식이다.


그뿐인가. 휴식시간이면 낙엽이 떨어져 내리는 회사 앞 정원을 거닌다. 회사의 남자들은 낭만파의 대가인 

부사장님과 함께 가을정원에 모여든다. 


남자들의 가을 타는 일도 전염이 되는듯하다. 낙엽을 밟고 서서 하늘을 향해 담배를 베어 물기도 한다.

혼자 빠져드는 가을이 청승맞게 느껴질까, 어째 그룹으로 가을 타기를 즐긴다.


 여름 내내  여자들이 모여든 나무 아래는 가을이 되면 희한하게 남자들의 아지터가 된다.

확실히 남자들이 가을에 민감하고, 여름날 같은 활기찬 모습은 소리 없이 수그러든다.


여자들은 그저 커피 한잔을 들고 "와~ 기분 좋은 가을!" 하고 탄성을 지르는 일이 전부다.  

"어머~ 남자들,  가을 타나 봐~"라고 한 마디씩  하며 재미난 일인 양 구경할 뿐이다.


남자가 가을을 타는 건 가을을 좋아해 서고, 가을 분위기가  그냥 그렇게 만든다. 스산한 분위기가 

가을 나그네 같은 남자로 변신하게 하는 것 아닐까?.


가을이면 고독은 자연스럽게 찾아든다. 사실, 마냥 고독해져도 좋을 것 같다. 어쩌면 가을은 남자에겐 

거울을 보듯 자신에게 돌아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가을을 좋아하는 남자는 감성에 젖고, 

유독 가을을 타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낙엽은 순식간에 물들고 어느새 떨어져 내린다. 그렇게 가을은 잠깐이고, 아쉬움처럼 지나간다

 잠시 머물다 가 버리는 가을의 단순함 때문에 남자는 어쩜 가을, 그 매력에 쉽게 빠지지 않을까 싶다.


굳이 트렌치코트가 없어도 고독이든, 명상이든, 낭만이든  가을을 즐기는 남자는 멋져 보인다.

가을 타는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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