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 Moon May 06. 2022

여든 넘은  엄마의 미친듯한 젊음

엄마는 용감하다

엄마는 올해 여든일곱이 되었다.

여행은 물론이요, 막내딸(나)이 있는 시카고에는 다시 오지 못할 거라고 나름대로 예측하며 확신(?)했다.


작년 겨울,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거의 두 달간을 엄마와 함께 지내면서 바라본 엄마는 이렇게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더 야위었고, 이전처럼 활달하지도 않았다. 수시로 눕기도 하고 (허리가 아파서) 먹는 것도 고양이 밥처럼 조금씩 드셨다. 그래도 워낙 부지런하셔서 매일같이 온 집안의 먼지를 털어내곤 했다.


유일한 취미로는 햇빛 드는 소파에 앉아 성경을 읽는 것이었다. 그러다 아이처럼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영락없는 여든 넘은 노인이었다.


반짝이는 꿈도, 희망도 없어 보였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간직한 채, 씁쓸한 마음으로 미국으로 돌아왔다. 아.. 이제 엄마도 많이 늙었나 보다.. 하면서.




그러던 중, 작년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어느 날, 서울에 있는 언니가 전화를 했다.  


"야! 나, 우리 딸내미 보러 시카고 간다! 엄마랑 같이~"


"엄마랑? , 언니! 지금 엄마가 연세가 몇인데? 이제 여행 못해~~~~ 게다가 지금 코로나가 한창인데..?"


"뭔 소리야?,  엄마 시카고 간다는데 너무 좋아하는데, 팔팔하셔! "


곧 전화 너머로 "나도  간다~" 하는 엄마의 명쾌한 소리가 큼지막하게 들려왔다.


"엄마!  괜찮아? 괜찮아?"라고 내가 연거푸 물었다.


"나,  좋아! 갈 수 있어~~~"


그렇게 꼬랑꼬랑하던 엄마가 어떻게? 아니? 그사이 무슨 보약을 드셨나? 내가 갔을 때 보았던 엄마의 컨디션이 아니었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 이 시국에 연로한 엄마와 긴 여행길에 오른다고?  내가 보기에는 두 사람 모두 극성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겁 많은 나는 언니에게 엄마를 위한 몇 가지를  신신당부했다. 비행기 타고 오는 동안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도록  조심할 것,  엄마 건강쳇업부터 각종 복용 약이니 우황청심원 등을 챙길 것을  단단히 일러주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언니는 척~하니 엄마와 미국 여행길에 나섰다!

글쎄, 엄마가 확실히 괜찮은 건가?..



미국에 도착한 엄마는 나의 사소한 걱정거리들을 보란 듯이 단숨에 날려버렸다.


14시간여 동안의 긴 비행에 녹초가 되지도 않았고, 피로에 찌들어 몸져눕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딸을 보자마자, 빙그레 웃으며 "반가워~딸~" 하며  나, 놀 준비됐어~~ 딱, 그런 표정이었다.^


막내딸(나)과 겨우, 이틀을 지내고 아예, 큰언니가 있는 손녀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주중에는 직장일로, 주말에는 시어머니 가사 도우미로 일하는 막내딸(나)은 도대체 함께 놀 수가 없다. 한마디로 , 심심해 죽을 지경이다! 그래서 엄마는 놀 거리를 찾아 과감히 막내딸(나)을 등졌다.  손녀가 보고 싶어~라고 핑계를 대며 줄행랑을 쳤다.^


그날 이후부터다. 엄마는 언니와 손녀를 따라 종횡무진하며 시카고를, 미국을 탐험하느라 하루도 쉬지 않고 외출했다.


마침 , 손녀가 이직을 위해 잠시 일을 쉬고 있던 참이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냐고?.. 뭐 재미난 거 없어? 하며 주문을 하면 손녀는 거의 매일 이벤트를 만들어내느라 바빴다. 여기 뚝딱, 저기 뚝딱~ 하며 재미난 일들을 척척 만들어냈다.


엄마의 젊음의 행진은 시카고 다운타운 외출에서 반짝~하며 시작되었다. 번화가인 미시간 거리를 활보하며 한껏 젊음을 과시하는가 하면, 멋진 레스토랑이며 , 시카고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트리(Chicago Starbucks Reserve Roastery) 탐방까지 했다.


 주말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레잌 제네바 (시카고에서 1시간 30분 거리의 소도시)로 당일치기 여행도 감행했다. 나도 해본지가 까마득한 옛날인 것 같은데.. 언니와 카야킹(Kayaking)까지 했다!


