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생일 문화, 나의 생일 문화
얼마 전, 아침 출근길이었다. 즐겨 듣는 "시카고 오울드 팝송 FM 채널"에서 내 보낸 퀴즈 한마디가 내 귀를 쫑긋 세웠다.
"미국인들의 70% 가 번거로워하는 이것은 무엇일까요?”였다.
생일 챙기기였다. 의외였다. "미국 사람들, 주말마다 생일파티 무척 즐기던데,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그래! 맞긴 맞아!”하며 바로 맞장구쳤다.
미국에서 생일이란 어릴 때부터 거나하게 치러지는 일종의 파티문화다. 가정형편이나 부모의 주머니 속 사정에도 크게 상관없이 의무감처럼 치러야 하는 화려한 축제 같은 것이다. 아이들은 그런 환경과 문화 속에서 자란다. “생일이란 파티 행사처럼” 뭐 이런 식이다.
가족과 친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생일파티는 더 자주 일어나는 행사가 된다. 한 달 안에 몇 번에 걸친 생일 파티를 치러내야 한다.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꼭 치러야 하는 부담 있는 행사”라고 한다. 한번 생일파티를 하려면 참석인원을 체크하고, 식당을 예약하고, 메뉴와 선물을 준비하는 등의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금전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다. 자녀들의 생일 파티의 경우는 몇백 불에 해당하는 금액을 한 번에 지출한다고 한다. 파티에 초대된 친구들의 생일 파티도 돌고, 돌면서 참석해야 한다.
대부분의 주부들이 일을 하는 미국에서는 실제 그들이 버는 수입의 많은 부분이 가족, 지인, 아이들의 생일파티로 지출된다고 한다. 거기에다 여기저기 따라다니는 일만도 번거롭고 피곤한 일이다. "그냥 누구나 따르는 문화니깐 그렇게 한다” 이런 식이다.
간혹, 들르는 카이로프랙틱의 "닥터 송"은 일 년 열두 달 생일행사로 쉴 틈이 없다고 한다. 대가족인 처가댁과 아들, 딸, 지인들에 이르기까지 챙겨야 할 사람이 여러수십 명이란다. "정말, 한 달이라도 좀 조용히 넘어가고 싶어요!" 하며 생일 축하하러 다니는 것도 , 받는 것도 귀찮다고 하소연을 한다. 생일파티가 끊이질 않는 대가족이 너무 싫다고 대놓고 말한다.
축하하는 생일이 아니라, 생일을 행사처럼 쫒아다니는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출도 무시 못할 정도로 부담이다. 주고받기 식의 형식적인 치례 또한 싫다고 한다. 무슨 관습처럼 되어버린 미국의 문화다.
직장에서도 매번 치르는 생일행사, 솔직히 그다지 즐겁지 않다. 짜 맞춘 듯이 형식적인 느낌이 많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날에도 왠지 부담스럽고 편하지 않는 게 사실이다. 물론 직원들 간의 사교와 우정을 나누기 위한 취지는 좋다. 하지만 준비를 하는 사람은 업무 외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날짜를 정해야 하고 , 선물을 궁리해야 하고 , 누가 무슨 음식을 가져올 것인가 등 스케줄 짜는 일을 해야 한다. 가장 큰 일은 주인공의 데스크를 최대한 화려하게 장식하는 일이다. 무슨 쇼를 위한 무대를 셋업 하는 것 같다. 그것도 일이라면 상당한 일이다.
”직원들의 사기를 충전시켜주기 위해서야”라는 매니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준비하는 직원들은 하루 업무만으로도 피곤하다. 가족 챙기기도 바쁜 주부들 , 생일파티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느라 지친다. 내가 느끼기에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은 그야말로 가정에서, 직장에서도 생일 파티 홍수 속에 산다. 일 년 열두 달 동안이라고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니다. 즐거워야 할 생일이 설레기보다 마치 꺼려지는 관행처럼 다가온다.
생일은 "으~앙"하며 우렁찬 울음보를 터뜨리고 세상에 나온 날이다. 귀한 탄생의 날이다. 그야말로 나를 기념하는 날이 아닌가. 생일이 굳이 웅성거리는 파티여야 할까? 무슨 고리타분한 소리냐고 젊은 세대들은 한마디 할지 모른다. "나, 생일이야! 오늘을 기념해다오~” 하는 것도 나로서는 어색한 일이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 가족끼리 지낸 생일이 참 좋았다. 찰밥과 미역국, 아버지와 세 딸의 입맛에 따라 엄마가 만든 특식을 먹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근사한 케이크와 비싼 선물이 없어서도 충분히 행복한 하루가 되지 않았는가.
"어휴~벌써 이렇게 컸네!” 하며 온 가족이 밥상에 둘러앉아 아가 때의 못된 횡포(?)와 자잘한 추억을 더듬으면서 말이다.
생일은 태어난 나를 축복하는 날이다. "그래, 이제까지 잘 커왔네~"하며 나를 다독거리고, 어루만지는 날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나는 생일은 조용하게 가족끼리 보내는 것이 좋다. 왁자지껄 여러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일을 꺼린다. 까놓고 말하자면, 나는 파티형 인간이 아니다. 작은 모임을 좋아하고 , 다수보다 일대일 대면을 좋아한다. 속닥거리며 대화할 수 있는 오붓한 것이 좋다.
