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예쁨 욕망'이란 것이 있다.
엄마의 예쁨 욕망이란 곧, 구십을 바라보는 할매면서도 여전히 ‘나, 꽃무늬 원피스 하나 살란다 !’ 하면서 속내를 드러낸다. 외출 때면, 굽이 낮긴 하지만 그래도 맵시 있어 보이는 ‘구두'를 신는다.
머리가 조금만 길어지만 거울을 요리 저리 본다. ‘영~산뜻하지가 않아~’ 하며 미용실을 찾는다. (참고로, 머리는 정돈되기만 하면 확실히 인물이 업데이트되긴 하다)
할머니형(스타일쉬보다 편안한 것)의 내가 골라준 신발은 다 마다하고, 어느 구석에서 좀 힙해 보이고 , 빈티지한 신발을 귀신같이 찾아낸다.(나도 눈독을 들일만큼 예쁜 것을).
딸이 마사지를 하느라 오이로 얼굴을 장식하고 나타나서 예의상 물어본다. '엄마도 마사지 좀 하자!‘ 하면.. 거절이란 없다. 오이를 여기저기 얼굴에 붙여주는 순간, 엄마는 방글 방글 웃는 아가 같다. 이리저리 얼굴을 돌려대며, 눈을 깜빡거리며 좋아한다.
외출을 할 때면 누구보다도 잘 차려입고, 제일 먼저 외출준비 완료다. 엄마의 옷맵시는 언제 보아도 상. 하의의 컬러매치가 훌륭하다. 곱고, 세련되었다.
그녀의 메이컵은 눈썹을 살짝 그려주고 , 입술에 화사함을 주는 정도다. 대신, 밝은 컬러와 대담한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주는 패션 컨셉이다.
이렇게 멋을 부리는 데도 시간이 걸리지 않는데는 엄마만의 룰이 있다. ‘미리 준비하는 습성’이다.
구역모임, 주일예배, 가족모임 등 특별한 외출 시에는 '입을 옷과 악세사리등을 미리 매치시켜 걸어둔다고 한다.
멋을 내려면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하고, 여유는 멋을 좀 내려면 필요하다. 여유와 멋, 이것이 그녀만의 노하우다. 엄마는 당당한 셀프 코디네이터다.
엄마에게 ‘끼‘라는 것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오래전에 찍은 엄마의 감성이 담긴 사진 한 장이 기억난다.
비 오는 날, 복고풍의 오렌지빛이 감도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보이시한 헤어컷을 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멋져 보였다.
궁금해진다. 엄마는 그 옛날 무슨 패션 잡지라도 본 걸까? 기회가 되면 알아보아야겠다. 막내딸인 내가 그런 '엄마의 끼'를 닮은 것 같다. 나에게도 예쁨 욕망이 넘쳐나니까 말이다.^
괜히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진다. 엄마에게 아직도 이런 예쁨욕망들이 있다는것이. . 어쩌면.. 내가 들여다보지 못한 더 많은 ‘예쁨 욕망’들이 꿈뜰대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런 욕망이란 , 한편으론 삶의 의지 같은 것이 아닐까?.. 오래 살고 싶다기보다는 '잘 살고 싶다'라는 그런 뜻에 더 가까운 욕망이 아닐까 싶다.
결국,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 아직 가슴속에 품은 꿈들. 그리고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모든 것에 마음이 가는 일들이 아닐까?.
언젠가, 30대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도 50대쯤이면 노인이 될 거고 , 할매같이 되겠지.. 했다.
그런데, 지금 오십이 넘었다. 엄마보다 훨씬 더 많은 ‘예쁨 욕망'을 안고 산다. 어릴 때나 이십 대 청춘이었을 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저 나일뿐이다. 여든넘은 엄마가 여전히 예쁨욕망을 가지고 있는건 놀랄일도 아니다.당연한거다.
말이 나왔으니 '예쁨 욕망을 가진 여인이라면 비비안 웨스터우드(영국 패션아이콘이며 디자이너)만 한 사람이 있을까? 그녀는 확실히 '끼'있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할매'가 아니라 그냥 한 여자였고, 죽는 날까지 끼있게 살다 간 여인이다. ‘예쁨 욕망’을 마음껏 드러내고 즐기며 살았다.
그녀를 보면서 엄마를 본다. 언젠가, 엄마에게 비비안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엄마와 난 ‘예쁨 욕망’에 관한 한 통하는 점이 많으니까.
————-
잠시 매거진을 중단합니다.
10월말경에 매거진으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