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다 같이 다이닝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마침, 조카도 주말이라 집에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언니가 엄마의 장례이야기를 꺼냈다.
평소에는 나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디테일한 것들에 대해서는 나눌 기회가 없었던 참이었다. 엄마가 원하는 장례, 우리가 하고 싶은 장례등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 옛날 같으면 연세가 든 어른들 앞에서 '장례'라는 말을 꺼낸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더구나 당사자인 본인과 장례이야기를 나눈다는 것도 기피하는 일이었다.
좀 발칙하고 현실주의자인 딸들 (언니와 나)은 엄마의 눈치 같은 것도 살피지 않았다. 뭐든지 당사자인 엄마가 정신이 밝을 때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또 우리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생각하는 딸들이다.
엄마는 오래전부터 아버지처럼 화장을 하길원 했다. 아버지묘에 함께 묻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엄마의 그런 바람 이후로, 언니는 생각도 못했던 끔찍한 속내를 드러낸 적이 있다.
엄마의 '애쉬(Ashes)'를 가지고 있고 싶다는 것이었다. 둘째 언니도 언니의 생각에 그냥 농담반으로 ‘호호 그래~’했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하에 마침내, 장례토론은 '애쉬항아리'를 가지고 있는 문제로 열을 올리게 되었다. 언니는 장녀라서가 아니라 특별히 엄마랑 친하다. 자식들 중에도 유난히 엄마랑 절친인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언니다.
친하다는 것이 좀 희한하다. 평소에는 무슨 일을 놓고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를 때가 많다. 서로 고집을 막 내세울 때가 있다. 누구도 질 기세가 없어 보인다.
음.. 이제야 틀어지는구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두 사람은 호호호~, 하하 하~ 웃으며 대화를 한다.
매번 이런 식이다. 사소한 감정 따윈 금방 쿨컥~하며 삼켜버리는 듯하다. 감정 따윈 묵히려고도 하지도 않는다. 엄마는 ‘언니의 태양, 언니는 엄마의 '강한 오른팔’ 인셈이다.
그러니 언니가 엄마의 애쉬를 바라보며 곁에 두고 싶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딸 셋이 엄마의 애쉬를 조금씩 가지고 있자고 했다.
사실, 아버지 묘가 있는 국립묘지는 서울에서 몇 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있다. 엄마의 애쉬도 그곳에 묻히면 , 언니의 말처럼 엄마를 매일 대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이 이유다.
뭐, 어쨌든 딸들의 엄마 '애쉬 모시기'에 엄마는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졌다. 옆에 있는 엄마를 흘낏 보았다. 엄마는 재미있는지 비실비실 웃고만 있었다. '딸들이 나의 애쉬를 가지고 있는다면.. 좋겠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도대체.. 언니는 무슨 생각으로 엄마의 애쉬를 집에 모시고 싶다고 하는 거야?, 간덩이가 커도 무척 크잖아?,
게다가, 아직 애쉬'라는 것을 가지고 있어보지도 않았잖아?, 왜 저래?'라는 것이 나의 솔직한 생각이다.
나는 겁이 많다. 많아도 이만저만 많은 게 아니다. 대낮에도 (밤에는 더 심함) 산 사람이 어디서 튀어나오면 화들짝 놀래서 자빠질 정도다. (참고로, 내가 이렇게 말하면 모두들 항상 말한다. 아니! 그런데 혼자 여행은 어떻게 가냐? 고, 음.. 그건 또 다르죠)
아무튼, 언니의 그런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언니.. 엄마라지만.. 무서울 것 같아.. 아직은 자신 없어.."
"어머? 뭐가 무서워? 엄만데?" 언니는 어른인 내가 웃긴다는 식이였다.
엄마는 나의 반응엔 눈만 깜빡, 깜빡거렸다.
"그래~요것아, 네 엄만데 무서워?!" 하는 듯했다.
이쯤에 나는 퍼뜩, 교회 집사님의 ‘할머니 애쉬항아리 ‘스토리가 떠올랐다.
‘있잖아 , 교회의 한 집사님도 할머니 무지 좋아했데, 애쉬를 납골당으로 옮기기 하루 전날, 애쉬항아리를 어쩔 수 없이 집에 가지고 와야 했데... “
"그래서?"
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쩌다.. 몇 시간을 혼자 집에 있게 되었데.., 그런데.. 할머니의 애쉬 항아리를 쳐다본 순간, 갑자기 무서워 죽을 뻔했데에~! “ 이 말을 하면서 나는 내가 더 놀라고 있었다.
"어이구~얘는~, 그게 무슨 귀신도 아니고 그냥 가~루일 뿐인데..~~ 뭐가 무서워어어? 호호호~ “
언니는 무슨 말 같지도 않다는 식의 반응이었다.
옆에 앉은 조카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래도.. 그런 걸 어떻게... 해~” 하지만 언니는 자기 딸(조카)도 그렇게 했으면(애쉬항아리 가지고 있는 것)하고 은근히 나를 어르고, 달래는 중이었다.
나는 매정한 딸이 되기는 싫어서 한마디를 꺼냈다. 당장 엄마를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다.
"응.. 그럼 언니들이 엄마 애쉬 나누어서 가지고 있어 봐~, 하나도 안 무서우면, 그때.. 나도 '엄마 애쉬' 시카고로 가져올게.., 그럼, 딸 셋이 '엄마 애쉬' 가지고 있는 거지 와우~~~"
엄마는 딸들의 '애쉬 항아리 킵 하기' 의견들만 듣는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해하셨다. 하지만 그 순간, 엄마는 땅속에 혼자 있을 아버지는 깜빡 잊어버렸다. 딸들도 그랬다.
조카도 분위기에 어쩔 수 없이 '응.. 나도 한번 생각해 볼게~' 하는 것으로 자기 엄마를 웃게 했다. 조카는 이모(나)가 하는 걸 보고 생각해 보겠단다.
미국에서는 가족의 '애쉬 항아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을 볼 수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그래도 애쉬 항아리라니.., 나에겐 버거운 일이다. 엄마라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나는 밤새 끙끙거렸다. 엄마 애쉬 항아리를 모실 생각을 하니까. 그럼 아버지는? 그렇게 되면 어쩜, 우리는 두 개의 항아리를 집에 모셔야 하나?..
아, 이런 문제 어렵다. 어려워. 웃자고 한 이야기가 언젠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엉뚱한 언니들이 정말 이 일을 성사(?)시키면.. 혼자 하는 말이지만, 바람직하게~ 간 큰 언니들이 관리(?)하면 될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