가족과 회사 직원들(어쩔 수 없이) 외에는 누구도 나의 생일을 아는 사람이 없다. 어떤 사람은 친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생일을 기어코 알아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럴 때면 좀 곤란해진다. 유일하게 내가 생일을 챙기는 사람은 몇몇 친분을 가지고 있는 교회의 싱글맘들이다. 즐겁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 부담이 될 수도 있어, 선물은 생략한다. 자녀가 있는 사람은 함께 맛있는 저녁 한 끼로 생일을 함께 나눈다. 그들은 고마운 뜻으로 항상 맛깔스럽게 담은 김치나 밑반찬을 건네준다. 그냥 이런 식으로 받는 것이 좋다.
내가 보내는 생일은 나를 축복하고 , 어루만지며 , 나의 스토리를 나누는 단출함이다. 삶에서 여유를 가지는 조용한 하루가 되는 것이 좋다. 저녁식사와 선물, 케이크와 손으로 쓴 카드가 생일을 축하하는 모든 것이 된다.
우리 셋( 남편과, 나, 조카인 레베카)은 생일날은 노동(?)을 하지 않는다. 즉 하루를 쉰다. 온전히 나에게 하루를 주고 싶어서다. 선물은 각자 스타일대로 직접 쇼핑하고 산다. 어차피 돈 나오는 구멍은 한 곳인데, 굳이 "이거 샀어!" 하며 생색내는 것도 우습다. 선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할 필요도 없다. 조카는 본인이 선물을 고르고, 지불은 우리가 하는 방식이다. 우리(남편과, 나)의 생일 때는 그녀는 무난하게 기프트 카드로 준비한다. 이런 식의 선물 준비는 불만이 없다. 대충 짐작으로 산 선물보다 훨씬 만족도가 높다. 집안 어른들은 선물로 돈봉투를 준다. 돈봉투는 그들이 원하기도 하고, 항상 원칙으로 하는 생일 선물이다.
생일의 묘미는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어릴 때 치른 아날로그식의 운치 있는 생일 식탁은 아니다. 주로 레스토랑에서 먹거나, 투고(To go)를 해 집에서 먹는 것도 좋다. 작은 케이크를 자르고 , 직접 쓴 카드를 읽어보는 재미도 있다. 손재주가 있는 레베카는 미처 카드를 준비하지 못하면 직접 색연필로 그림을 그려 만든 카드를 줄 때가 있다. 아, 그것도 정말 운치 있다! 어릴 때부터 카드를 꼭 쓰게 했더니 지금도 잘 따르고 있다. 사실, 나는 뜨개질을 한 듯 각양각색으로 만든 카드가 좋다.
앞으로는 내 취미대로 이벤트를 한 가지씩 하려고 한다. 짧은 여행을 가는 것도 나를 위한 선물이 될 것 같다. 시카고의 다양한 문화체험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 독특한 레스토랑을 가 보기도 하고, 연극 공연도 좋다. 훌륭한 시카고의 재즈바도 좀 돌아다니고 싶어 진다. "아! 정말이지, 세월은 너무 얄밎게도 빠르게 흘러간다. 하고 싶은 것은 어째 더 많아지냐고?." 생일날이면 누가 무슨 이벤트를 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겠다. 매번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를 찾아다니는 것도 좀 색다르지 않을까.
레베카는 작년 생일에 "심장이 좀 더 젊을 때 해야 되는 한 가지!" 하면서 남자 친구랑 나란히 Skydiving에 도전했다. 찍은 영상을 보면 아주 가관이다. 막상, 순번이 되어 뛰어내려야 하는 순간, 너무 무서웠다고 한다. 인스트럭터 (Instructor)가 막무가내로 밀쳐서 첨벙하고 하늘로 떨어졌고, 그 순간 "내가 미쳤지!”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단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천 길 낭떠러지로 쑤~욱 미끄러져 내려가는 느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스릴 있었다고 토해냈다.
"우리 셋이 해!라고 제안했지만 남편은 당장 "심장마비 걸릴 거야~" 하며 겁먹고 사양했다. 스카이다이빙은 사실, 이전부터 나의 마음을 끄는 도전이었다. 하지만 나도 심장이 나이가 좀 들었다. 레베카처럼 용기가 선뜻 나지 않았다. 결국, 하늘로 떨어지는 일은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 아무튼 생일은 번쩍거리듯 화려할 필요도 없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해도 괜찮다. 주고받는 것이 굳이 없어도 좋다. 어릴 때 생일은 가족을 통해 "네가 태어난 날이야, 기뻐하렴" 그 한마디로 나를 축복하는 것을 배웠다. 자라서 생일은 스스로 나를 어루만지고, 돌아보고, 축복해줄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생일이 조용하고 때론 모험도 있는 내식의 문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짠~하며, 스릴도 있는.
그런 의미에서, 내년엔 점점 오울드 해지는 심장을 움켜잡고,
"어디, 무시무시한 스카이다이빙에나 한번 도전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