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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Dec 12. 2021

닥터 노 이야기

닥터는 외로운 직업인가?

올 초쯤이었을 거다.

지인을 통해 닥터 노 소식을 들었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별세했다는 것이다.

순간, ‘어머! 어째.. 하며, 짠~한 마음이 한동안 가질 않았다.


그것도 아내가 L.A에 사는 딸을 방문하러 간 사이였다. 혼자서 덩그마니 놓인 채로 눈을 감으셨다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고독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닥터노는 시카고 이민사회에서 꽤 알려진 의사였다. 시카고 한인사회에서는  최초로 닥터 오피스를 오픈한 몇 안 되는 닥터 멤버 중의 한 분이었을 거다. 굳이,  환자가 아니었어도 웬만한 어르신들은 닥터 노하면 아! 그 닥터~하며 알만한 존재요, 유명인사 같은 존재였다.  


닥터 노의 죽음이 사뭇, 당혹스럽고,  안 따갑게 다가온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오래전에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잠시 쉴 때였다. 마침, 그때 닥터 노 오피스에서 사무직원을 찾고 있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몇 개월간을 일하게 되었다.  


은행에서 일한 경력과 연관된 빌링 (billing-보험회사에 돈을 청구하는 일)을 하는 일이었다. 사무직원이었지만 나름, 닥터의 세계(?)를 눈여겨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닥터란 직업에 대한 무한한 동경심(?)이 있었다. 닥터란 최고의 엘리트로 나의 주목을 끄는 직업이었다. 그야말로 지성과, 부를 동시에 가진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 무조건적인 기대감은 닥터란, 여자에게 최고의 배우자감이라고 생각하게 했다. 간호사인 조카, 레베카에게도 "얘! 병원에 어디 괜찮은 닥터 없니?”라는 둥, 대놓고 닥터=훌륭한 신랑감이다라고 떠들어댔다. 나의 터무니없는 닥터 사랑이었다.^


이렇게 나의 닥터 노 오피스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닥터 관찰기라고 해도 될 것 같다. 평소에는 거리가 먼 닥터의 세계였다. 이제는 한눈에 닥터의 삶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무슨 수험생처럼 긴장되었다. ^


하지만, 겉으로 화려하고, 좋아 보이는 것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을 깨닫는 데는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을 시작하면서 닥터노의 일상이 조금씩 벗겨졌다. 한마디로 내 기대와 이상(?)을 뒤엎었다. 좀, 심한 말일지 모르지만 그는 마치 주인이 부리는 로봇 같았다. 


그 유명세로 매일매일 환자들은 오피스를 가득 메웠다. 이른 아침부터 병원 진료에서부터 온종일 환자와 만나야 했다. 런치라곤 그의 아내가 투고하는 음식을 먹는다. 작은 룸에서 식사가 끝나면 여유라곤 신문을 펼치고 보는 정도다. 닥터 노의 휴식은 그때가 잠깐이다.


저녁이 되면, 근사한 저택이 있는 서버브로 퇴근을 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그의 아내가 집으로 떠나면, 그는 진료 사무실에서 멀지 않은 렌트 아파트로 간다. 바로 지척에 있는 병원 진료를 가기 위해서다. 병원에 입원환자를 아침일찍부터 순회하며 돌보야 하고, 어쩌다 응급상황이 생기면 새벽이라도 뛰어가 야하기 때문이다.


휴가는 일 년에 두 번이고, 2주가 전부다. 오피스 매니저인, 그의 아내가 계획한 스케줄대로 떠난다. 꼼짝없이 그는 제때 돌아와야 한다. 빡빡한 진료 스케줄 때문에 맘껏 쉬지도 못한다. 


정말이지, 내가 보기엔 그는 자기 삶이 없는 의사였다. 어느 날은, 마치 나의 일처럼 한심해지는 것 같아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푸념을 했다.


"와~,  의사는 어째, 딱~한 직업인데요?~할거 못 되는데요? "라고 내가 말했다.


"네~네, 그렇죠? 저도 여기서 쭉 일하는 동안  의사에 대한 환상이 싹~ 사라졌어요, 우리 아들이 의사 한다면 뜯어말릴 거라고요! "


그녀와 나는 닥터의 라이프에 관한 의견을 사뭇 심각하게 주고받았다. 내가 보기에는 닥터는 바쁘고, 부인도 정신없고, 둘 다 고생이다 싶었다. 자유도 없고, 휴가도 잠깐이고, 그렇게 번 돈은 언제 쓰냐고? 등이 마치 나의 불평처럼 튀어나왔다. ^


건방지게 남의 삶에 왈가왈부하는 것이 뭐하지만, 나는 그의 죽음이 좀 애석하다. 너무 바빠 번 돈을 쓸 시간적인 여유도 , 삶을 누릴 자유도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누가 뭐래도 닥터 노는 자기 삶에 충실했을 거다. 닥터 노의 노고로 더 많은 환자가 치료를 받았을 것이고, 그는 그것으로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삶이 그의 직업에 대한 사명이라고 생각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모든 닥터가 직업에 얽매여 환자에 지치고, 돈만 버느라 바쁘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신세대 닥터는 열심히 일하면서, 놀고, 할거 다 할 것이다. 


그 후론 , 우습게도 나의 닥터 사랑은 사라져 버렸다. 동시에, 우수한 신랑감으로 닥터를 딱, 제외시켰다. '닥터 부인이 되면 참 좋지 않겠어?'라는 말도 쏙 들어가 버렸다.^ 


닥터고, 닥터 부인이고 모두, 오~노!,  뭐, 이렇게 마음이 변했다.

그러니, 뭐든지 내가 당해보지 않고, 살아보지 않고는 딱~ 이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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