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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Apr 02. 2021

달을 보는 여자와  돈 세는 남자

낭만과 현실-낭만이 있거나 없거나

오래전부터 달구경을 취미처럼 하게 되었다. 달 감상이라는 말이 더 맞겠다. 늦은 밤. 창 너머로 고요히 떠있는 달을 보는 건 나에겐 가슴 찐한 일이다. 달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신비롭다. 신비로워서 고즈넉해 보이고, 고즈넉해서 왠지 우울하다. 그것이 달이 주는 무드이기도 하다.


 달(the moon)이라는 글은 말도 이쁘다. 바라만 보아도 그냥 센티멘탈해진다. 누구나 달 빛 아래서는 저절로 낭만적인 사람이 된다. 뭐, 사랑에 빠진 남녀 사이에서는 "그대를 위해서라면 저 달도 따다 줄 수 있어!"라든가, 미국식으로,  I love you to the moon and back -너를 영원히 사랑할 거야!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나온다. 사랑타령에 달이 들어간 표현은  또 얼마나 시적이고 낭만적인가?


이처럼 "달, 달, 달 하는 나는 자칭 낭만파다. 한마디로 분위기에 살고, 분위기에 기분이 업, 다운된다. 그만큼 나의 라이프에 있어서 낭만은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나는 아쉽게도 달 타령에 맞장구치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하며 살고 있다.


 가령, 내가 "와! 달이 너무 환상적이야~”라고 중얼거리면 그 남자(남편)는 전혀 상관도 없는 말을 내뱉을 뿐이다.  


".... 음, 이번 달에는 페이(2주에 한번 받는 월급)가 언제 들어오지? "


그 남자의 딴청에 나는 혼자 달을 보고 중얼중얼, 그쪽은 돈타령으로 히히~허허~할 뿐이다. (하긴 돈은 나도 좋아하지만).

 

Image source-Istockphoto.com


사실, 나와 사는 남자(남편)는 달 저편에 있는 사람이다. 상당히 메마르다. 감정에 무디고 , 낭만을 적대시(?)한다. 내가 옆에서 달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 장단을 어디에 맞추어야 할지 모른다. 귀찮은 척할 뿐이다.


내가 달구경을 좋아해서 "음, 뭐든 낭만이 있어야 된다고!" 한다면 , 그는(남편) 이것 저것 계산을 잘한다. 돈 세기를 좋아한다. 즉, 현실만 직시하는 현장파(?)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초원에 자태가 멋진 사슴 한 마리가 있다면 "야! 저 사슴의 뿔은 얼마나 할까?" 이런 식이다. 그에게 낭만은 낯설고 , 고리타분한 일이고, 다소 피곤한 일이다.


Image source-Dreamstime.com


달구경을 좋아하는 낭만파인 여자와 돈 세기를 즐기는 현실파인 남자의 사는 법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떤 땐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내 위주의 생각이긴 하지만^).


가령, 나는 생일날에 맛은 좀 없지만 레스토랑은 분위기 있는 곳이 좋다. 그는 싸고, 맛만 좋은 동네 식당이면 만사 오케이다!.


그로서리(식품 구매)를 가면 나는 가격보다 상품의 퀄리티, 맛, 포장을 신경 쓰는 편이다. 그는 무조건 "싼 게 장땡이지 그럼! "하며 가격이 저렴하고, 특히 세일 품목을 왕창 사는 일에 선수다.


영화라면 나는 주로 서정적이고, 로맨틱한 영화를 즐기는 편이다 (스릴러나 신나는 액션도 좋지만). 그는(남편) 액션만 본다. 그것도 때려 부수고 , 터뜨리고(폭탄), 총질하는 영화다. 평소에 무슨 스트레스가 그렇게 많은지..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으흠, 나만의 오붓한~~ 시간~"하며 무척 신나고, 행복해한다.


게다가  감성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다. 가령,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를 때다. 슬픈 노래를 살짝 미소를 짓고 부르는가 하면 , 유쾌한 노래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하며 부른다. 노래 가사와 얼굴 표정이 따로 논다. 도무지 무슨 노래인지 알 수가 없다!


"노래에 감정을 넣으란 말이야!"라고 손짓으로 온갖 사인을 하는 등 누누이 꼬집어서 말해야 한다.


