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 Moon Nov 25. 2024

야! 라스베가스는 가 주어야지


손녀(조카)는 일치감치  '라스베가스' 여행티켓을 예약해 두었다. 할머니에게 효도를 하고 싶다는 뜻이였다.


손녀는 '할머니가 '라스베가쓰 쯤이야~' 하며 세상물정 모르는듯한, 순수한 열정으로 여행을 준비했다.


우리(언니와 나)처럼 ‘엄마, 갈수있을까? 어때?’ 하며 이것저것 따지는 일도 없이 용감하게 티켓팅을 했다.


사실, 여행이란 불현듯, 뭔가 스칠 때 하는 거라고 한다. 그럴 때 떠나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고들 한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다가온 라스베가스행을 앞두고 언니와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엄마가 와일드(?)한 시티에서 제대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염려가 되었다. 혹시, 무리해서 여행을 했다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 자고로 여행이란, 많이 걸어야 하는 법인데.. 더운 날씨에 몇 걸음이라도 제대로 걸을 수 있을지.. 그렇다고 엄마를 무작정 호텔에만 모셔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엄마를 떠보는 시늉을 해야 했다.   


'엄마, 편안하고 쉬기 좋은  호수가 있는 곳으로 갈래?, 멀~고 힘든 라스베가스 갈래? “


"응, 라스베가스! "


" 아냐, 엄마 나이를 생각해야 해, 무리하면 절~대 안돼~"  

우리는 엄마를 무슨 환자 취급을 하는 중이었다.^


"아임 오케이~라스베가스  좋아~"


"어.. 엄마 , 라스베가스는 덥고, 좀 걸어야 하는데.. 산도 올라가야 한다는데.(버스 타고 가긴 하지만).


"응, 나, 갈 수 있어! 내 컨디션은 지금 최고라고, 라스베가쓰~  간다고!"


마침내 엄마는 속내를 확~ 드러내 보였다. 14시간 비행기 타고 미국도 거뜬히 왔다.  그깟, 라스베가스를 못 갈게 뭐 있냐고!,라고 자신감을 과시했다.


마치, 엄마의 표정은 두 딸년(언니와 나)이 당신의 나이 탓, 컨디션 탓 하며 라스베가스행을 방해하는 것이냐'는 얼굴이었다.  


“그럼… 엄마, 워커라도 가져가는 게 어때?”

언니의 제안에, 엄마는 워커고 뭐고 간에 다 뿌리쳤다.


엄마의 라스베가스행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엄마의 여행의지는 너무 강렬했다.


거기에다 손녀는 뭐라해도 엄마의 강한 오른팔이였다.

“걱정들 마시라, ~ 내가 할머니, 책임져~“


역시.. 젊은 건 좋은 거야~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손녀의 한마디에 우리는 엄마의 라스베가스 여행을  밀어주기로 했다.


엄마는 소원대로 또 비행기를 타고, 두 여자 (손녀와 그녀의 엄마)와  라스베가스로 떠났다.


소위, 제대로 된 '여행'이라는 것을 하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아이처럼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연신 지었다.


그들(세 여자)이 떠난 후에도 엄마가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잘 드시고, 열심히 걷고, 쇼도 관람하고, 버스를 타고 자이언트 캐넌에도 다녀왔다.


엄마는 무사~했다. 여행이 끝난 후, 집으로 들어오는 엄마를 맞이하는 순간, 그녀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 하나 없었다. 얼굴은 생기가 넘치고, 살결은 윤기가 자르르~흐르고, 심지어 젊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컨디션은 이백프로였다. 갈 때보다 더 기운이 넘쳐났다.


"와~ 울 엄마 89세 맞아?, 얼굴이 너~어 무우~ 좋잖아? “


나의 기준으로 볼 때, 얼굴이 안 좋아야 되는데, 너무 좋은 엄마의 얼굴이 오히려 이상했다. 드신 것이라곤 홍삼 액기스 라는데..  액기스라는 것이 이렇게 효과가 좋단 말이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여행지에 도착한 날이나, 돌아오는 날 쯤이면, 얼굴은 피곤에 찌들고,  거지꼴 행색을 한다.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그런 엄마가 신통방통해서 한참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러고 보면, 이 할머니 여행체질인가? 한국에서 14시간 비행기 타고 온 날도 얼굴에 광택이 났거든.. 딸년(언니)은 파김치가 되어 몸져누웠는데.. 진짜 엄마는 타고난 여행체질인게 맞나보다.


엄마는 어리둥절한 나를 향해 "라스베가스 , 너~~~ 어어~무 좋았어~~~ 어어 “ 하며 여행 스토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엄마가 여행을 하니 활기차다 못해 혈기 왕성해졌다. 목소리는 커지고 , 힘이 들어가고 , 심지어는 자신감까지 철철 넘쳐났다.  


엄마의 숨은 열정은 여행을 하는 일이었나 보다. 여행이야기를 꺼내면 그녀의 눈은 달빛처럼 초롱 초롱해지니까 말이지.


엄마를 보니, 런던에 있는 내 친구 게이꼬 할머니가 생각난다. 지금 80세의 나이에도 매일 운동하고 , 수영을 하는데 그 단련된 몸으로 지금도 에어비엔비 호스트로 일을 한다.


게다가, 해마다 여행을 한다. (물론, 옆에는 든든한 남자친구가 있다) 최근에도 니스를 다녀왔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놀란 건, 얼마 전에 내가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까지 도전하겠다고 한다.(전구간은 힘들고, 처음과 마지막 몇 구간만 걷겠다고 한다).


엄마나 게이꼬, 이 두 분의 할머니들을 보면, 정신과 육신이 건강하면 못할 것도 없다. 아니, 뭔가를 하고싶다는 욕망이 정신과 육신을 건강하게 하는것이 더 맞다.


내 노년의 이상형들이다. 나는.. 할머니가 되어도 트렌치코트를 걸쳐입고, 캐리어를 자신 있게 끌면서 여행길에 나서고싶다. 뭐. 뭣할 것 없네.  


여행이라는 건, 생기 있고, 살맛 나게 하는 찐한 맛이 있다. '야! 라스베가스쯤이야!' 하며 노년의 엄마에게 여행욕망이란것을 불끈 솟아나게 하니말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여행 욕망으로 가득 찼다. 순전히 엄마때문이쟎아?.  그 엄마의 그 딸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