언니는 그만, 균형을 잃어 물에 퐁당~빠지는 사태가 났다. 하지만 여든 넘은 엄마는 우아하게 하하~호호~ 하며 카야킹을 즐겼다는 것이다. ^


그뿐인가! 엄마의 기가 막힌 젊음의 행진은 위스콘신 델스(위스콘신 주의 소도시)에서 미친 듯이(?) 발산되었다.^


위스콘신 델스의 대표적인 놀이는 워터 팍(water park)이다. 여름이면 가까운 시티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최고의 시설을 갖춘 곳이다. 드디어! 나도 조인한 1박 2일의 여행이었다.


워터 팍하면 수영복은 기본을 넘어 패션이다! 젊은 우 리셋(언니, 조카, 나)은 나름 수영복 맵씨를 뽐내고 척~나섰다. 짜~잔 엄마도 질 수 없다. 고상한 남색 원피스 수영복에 , 선글라스까지 완벽한 코디를 한 모습이었다.  

 

“와~ 엄마 최고다~"


엄마는 그 나이에도 수영복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우리들의 탄성에 엄마는 이래저래 살맛이 났다. 벌써부터 물에 둥둥~떠는 듯이 엄마의 기분은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때부터다. 엄마의 거침없는(?)  물놀이가 시작되었다. 마침, 어디 한 군데도 '노약자 금지'라든가, '연세가 몇이세요?'라고 묻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려서였나?. 아무튼, 무조건 통과였다!.


첫 물놀이는 우리를 완전히 까무러치게 할 정도로  쓰릴이 있었다. 높은 아웃도어에서 미로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물 위에서 마치 미끄럼틀을 타는 듯했다. 사실, 말이 쓰릴이지, 나에겐 공포의 쓰나미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다음 물놀이는 아예,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모두들 next! 했다. 세상에, 만상에~ ~엄마도 포기란 없었다!


"언니! 엄마 좀 말려~~ 이러다 큰일 나겠어~"라고 난리를 쳤다. 하지만, 내 말은 허공에 메아리칠 뿐, 아무도 신난 엄마를 말리지 않았다.


분위기상 할 수 없이 나는 또 다른 쓰나미 충격을 경험해야 했다. ^ 그 끔찍한 물놀이란 플라잉 게코(Flying Gecko-워터 팍에서 제일 무시무시한 물놀이의 일종)다. 왠지, 이름도 괴팍스럽다. 결국, 그놈의 플라잉 게코.. 를 엄마 때문에 타야만 했다.^


우리 넷을 태운 플라잉 게코는 높~은 절벽에서 칠흑같이 깜깜한 굴속으로 엄청난 스피드로 빠져들어갔다. 마치 지옥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뭐.. 그랬던 것 같다.  그놈의 게코는 몇 분간을 나 (아마 모두)를 초주검으로 몰아넣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쑤~욱 하고 햇빛 쨍쨍한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 몇 분간 젊은 우리 셋(언니, 조카, 나)만 죽어라 악을 쓰며 소리쳤다. ^ 어째, 엄마의 악 쓰는 소리는 전혀 듣지 못했다. 엄마는 그 몇 분간 어땠을까?.. 다행히도, 엄마는 거뜬했다!. "와~~ 아이고~~ 호호호 ~뭐~" 했을 뿐이다.^


엄마 같은 노인이 이런 물놀이에 과감히 몸을 던진다는 건?. 미친듯한 열정이 가미된 모험이 아닐까?..  '내가 지금 즐기지 않으면 언제 하랴?' , ' 그래! 지금이 중요해!'라고 엄마는 그렇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


워터 팍의 물놀이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이 패밀리 그룹이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엄마만큼 연로한 노인은 없었다. 젊은 할머니들은 제법 있었다. 그들은 물놀이를 하는 대신, 서늘한 파라솔 아래서 관람객처럼 조신(?)하게 앉아 있었다. 손녀, 손자들을 돌보기도 하고, 가족들의 옷가지며, 물건들을 지키는 일을 하는 정도였다.


사실, 워터 팍을 활개 치는 할머니는 엄마뿐이었다.^ 엄마는 여느 젊음이 못지않게 팡~팡 띄고  있었다.



엄마는 그동안 코로나 우울증을 앓았었나 보다. 그래서 엄마에게도 여행이 필요했다. 이전의 활기를 찾고 싶었던 거다.


몸의 나이는 여든이 넘었지만 '마음은 청춘이요' 하며 꼭꼭 눌러있었던 열정을 과감히,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 나이에 어떻게 그런 걸 해?'가 아니라, ‘ 내 나이가 어때서?’ 라며.


여든일곱 엄마의 가슴에는 여전히 스무 살의 미친듯한 젊음이 넘치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크리스마스 선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