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생활에서 건샵(Gunshop)은 나에겐 항상 미스터리 같은 곳이다. 금지된 구역처럼. 미지의 필드랄까.. 그런 곳이다.
심지어 총을 파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일까? 한 번이라도 지나친적도, 본 적도 없다. 주위에 혹, ‘호신용'으로 총을 소지하고 있다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있다면, 경찰이 버젓이 허리에 차고 있는 총이나 영화에서 가상으로 본 정도다.
작년 가을쯤이다. 시어머니를 위해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한인 복지회에서 급히 연락이 왔다. 서류 하나가 필요한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제출하라는 부탁을 했다.
지문을 찍는 일이었다.
복지회에서 계약을 한 곳만 가야만 했다. 그중에서 토요일에 오픈하는 곳이 딱 한 군데 있었다. 주소를 보니 ‘레익 빌라(Lakevila)' 라는 시티였다. 예쁜 시티 이름에 그냥 매료되어 주소만 보고 달려갔다.
로컬로 대략, 40분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1시간이나 걸렸다.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동안 달렸다. 때는 늦가을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솔길은 너무나 운치가 있었다. 시카고 근교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감탄이 절로 쏟아졌다.
정작, 나설 때는 지문을 찍으러 가는 일이 번거로운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 그토록 예쁜 시티가 있는 걸 안 순간, 가는 길은 대만족이었다.
주소대로 찾아간 곳은 작은 몰이었다. 가야 할 건물을 열심히 찾았지만, 도무지 눈에 띄지 않았다. 몰을 두 바퀴 정도 돌았다. 주소를 다시 확인하던 중, 그때서야 빼곡히 적힌 리스트 중 조그만 글씨로 적힌 건물 (가게)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Red dot Arms !
레드 닷 암스라고?.. 무기상인듯.. 주소랑 오피스 이름이 잘못된 것 아냐?라고 생각했다.
일단 차를 파킹 하고, 그 이름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바로, 그 음흉한(?) 이름이 눈에 확~들어왔다. 겉으로 보기엔 조그만 구멍가게 같았다. 그곳도 여러 개의 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곳의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단 한 번에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나는 그때까지도 지문을 찍는 곳은 당연히 퍼블릭 오피스나 건전한 곳(?) (시티의 직무를 대행하는 곳) 이라고만 생각했다. '음.. 수상하네 ~ 레드 닷 암스(명총기상)라니?' 아무래도 여기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겠기에 문을 열고 들어섰다.
좁아터진 문 입구에는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일제히 나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응? 웬 아시안 여자가 여길? 하는 듯했다. (참고로, 그 시티는 백인 마을이었다) 나는 용감한 전사처럼 사람들 틈을 비집고 카운터에 턱~하니 들어섰다.
맙소사!
프런트의 진열장에는 각종 소총들로 쫘~악 진열되어 있었다. 게다가, 한쪽 허벅지에 권총을 차고 있는 직원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굳모닝~,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그는 분위기와는 달리 상당히 친절하고, 인상도 좋았다. 얼떨떨한 마음에 황급히 물었다.
"여기요~ 혹시, 지문 찍는 서비스하나요?"
"그럼요~"
그는 짧게 대답하고, 길게 늘어선 손님들을 가리키며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마땅히 서서 기다릴 장소가 없던 터라, 나를 밀실 같은 곳(?)으로 안내를 했다. 좁은 통로 끝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은 무기(총)들이 진열되어 있는 전시룸이었다. 사방 벽에는 크고, 작은 총기류가 빼곡히 걸려 있었다!
그곳에도 이미 몇몇 손님들과 직원들이 있었다. 여자라곤 나 혼자였다. 물론, 여기서도 그들의 눈길을 단번에 받았다. 모두들 " 음.. 총 사러 여기까지?" 하는 표정이었다. 어떤 이는 은근슬쩍 나를 훑어보는 듯했다. '저 여인도 호신용 총이 필요한 건가?라고 묻는 듯했다.^
이들은 총을 만지작거리고, 이리저리 아주 골똘히 살피며 직원과 일종의 상거래를 하고 있었다. 어떤 직원은 저 안쪽에서 나오더니 무시무시하게 큰 총을 선보이기까지 했다. '음. 이 총은 말이지 전쟁터에서 쓰이는 일종인데 파워력이 대단하지.. 하며 총 세일에 열심이었다.
나, 참 살다가 별일을 다 보네.. 이렇게 많은 종류의 총을 구경하다니..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나를 공격이라도 하는듯, 그 놈의 무기들을 째려보느라 눈에 잔뜩 힘을 주었다^
하지만 뭐, 보이는 건 총밖에 없으니 기다리는 동안 총구경을 실컷 하는수 밖에.. 내친김에 아주 뚫어져라 이 총, 저 총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겉으로 보기엔 플라스틱 장난감 같다. 총액세서리만 해도 300-500불이 기본이다. 실제 총가격은 천불에서 수천 불 단위다. (이러니 총기 소지 제한이 되겠냐고.)
그건 그렇고, 눈을 부릅뜨고 그 많은 총들을 살핀 들 알게 뭐람? 무슨 종류의 것인지?. 그냥, 잠깐 윈도 샤핑 정도로 끝나야 했다.
내가 그 밀실에 조금 익숙(?)해질 무렵, 드디어 지문 찍는 일을 시작했다. 건샵에서 총을 구입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신원조회 업무를 한다. 동시에, 시티 업무인 지문 찍는 일도 함께 대행하고 있다고 한다. 수입을 더 올릴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레익 빌라'라는 시티 이름에 끌려 1시간을 운전하고 달려갔다. 지문도 찍고, 예쁜 시티도 발견했다. 어쩌다 금지된 구역으로 여겼던 건샵도 구경했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건샵이란 여전히 미지의 세계였을 것이다. 뭐, 그래도 상관없지만. 아무튼, 살면서 이렇게 저렇게 특별한 경험은 쓰릴있다. 뭐랄까.. 브레인이 번쩍, 뜨끔거리는 일이 가끔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