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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Feb 21. 2021

미스터 암과 함께 사는 그녀

암을 다스리고 있는 당찬 그녀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주위 사람들로부터 안 좋은 소식을 종종 듣게 된다. 흔히 부인병이라는 암 진단을 받는 친구나 지인들의 병 이야기다. 누구나 암 진단을 받으면 충격을 받는다.  "하필, 내가 왜?"라는 생각과 함께 천지가 무너지는듯한 좌절을 겪게 된다. 동시에 암덩어리가 작든, 크든 죽음이라는 터널을 생각하는 건 당연지사다.


몸에 붙은 암덩어리를 떼어내기 위해 수술은 절체절명한 선택이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방사선 치료니 모든 의료를 동원하여 사투를 벌이게 된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무척 겁이 많은 사람이다. 가령, 두통이 며칠째 계속되면 '혹시, 뇌종양 아냐?" 어쩌다 소화가 안되기 시작하면 "어? 위암인가?" 이런 식이다. 남의 일 같지 않는 일이 막상 닥치면 아마 나는 수술도 하기 전에 나자 빠질 것 같다.


요즘 부인병 하면 가장 흔한 것이 유방암이다. 유방암은 큰 언니도 오래전에 겪은 병이다. 초기 암이었다. 그럼에도 슬픔과 죽음에 대한 공포는 상상도 못 할 정도였다고 한다. 가족 히스토리가 암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데, 그 이후로 둘째 언니와 나는 매년 검사를 해오고 있다. 무엇보다 암을 밀어내기 위해서고, 죽지 않으려고 말이다.


근데, 이 암덩어리를 잘 다독거리고, 키우며(?) 거뜬히 지내는 친구가 있다. 대단한 친구다. 한편으론 좀 이상한 인간(?) 아냐?라는 생각이 퍼뜩 들지 모른다. 아무튼 그녀가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고 어렵게 말을 꺼낸 지가 벌써 5년이 넘어섰다.


그 당시엔 암 초기였다. 그녀 역시 펑펑 울며 죽음에 대한 공포로 잠을 못 이룰 지경이었다. 당장 수술 날짜를 잡았다. 그쯤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메리스라는 전염병이 유행하면서 병원까지 퍼지는 등 난리가 났다.


이래저래 덜컥 겁이 난 친구는 수술을 하는 수 없이 연기했다. 그 후엔 아예 수술하는 것이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암을 제거하려다 그놈을 막 성나게(?) 할까 봐 두려워서였다. 다른 장기로 전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내 몸은 성한 곳이 거의 없어"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전에도 큰 수술을 몇 차례나 했다. 사실, 그녀에게 수술이라면 치가 떨릴 정도였다. 여기저기 아픈 몸을 벌집 건드리듯 잘못 쑤셨다간 오히려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수술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냥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녀의 최종적인 처방이었다. 


나름 수술을 안 하는 그녀의 해법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있긴 하다. 하긴 친정아버지도 대장암 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하면서 오히려 병이 악화되어 돌아가셨으니 말이다. 의학적인 상식이 통하는 말일지 모르지만, 암이란 놈은 무조건 건드리는 것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암이란 놈을 깨부수려고 온갖 안달을 할 것이다.


아무튼 그녀식의 처방전과 수술을 거부하는 똥고집(?)때문에 정말 나쁜 놈이 되어버린 사람이 있다. 그녀의 남편이다.  "아니, 아내가 암 진단을 받았는데  수술을 안 시키다니 말이 되냐고?!,  도대체, 댁의 남편은 무슨 심보냐고?" 하는 등등 온갖 말들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도 한때 의구심이 생겨났으니.. 이런 말들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여보! 수술하지 않을 거야!, 그냥 이대로 있을 거야!"라는 말을 남편에게 무슨 유언처럼 했다는 것이다.


남이 무슨 말을 하든, 자기를 미친년으로 생각하든 그녀는 자신의 똥고집을 고수하기로 작정했다. 여러 번 수술로 상처가 난 몸에 도사리고 있는 암이란 놈을 잘 달래고, 거느리고 살기로. 


그녀의 고백인즉, 처음에는 몸서리치도록 괴로웠다. 기도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씩 내려놓게 되었다. 점차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감사와 봉사하는 삶을 찾아 나서게 되었고,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며 그야말로 마지막인 것처럼 살고 있다고 하는 그녀다. 


그녀의 고백은 무슨 신앙 간증 같기도 하고, 나 같은 겁쟁이는 절대 가지 못할 어떤 신의 경지에 도달한 것 같다.

그런 친구가 대단한 인간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몇 번이고 물은 적이 있다.  


"너, 정말 수술 안 할 거야?,  게다가 아이들과 남편은 어쩌려고?" 


그녀의 대답은 매번 같다. 두 아들은 제각기 잘 살고 있다. 남편도 아이들처럼 자기의 길을 찾아갈 것이고. 살아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자기들의 몫을 챙기며 살 것이기에 걱정도 없다. 음. 이건 확실히 맞는 말이다. 난 이후로 암 녀석이 성나지 않도록 친구만 응원하기로 결심했다. 


친구가 암이란 놈을 몸에 지닌 채 산지 이제 6년째다.  그녀는 여전히 씩씩하고, 생기발랄하다. 자연식을 한다든가 특별한 치료를 받는 것도 없다. 하는 건 매일 산을 오르내리는 일이다. 간혹은 휴지를 줍는 거리의 노인에게 먹을 것을 건네주고, 남을 돌보며, 최선을 다하여 사랑하며 사는 일이다. 


간혹 암을 치료했다는 신기하고도 신비한 스토리를 유튜브나 티브이에서 시청할 때가 있다. 이처럼 암 진단을 받고 산에 들어가서 수도사 같은 식생활을 하면서 완쾌됐다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 


뭐, 암을 지니고 사는 친구의 스토리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모쪼록 그녀의 긍정적인 힘이, 사랑의 묘약이 암 녀석을 확 몰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숙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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