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여든아홉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활기차고 밝다.
조금은 칙칙하고, 회색빛인가 하면 가끔은,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나와는 정 반대다. 가령, 사람들을 만났을 때다. 엄마를 보고, 나를 한번 본다. 결국, ‘어머~ 엄마가 인상이 더 좋아~ ' 하는 소리를 쉽게 들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그런 명랑한 엄마가 시카고에 왔으니, 잠시라도 나의 곁에 있다는 것이 좋다.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면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것만 같다.
하루는 어디를 다녀오는 중이었다. 어두운 밤이었다. 차 안에서 나의 곁에 앉아있는 엄마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말없이 쳐다보는 나의 예사로운(?) 눈길을 느낀 것 같았지만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젊었을 때, 엄마는 나만큼 키가 컸고, 늘씬하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이제는 조금 굽어진 등과 갸녀린 몸, 그래서 더욱, 아니 훨씬 작아 보이는 엄마다.
그 순간, '아.. 엄마가 곁에 없다면 어떡해... 언젠가는 엄마를 볼 수 없을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났다. 나도 모르게 엄마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엄마는 살짝 놀래는 듯하면서도 아닌척했다.
‘아니... 이 차도녀 딸내미가 왜 이러지?..’하는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느닷없이 한 가지가 궁금했다. 딸이래도 엄마에게 물어보기 좀 뭐 한 질문이 하고 싶었다. 나는 가끔, 엉뚱하고 돌발적인 발언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난 알고 싶었다.
89세의 연세의 엄마는 당신의 삶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혹시.. 죽음에 대해 생각한 적 있어? "
"그럼, 항상 생각하지, 언제라도 하늘이 부르면 떠날 준비가 되어있어~"
아.. 엄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담담하게 대답했다. 죽음이 두렵지도 슬프지도 않다고 한다. 인생은 바람 같다고.. 최선을 다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 , 우리 딸 하이팅!' 라며 오히려 나를 다독거렸다.
"응.. 엄마"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의 손을 그처럼 오랫동안 잡아본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자주 잡아보지 못했던 엄마의 손이다. 엄마가 미국에 3년 정도 살 때도 거의 잡아보지 못했다.
그 손을 잡는데도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 뭐가 그렇게 살기 바쁘다고 엄마의 손 한번 제대로 잡아 보지 못했을까?.. 어쩌면 수없이 내민 그 손을 무심하게 지나쳐 버렸을 것이다.
언젠가, 패밀리 닥터인 임 선생님이 하신 말이 생각난다. 연로한 어머니를 일주일에 한 번 보러 가신다. 어쩌다 어머니를 태우고 식사를 하러 나갈 때가 있다는데, 그때마다 잠시 걸어가는 길목에 어머니의 손을 잡아드린다고 한다.
자리에 앉아야 하는 순가에도 어머니는 잡은 손을 놓기가 싫어 그냥 꼬~옥 잡고 있는다고 한다. 그때마다 느껴지는 애잔함에 슬프기도 하지만 기분이 너무 좋다고 한다. 어릴 적에 선생님의 손을 꼭 잡아 주셨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부터 어머니의 손을 자주 잡는다고 한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뜻이고, 그 마음이 연결되는 느낌을 준다. 왜.. 연인들도 손 잡기를 서슴없이 하지 않는가.
사랑이란, 손을 잡는 순간, 그 손을 통해서 느껴지는 전율 같은 것이다. 엄마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그런 전율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전율이란 온화하고, 고요한 엄마의 사랑 같은 것이다.
다음에 엄마를 만나면 그 손을 더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잡아 보아야겠다. 전율할 것처럼 말이다. 이런 느낌이라면, 손을 잡는 건 ‘최고의 포옹’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