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시비 , 적당하게 넘기기
가끔 하이웨이를 달리다 보면 도로의 부랑자들과 맞닥뜨릴 때가 있다. 어디선가 부~웅 하며 쏜살같이 지나가는 차들이다. 스피드가 한정된 지역에서 카 레이싱을 하는 인간들이다.
카 레이싱이란 경기장에서나 볼일이 아닌가? 부랑자들은 마치 "오늘 사고 한번 쳐 볼까? 구경 한번 하실래요?" 하는 식이다. 위협과 공포감마저 든다. 경찰 나리 어디 있지? 하고 두리번거리지만 이런 때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수시로 군데군데 망을 보느라 잠복하고 있는 그 많은 경찰들은 남의 일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 법이다.
미국은 도로가 넓어서인가?(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자동차로 남 프랑스를 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 좁은 길에서 모든 인간이 한결같이 바짝 따라붙는가 하면, 마치 카레이싱 하듯 거칠게 운전하더라. 그것을 보고 기겁을 한 적이 있다.) 아무튼 미국에서 카레이싱은 심심찮게 일어나는 일이다. 하이웨이는 물론이고, 흔치 않은 일이지만 로컬에서도 볼 수 있다.
운전에 방해가 되었다고 느끼는 운전자가 상대방에게 차 시비를 거는 것으로 시작된다. 자칫, 서로 열 받으면 총질까지 해대며 치명적인 사고나 죽음으로 치닫는 경우도 있다. 미국은 그야말로 자동차 천국이지 않나. 밥을 먹고살기 위해서는 당장 똥차라도 있어야 한다. 어디를 가도 자동차, 차들이 물밀듯 하다. 카 레이싱과 같은 차 시비에서부터 자질구레한 차 시비는 수시로 일어난다.
도시마다 조금씩 다를 수도 있지만 미국이라는 전체를 볼 때, 차 시비란 나라 스타일(?)대로다. 너무 대놓고 하는 스타일보다 가급적 비켜가며 슬쩍 때리는 것을 선호하는 국민성과 같다고 할까. 미국에서 차 시비는 사람 대 사람이 아니다. 자동차 대 자동차끼리 밀고 당기며 일어난다. (물론 운전자가 조종을 하지만)
시카고는 어떤가? 일단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LA(로스앤젤레스), NY(뉴욕)과 같은 대도시에 비해 훨씬 그렇다. 사람들의 세련미도 그렇고, 화끈하게 드러내지 않는 생활상이 그렇다. 가령, 최신 유행은 몇 년 뒤에 슬슬 나타난다든가,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키스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안 따갑고(?) 이상할 정도로.
뭐, 그래서인지 시카고는 좀 구식이다. 좋게 말하면 고전적인 도시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다. 마치 점잖게 보이는 선비가 실제로는 뭐 같은 성질을 가진 것처럼. 은근히 한 성깔 하는 도시다.
여전히 시카고 남부의 갱단원이 활개를 치고, 서부시대처럼 총격이 난발하는 일이 수시로 일어나는 것을 보더라도 그렇다. 갱단의 말썽이 아니더라도 시카고도 제외될 수 없는 것이 있다. 도로 위에서의 자동차, 차 시비다.
"차 시비"가 일어나는 이유도 다양하다. 이 골칫거리들은 세상 어디를 가도 공통된 문제다. 몰상식한 인간들 때문이다. 바로 코앞에서 불쑥 끼어들기도 하고, 좌(우) 회전을 위해 잠깐 정차해있는 것도 못 참는다. 뒤에서 클랙슨을 연거푸 눌러댄다. (사고 나면 누구 책임이랴?) 후진하는데도 남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다. “내가 먼저!” 하며 쓰윽 지나가는 등등이다.
가장 짜증 나는 건 테일게이딩(tailgating-바짝 쫒아오는 것)이다. 부딪힐 듯, 말듯한 기세다. 상당한 위협이다. 좁디좁은 간격을 유지하며 부딪히지 않는 것도 굉장한 스킬이다. 내 운전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아차 하면 충돌사고가 난다. 신랄하고도 위험한 차 시비 중 하나다.
아! 이런 차량을 만나면 혈압이 저절로 오른다. 뭐, 입에서 "놈"이란 말은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클랙슨을 있는 대로 누른다. 그들이 흔히 하는 바디 랭귀지- 가운데 손가락을 쳐들고 보란 듯이 막 야유를 보내고 싶어 진다. (참고로, 손가락 들기는 상대편 운전자가 사인을 보낼 경우에만. 그것도 화가 너무 날 경우만- 얌전히 손을 내린 채로 한다^)
미국인들이 하는 차 시비는 말 아니면 자동차로 대적하는 위험한 장난질이다. 일종의 차로 화풀이하는 셈이다. "F"로 시작하는 욕지거리나, 좀 한다 하면 손가락 쳐들기다. 그래도 좀 양반이면 창문을 내리고 몇 초간 무섭게 째리고, 노려보는 것쯤이다.
