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재즈클럽에 갔다.
여든 넘은 엄마가 재즈라는 뮤직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지, 또는 좋아하는지는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냥 '재즈는 누구나 좋아하잖아!'라고 혼자 생각했을 뿐이다.
사실, 재즈 클럽에 가기' 아이디어맨은 조카다. 언니(그녀의 엄마)와 할머니를 모시고 좀 근사한 곳에서 흥얼거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재즈클럽이 딱 그런 곳이다. 분위기라면 재즈클럽만 한 곳이 없다. 60-80세대인 두 여인(언니와 엄마)을 모시기엔 최적의 장소다. 나는 그저 조카의 번쩍이는 아이디어에 박수를 보냈을 뿐이다.
재즈'하면 나도 무척 즐겨 듣는 뮤직이다. 좀 과장하자면, 사모할 정도다. 조카가 재즈 어쩌고 하면서 운을 땠을땐 나도 눈을 반짝이며 재즈 공연 주최 측처럼 나섰다. '엄마가 반드시 재즈 바에 가야 하는 이유'를 대며 재즈 클럽에 대한 홍보를 열심히 했다.
'엄마~ 재즈! 재즈바에는 꼭 한번 가 봐야지!'
내가 애정하는 재즈를 엄마도 한 번쯤 경험(?)을 해 보았으면 했다.
우선, 내가 재즈에 심취하게 된 것은, 순전히 무라까미 하루키 작가님 덕택이다. 그는 재즈에 관한 한 풍부하고도 심오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전설의 재즈가수인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는 그를 통해 알게 된 여인이다.
그녀의 재즈는 심플한 듯 하지만 깊게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언뜻 들으면, 경쾌한 리듬이지만 자꾸 듣다 보면 서글픔의 밑바닥을 맴도는 듯한 아련한 느낌이 있다.
그중에 내가 즐겨 듣는 노래는 '블루문'이다. 우연의 일치로 내 브런치의 닉네임이랑도 같다. 그래서인지 더 마음에 든다.
그뿐인가.. 한때는 내가 재즈가수가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한창 재즈에 빠져 있을 때였다. ^ 그런 상상은 대충 이렇다.
화려하지 않지만 잘 꾸며진 스테이지와 몽환적인 분위기를 주는 보라색 조명이 있다면 더 좋겠다. 주인공인 나는 곱슬거리는 긴 머리에 몸에 꽉 끼는 빈티지한 원피스를 입고 노래를 부른다. 가끔은.. 두 팔을 흐느적거리며 율동하듯 노래를 한다. 빌리 홀리데이처럼.
아마, 노래만 잘했다면 재즈가수를 꿈꾸지 않았을까?(참고로, 자랑 같지만 언니말로는 어릴 적엔 노래를 꽤 잘했다는데.., 동네 가수였다는데.^) 가끔, 이런 상상은 언제나 무한한 바다처럼 가능하니까. 아무튼, 꿈에만 머물러야 했던 재즈 가수 타령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재즈바는 다운타운의 Andy's Jazz Club으로 레스토랑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는 곳이었다. 마침, 그날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밤이었다. 비와 재즈라니.. 분위기로는 최고의 밤이었지 싶다.
연인들도 제법 눈에 띄었지만 패밀리와 친구들 그룹이 대부분이었다. 재즈가 연인의 뮤직이라기보다 패밀리를 위한 뮤직이 아닐까? 할 정도였다.
재즈가 연주되는 동안에 엄마는 다소 긴장된 표정이었다. 가끔은 두리번거릴 때도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주변에 당신처럼 재즈를 들으러 온 할머니도 있나~해서였단다^) 실제로, 패밀리 그룹에는 노인분들도 여러 명 있었다.
아마, 엄마는 '그렇지~ 내가 오길 잘했지 뭐야~' 했을게 분명하다. 우리 네 사람은 칵테일을 홀짝거리며 발개진 얼굴로 어깨를 들썩거리며 재즈에 취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함께 한다는 건, 괜스레 마음이 따스해지는 일이다. 그날밤 엄마는 스무 살 아씨처럼 씩씩하게 걸으셨다.
인생이란 스테이지에서 마지막 무대 그 어디쯤 서 있는 엄마다.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모른다.
엄마가 좀 더 기운 있고, 눈이 반짝일 때 내가 좋아하는 것들-소위 엄마가 내 나이 때 하지 못 했던 것들을 나눌수 있어 좋다.
재즈의 고운 선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멋진 일인가. 시카고에서 함께 한 엄마를 추억할 수 있을 장소가 하나 더 생겼다는 것도 좋다.
Andy’s Zazz Club을 아예 ‘엄마의 재즈클럽’으로 붙여두는건 어떨까. 뭐 그럴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