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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Moon Jan 26. 2019

엄마의 이야기보따리

엄마의 세상

" 어릴 적, 옷을 팔러 다니는 아주머니가 산더미만 한 보따리를 이고 다니던 것을 종종 본 적이 있다.

그걸 풀어헤치는 순간, 그 안엔 다양한 모양과 색상의 옷가지들이 수북이 쌓여있었어. 

그처럼, "세상의 많은 이야기보따리를 엄마는 늘 가지고 있었다"



이젠 여든네 살이 되신 엄마는 매번 시카고로 다니러 오시게 되면, 언제나 그랬듯이,

그녀의 이야기보따리를 펼쳐 놓길 좋아하신다.  


그간 떨어져 지내면서 생긴 소소한 추억담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그녀의 어릴 적 가족 이야기들이 주요

타이틀이다.


오래전에는, 그녀의 이야기들이 "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여기며, 

 직장에서 돌아온 나로서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이제 ,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어느 날부터 그녀의 이야기들이 드라마처럼  재미있게 들리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식사가 끝나고, 한가한 시간이 오면,   

엄마는 한국 드라마를 뒤로 하시고, 그녀의 이야기보따리를 열어 차곡차곡 개어져 있던 온갖 색상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씩 펼쳐놓기 시작한다. 열정적인 연사처럼,  그처럼 생기발랄한  

표정을 가득 담고서.


" 엄마의 세상이 열리기 시작한다"


난 , 눈을 반짝이며 그녀에게 바짝 가까이 다가간다.  

마치 어릴 적, 엄마가 읽어줄  동화책의 스토리를  기대하면서 그 앞에 쭈그리고 앉은 아이처럼.

그때부터 밤늦도록 나는 그녀가 보따리에서  꺼내기 시작하는 내가 만나지 못한 세상과

그 속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어릴 적 보았던 옷장사의 보따리 속의  다양한 무늬의 옷과 같은  이야기들로.

풀어도 끝이 없는 무한한 세계 같다.


나는 엄마의 지나온 세상에 초대되어 어떤 땐, 그 이야기에 

자지러지게 큰소리로 함께 깔깔대기도 하며  , 때론 감격하기도 하고 , 

또 울컥 눈물을 글썽이면서, 그 사연들의 시간들 속으로 들어간다.  

그  한 시절을 회상하며 못내 아쉬워하며 그리워하면서.  


내가  가 보지 못한 삶의 조각들을 구워내는 따스하고 정감 있는 시간들이다.

잠시 가슴을 적시는 눈물마저도 꽃잎처럼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은 행복한 

순간이 거기에 있다.


그 이야기보따리는 장롱 속 서랍장마다 들어있는 여러 옷가지들처럼,  

나의 인생이란  옷에 장식을 하면서 다른 세상을 지나가게 한다. 


거기엔 인생의 진주 같은 교훈이 있다.  

내가 살아가는 그림을 더 멋지게 그려내고 싶은  많은 밑그림들이 있다.    


엄마의 기나긴 인생길에 깃든 잊지 못할 사람들의 추억과 사랑-

그 속에 녹아있는 슬픔과  행복했던 이야기들.

인생길의 빛과 그림자.  삶의 소중한 사연들.  


깊은 서랍장 속에 묻어둔 오래된  앨범 속 사진처럼 꺼내보고 싶은-

소중한 보석함과도 같은 -


엄마의 이야기보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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