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결혼을 했다.
조카지만 보통 조카가 아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미국에 왔다.
이제 30 살이 넘었고, 간호사가 되었다
간호사로 성이 안 차 다해서 공부를 더 했다
억순이처럼 일하면서 정신과 프렉티셔너가 되었다.
한국에서 산 기간 보다 미국에서 살았던 기간이 더 길다. 한국에 낳아준 엄마, 아빠가 있지만 내가 친구 같고 , 엄마 비슷한 존재다.
우리 부부가 세컨드 부모 비슷하다. 가디언, 도움이, 비상시 기댐 이등등..
사춘기를 지나면서 많이 싸웠다. 그때는 내가 매서운 사감선생처럼 굴었다. 이제는 지가 컸다고 나를 가르치기도 하고 , 혼내기도 하고 그런다.
마음껏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온갖 일들을 털어놓는다. 가끔은 , 서로 미웠다가 좋아지는 걸로 돌아온다.
둘의 인연은 인연인 것 같다
걔가 태어나는 날은 푹푹 찌는 무더운 날이었다.
지엄마는 나를 붙잡았다. ‘
"나 , 연년생 둘이 힘들어!, 얘 좀 봐줘~~‘하며 생난리를 치는 통에.
위로 한 살 터울인 오빠가 어찌나 별났는지.
그때부터 대략 일 년 동안, 그 아기는 내 몫이었다.
조카사랑은 이모라더니, 걔가 그렇게 예뻤다.
업어주고, 재우고, 똥기저귀 갈아주는 일도 척척했다.
이전엔 그런 일은(기저귀 가는 일) 절대 못해! “했다.
그런데,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냥 했다. 그 당시엔 내가
그 지저분한 일들을 해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중에서야 그 일을 다해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미국으로 오는 날,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던 그 아기는 뭘 아는지
눈물, 콧물 흘리며 ‘앙, 앙~‘거리며 나를 쫒아나왔다.
그런 아기가 숙녀가 되었다. 독립을 어엿하게 했다.
결혼을 하니 이상하게 멀게 느껴졌다.
이제 그다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을까?
조카얘가 훌랄라 시집을 가는 날은 더욱 그랬다.
나의 마음 같은 건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그게 서운했는지, 슬펐는지.
때마침 런던으로 날아왔다. 런던할매에게 '서운함을'털어놓았다.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할매는'그게 결혼을 하니까 그런 걸거라고..' 하며 나를 다독거렸다
.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도 그렇게 울었다. 내가 미국으로 오는 날, 차 안에서
하염없이 우셨다. 철없던 나는 그저,
'아니.. 울 엄마 왜 저래?..' 했을 뿐이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게 서운하기보다 아쉬워서.
잘해주지 못한 것이 더 많아서.
런던에 있는 동안
조카얘를 내내 떠올렸다. '놓칠까 봐 , 꼭 잡고' 있는 나를 보고
소스라치며 놀랬다.
부여잡고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놓아버러야한다고., 그게 사랑이라고 스스로 타일렀다.
런던을 헤매고 다니면서 ,
보내주고, 놓아주는 것이 사랑임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히려 나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사랑은 자유로울 때, 더 깊어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