또 여행은 어떤가? 나는 직접 운전을 하며 경치를 구경하는 로드 트립(Road Trip)이 좋고, 걷는 여행이 좋다. 머리카락을 날리며,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희희낙락 거리며 하는 여행을 즐긴다.


그는 (남편) 걷는 여행은 질색 팔색이다! 비행기를 타고 단숨에 날아가야 된다. 노인네처럼 배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식의 놀이인 크루즈 여행만 죽자고 가잔다. (저렴한 크루즈 여행만) 그렇다고 바다 위에서 멋진 저녁노을을 즐기는 것도 아니다. 본전을 뽑기 위해 늦은 밤 야식을 챙겨 먹고, 온갖 쇼와 이벤트를 보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부지런을 떤다.  


수년 전에 로마로 여행을 갔을 때다. 우리  (남편과 )  유럽여행이었다. 것도 유럽은 싫어!하며 할수없이 나선 여행이다.


유명한 뜨레비 분수(Trevi Fountain)에서의 일이다. 때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그곳엔 상상도   만큼 많은 인파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뜨레비 분수 하면,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의 로맨틱한 데이트 장면을 떠올리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 아닌가! 하여 남. 녀들은 한결같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서로 부둥켜안고 키스를 하느라 난리였다. 한동안 아껴둔(?) 키스들을 하는 듯 모두가 한결같이 열정적인 기세였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등 환호성이 울러 퍼졌다.


"어머! 저기 봐~ 다들 너무 로맨틱하다~"라고 내가 탄성을 지르듯이 소리쳤다.


그리고 저만치 서있는 그(남편)를 보았다. 웬걸? 얼굴엔 오만가지 인상을 쓰고 있었고, 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심하게 부채질을 해대고 있지 않는가? (그 손에서 무슨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고?^^)


"어휴! 너무 덥다 더워! 게다가 인간들이 왜 이렇게 많아? 빨리 가자고, 가! "라고 호소를 했다.


그 바람에 뜨레비 분수를 보는 둥 마는 둥, 사진 한 장만 겨우 찍고 돌아서야 했다. 더욱 심한 것은, 로마에 있는 멋진 조각상들은 모두가 그에겐 작품이 아니라 돌, 돌, 돌일 뿐이다. 그놈의 돌 타령 때문에 명소마다 세워진 조각상들을 감상할 여유조차 없었다.


어떤 날은 야외테이블에서의 저녁식사도 망쳐버렸다. 이유는 어느 골초 커플의 담배연기 때문이었다. 연기를 피해 들어간 곳은 아무도 없는 레스토랑 실내였다. 멀뚱멀뚱 서로 얼굴만 째려보면서 대충 식사를 하고 식당을 떠나야 했다.


뭐, 이 정도면 첫 유럽여행이었던 로마여행이 어떠했을까요? 상상에 맡깁니다~ 이쯤 되니까 김건모가 불렀던 노래 제목 "잘못된 만남"이 확~ 떠올랐다는 것,  그 남자(남편)는 몰랐을 거다. 여행 친구를 잘못 선택한 것을 두고두고 (?) 후회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로마를, 유럽을 그토록 저주하듯이 싫어하는 것도 그때 알았다. 유럽은 좁아터진 데다 , 화장실 사용은 화가 치밀 정도로 불편하고, 무슨 볼거리들이 한결같이 거기서 거기라는 거다.(조각상이 그 돌이 그 돌이라는 주장) 아무튼 나는 유럽을 좋아하고, 그는 유럽을 무진장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남편과 나) 남. 북처럼 서로 다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대학교 동창인 친구 얘기를 좀 할까 한다. 그 친구 부부는 성격과 스타일이 우리랑 좀 반대다. 그 댁 남편은 조용히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책을 읽고, 가끔 시도 쓰는 감성적인 남자다. 한마디로 나처럼 달을 사랑하는 무드다.


반면에, 내 친구는 "낭만은 무슨 얼어 죽을~" 하며 사는 지극히 현실파 중의 현실파다. 말은 재잘거리며 혼자 다한다. 자기 말대로라면 항시 남편이 옆에 있어야 하고, 무엇을 해도 함께 놀아야 한다! 좀 뭐하게 말하자면 그녀는 자기 남편의 방해꾼이다.