차량에서 뛰어나와 소리치고, 몸싸움을 하는 일은 없다. (차 사고 시에도 이런 일은 거의 없다. 경찰 리포터 하나로 보험회사끼리 처리함) 이렇듯 미국인들의 차 시비는 자동차 안에서 버젓이 버티며 일어난다. 야유하고, 손가락 쳐들고, 따라붙거나, 확 앞질러 급정거하기, 총 쏘는 시늉으로 위협하기 등등..
차 시비가 주로 자동차 안에서 왜 일어날까? 나름 이유가 있다. 일단, 미국인들은 대면을 피한다. 싸움을 하지 않는다. 도로에 나서면 차 시빗거리란 언제나 있는 일상 같은 것이다. 까짖것 복잡한 일을 만드는 것은 질색이다.
의외로 차 안에 총을 소지하고 있는 인간들도 많다. 이런 사실은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일이다. 일종의 호신용이 무기로 변신할 수가 있다. 고로 , 자동차 밖으로 나갔다가 일이 더 커질 수 있고, 자칫 위험한 일에 연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맞짱 대면하는 식으로 괜히 바짝 따라붙는다거나, 손가락 사인을 보내거나, 상대방을 앞질러 바로 코 앞에서 끼어드는 수법으로 원수 갚는 일을 하면 속 시원하겠다 싶지만 그냥 넘어가는 것이 좋다.
미국에서 차 시비는 조심하고, 좀 느리게 반응하는 것이 현명하다. 적당하게, 상대방을 가리면서 해야 한다. 가령, 남성인가(총 들이대는 건 모두 남자다)를 좀 눈여겨보아야 하고, 클랙슨은 살짝 누르고, 상대방 운전자의 얼굴과 마주치는 것을 피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빨리 사라진다. 뭐 이 정도로 하면 된다.
오래전 지인이 당한 일이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미국의 차 시비 풍토(?)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들은 적도 없고, 경험한 바가 없었던 때다.
어느 날, 운전 중 뒤 따라오던 차량이 "야! 임마, 빨리 가든가, 비키든가 해!" 이런 식으로 퍼부어대며 클랙슨을 빵빵 누르고 난리가 났다.
열이 있는 데로 났다. 스톱 사인이 되자 차를 멈추었다. 그놈의 운전자에게 다가가 항변을 했다. 그야말로 겁도 없이. 뭐, 남자 대 남자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 운전자가 갑자기 "너 죽어볼래?!" 하더니 트렁크로 가더란다. 순간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 신호등이 바뀌었고, 재빨리 차 안으로 들어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관총 같은 것을 들고 뒤에서 쫒아오질 않는가.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운 좋게도 그 차량이 레드 사인에 걸리고 말았다. 그 틈새 줄행랑을 쳤다. 마침 그때가 밤이었는데 급히 좁은 골목으로 숨어 들어갔다. (참고로, 미국에서 누군가가 쫒아올 때-특히 여성 운전자일 경우, 경찰서를 찾기 힘들 때 , 가까운 개스 스테이션 (주유소)으로 피해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음) 차 시동을 꺼고 숨을 죽인 채 있었다. 이렇게 보니 그놈의 차량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예 작심하고 쫒아 올 요량이었던 거다!
어쨌든 "십년감수"한 날이었다! 그날 이후로 지인은 차 시비에 관한 한 여느 미국인들처럼 안 그런 척, 그런 척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혼자서 얌전히(?) 화풀이를 하는 식으로 끝난다고 한다.
차 시비, 열 받는 일이다. 도로 위에서 일어나는 뭐 별꼴 같은 것이다. 차 시비에 대해 온건한 미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제스처는 손 전체를 살짝 올리는 것이다."아~ 죄송합니다"라는 뜻이다. 내쪽에서 조금 실례를 해도 , 뒤에서 빵빵거려도 손 한번 번쩍 들어 올려주면 된다. 만사 오케이다! 이 제스처는 누군가 친절하게 양보를 했을 경우에도 그에 대한 감사 표시로 "Thank you!"라는 사인으로 쓰이기도 한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내 경우만 해도 그렇다. 두 손가락 사인을 보내는 운전자를 향해 굳이 답례를 해야 직성이 풀린다면, 팔을 슬쩍 밑으로 내려서 (보이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뭐, 나는 항상 이런 식이다. 어떤 땐 차 안에서 한바탕 욕을 질러댄다. "야! 미친것 아냐?!" 하며 몇 초간 구시렁구시렁거릴 뿐이다. 그러다 원. 투. 쓰리. 휴~우 하고 심호흡을 한번 하면 끝난다.
사실, 나는 겁이 꽤 많은 인간이다. 게다가 연약한 여자다. 그저 한 박자 느리게, 안 그런 척하며 반응할 뿐이다. 이렇게만 해도 치밀어 오른 화가 상당히 가라앉는다.
도로 위를 매일 달리는 한, 차 시비 건수에는 절대적으로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차 시비, 적당하게 하고, 손 한번 들어주는 애교를 부리는 것도 도로 위의 에티켓이다. 나를 보호하고, 내 차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니까.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