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 Moon Sep 02. 2022

돈 잘 써는 그녀

나이들수록 돈을 잘 써기란?

살다 보면 간혹, 돈을 좀 써야 할 때가 있다. 계획된 일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가령, 교회 여전도회 모임에서 회비로 저녁을 먹고 커피타임을 갖는 경우다. 당연히 회비에서 충당하는 간식이다.


이때 누군가 "아! 커피는 제가 살게요~"라고 불쑥 말을 꺼낸다. 그중에서 언니뻘이고, 돈도 잘 벌고, 자녀들은 독립해서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모두가 기분이 싹~좋아진다.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다.^ 딱히, 공짜라서가 아니라 괜히 베푸는 그 마음이 예쁘고, 고마워서다.


이런 때를 두고 '돈을 잘 썬다'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런 일에 (계획되지 않은 일)는 좀 느린 편이다. 막상, 누가 입을 연 후에야 '내가 살걸걸...' 하며 아쉬워한다.


돈을 잘~ 쓰는 일이란, 어느 때고 비싼 밥값을 척척 낸다든가, 어디든지 막 써대는 것이 아니다. 뭐랄까, 적절한 시기에 자기 지갑을 열어 기꺼이 베푸는 일이다.


부담되는 큰돈보다는 간식이나, 작은 선물, 기부 (물건 살 때 , 어린이 암 센터를 위해 기부하시겠어요?라고 물어 올 때 등), 생일밥 사기 등등 수도 없이 많다.


이런 식으로 내 주위에 돈을  잘~ 써는 분이  있다. 한때 우리 회사 구매팀에 근무했던 윤실장 님이다. (지금은 이전의 직업이던 은행 지점장으로 일하고 있다.)


60대 후반의 그녀는 화통한 성격만큼 씀씀이에도 넉넉~하다. 천성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은행 지점장으로 일하면서 접대하고, 베푸는 일이 몸에 베였다.


우리 회사에서 일할 때는 지점장으로 있을 때보다 잘 벌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베푸는 일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 그녀의 돈 쓰기 방식은 좀 독특하다. 캐시를 선뜻 내며 "이것, 저것 내가 사!"가 아니다.


자기 지갑을 열어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 오는 일이다. 무엇보다 음식을 좋아한다. 그 솜씨도 웬만한 식당의 요리사 이상으로 훌륭하다. 그녀의 특식은 주로, 빵이며. 한국음식이다. 비빔밥, 찌게, 잡채, 수제비, 국수 등과 같은 각종 먹거리들이다. 간단한 요리는 재료를 가지고 와서 지지고, 볶고 해서 뚝딱 만들어 낸다. (직원 식당엔 조리기구가 완비되어 있음)


이때만 해도 팬데믹 훨씬 이전이었다. 한국 직원들은 회사 식당에서 가족처럼 다 함께 식사를 했다. 그녀가 음식을 하는 날이면 직원들의 런치는 잔치상이 된다. 각자 가지고 온 도시락 반찬과 그녀의 음식이 어우러져 마치 식당에서 풍성한 대접을 받는 기분까지 든다.


당연히 그녀의 인기는 엄청났다!, 젊고, 예쁜 아씨들도 따돌렸다. 남자 직원들에겐 최고의 누나였다!. 나는 그때 새삼 깨달았다. 남자들은 음식을 잘해주는 여인을 존경(?)한다는 것을. 그것도 우러러볼 정도다.^ 한결같이 아이처럼  맛있는 음식을 보며 좋아했으니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야단들이었다. 매일 직장 오는 재미가 좋다 못해 충만하다고!.


그뿐인가! 그녀는 자신에게도 돈을 잘~쓴다. 비싸지 않은 가격대의 산 옷들로 쉬크하게 꾸밀 줄도 안다. 자신을 가꾸고, 치장하는데도 열심이다. 그래서인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단아한 단발머리에 캐주얼한 정장 차림은 그녀의 패션칸셉이다.


솔직히,  60이 넘은 그녀가 노년의 나이라고 느낀 적이 없었다. 그냥, 나이가 좀 든 여인이라는 인상을 주는 정도다. 게다가 항상 패기 있고,  당당해 보인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잘~ 베풀며 사는 멋진 분이다. 나는 그런 그녀가 좋았다.


어느 날, 내가 물었다.

"윤실장님! 어떻게 사람들에게 그렇게 잘할 수 있어요?"  


"별거 없어~내가 음식을 좋아하고, 같이 먹는 것이 좋아서야~",  그리고 덧붙였다.


"지나~  돈은 잘 써야 돼~"


"그러게요~ 잘~써니까 빛이 나잖아요~"


그러면서 몇 마디 말을 이어갔다. 돈이 많아도 잘~써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은행 계좌에 차곡차곡 쌓이는 돈을 보면서 즐기기만 한다.  그 재미로 살면서 아까워서 자신을 위해서도 돈을 감히 써지 못한다.


실제로, 단 한벌의 옷이 닳아질 때까지 입으며, 평생 돈만 벌다가 죽는 사람도 흔히 있다. 남편이 일하는 우체국에는 수십 년간 돈만 모으다가 돌연사하는 노인들이 꽤 있다고 들었다. 뭐. 사람들마다 나름대로 방식이 있고, 특성이 있지만.


내 생각에, 돈을 잘~썬다는 것은 남에게만 지갑을 여는 일이 아니다. 나의 처지에 맞게 남에게도, 나에게도 잘 ~베푸는 일이다. 일종의 기부 같은 것이다. 기부란 부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직원들의 생일 선물을 정할 때도 "기부금  받겠습니다"라고 하니까. 남에게도, 나에게도 양쪽의 밸런스를 잘 이루는  균형 있는 기부라면 돈을 잘 써는 것이 되지 않을까?


"나이 들면 말은 적게 하고 지갑은 열기"


나에게 이 은 나이 들수록 돈을 ~ 써라는 뜻보다 돈을 ~ 써라는 말처럼 들린다. 요즘 들어,  말이 마음에  닿는것을 보면  나도 확실히 나이가 들어가는가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든 넘은  엄마의 미친듯한 젊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