어쩌다 친구 남편이 내리는 비라도 바라보고, 뮤직이라도 들으면 "여보, 뭐해~" 하고 끼어들어 분위기를 깨버리기 일쑤다. 왜? 그녀는 남편과 항상 같이 놀아야 하니까. 게다가 그녀의 남편이 와인을 따르고, 무드를 좀 잡으면 이 친구 왈,  "자기, 웬 분위기?” 하면서 단숨에 와인을 들이켠다.


"아~ 기분 좋다~, 여보~ 굿 나잇~ "하고 바로 잠들어버린다.


뭐, 어쩌랴! 서로 다른걸. 이런 식으로 친구 부부도 서로 낭만이니, 무감성이니 하면서 티격태격하며 산다. 서로 삐지기도 하고, 달래주는 척 , 맞춰주는 척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이렇게 살고 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댁 남편 자랑이 심하다.^


이런 걸 보면 부부란 참 이상하다. 어찌 달라도 그렇게도 다른지. 연애할 땐 도대체 무엇을 눈여겨보고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다. 사실, 그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보여주지도 않았다. 애써  착한 남자, 좋은 여자로 보이려고 서로 앙큼만 떨었을 뿐이다.


내가 결혼할 당시의 좋은 남자상은 "착하고 성실하면"오케이였다. 그는(남편) 그랬다. 나도 그의 희망사항이었던  키 크고, 심성이 좋은 여자, (음, 알고 봤더니 로맨틱 따지고 뭐하는 복잡한 여자였다나?)  그 시대만 해도 취미나 성격이 어쩌고 하면서 굳이 따지지 않았다. 그 남자(남편)도 내가 달, 달, 달 하는 여자일 줄 몰랐다나?, 나도 그가 무 감성의 남자인 줄 몰랐던 것처럼.


결혼은 모두 안다고 착각하고, 속는 거 치면 많이 속고 하는 거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사실, 진짜 속내는 모른 채 이루어지는 한 판 승부수 같은 관계가 아닐까? 결혼이란.


한 남자와 여자가 서로의 숨겨진 베일들을 샅샅이 확인하고, 벚기는것 같은. 흥! 알고 보니 이런 인간이었어?! 하며 얼토당토않게 속임 당한 것 같은 것. 이런 것들을 감내해야 하는 것들 투성이다.


그래서 결혼은 우리(남편과 나)처럼 너무 달라도 많이 다른 커플이 함께 사는 거다. 한쪽이 낭만이 어쩌고 할 때, 다른 한쪽은 뮤직쇼가 비싸니 어쩌니 하는 현실파. 매번 "뭐야? 왜 이렇게 다른 거야?" 하며 사는 것이 부부의 세계가 아닐까?


그래도 재미있는 건, 이렇게 달라도 별 탈없이 잘 굴러가고 , 흘러간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원수 같은 적이 되면서도, 또 어느 때는 꿍짝이 찰떡같이 맞아 금세 아군이 된다. 이상하게 안 맞는데도, 그게 그렇다 할지라도 적군 같은 아군이 부부가 아닌가 싶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니, 이것저것 따지기보단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나대로 달을 보고 무드를 잡고,  그는(남편) 자기 노는 법대로 새로운 전화기나 구경하면서 가격이 어쩌고 저쩌고 궁실 거리며 지내는 것이 즐거운 일인 것처럼.


서로 안 되는 것을 가지고 억지를 부리게 되면 골치가 아프다. 그가 나의 달 친구가 되지 못해도, 내가 그의 요란스러운 영화를 함께 즐기지 못해도 요즘은 "그게 그렇지 뭐~" 하고 산다.

인생은 짧고, 별것 아니다. 각자 좋아하는 것을 하고, 즐기는 것이 사는 재미다!

  

달을 보는 여자와 돈 세는 남자의 세계는 이렇게 흘러간다.


늦은 밤이다. 지금쯤, 열심히 일하고 있을 그 남자는(남편) 혼자 중얼거리겠지..

“음, 오늘 특별수당에다, 야근수당까지, 마누라가 좋아할 테지.." 하며 돈을 센다.


그럼, 난 심심한데...

어디,  오늘 밤  달구경이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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