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 Moon Nov 18. 2018

엄마가 머문 자리

하지 못한 고백

혹, 누군가에게

무수한 마음의 글이 담긴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나요?


지난해 봄이 오는 무렵 어느 날,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긴 겨울철 옷가지들을 정리하면서

옷장 깊숙이 ,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여름용 작은 가방 안에서

노란 종이에 쓴 긴 편지 몇 장을 발견했다.


대략 13년 전 , 엄마에게 쓴 편지였던 것이다.

그 당시, 연세 70이셨고, 그 기념으로 남편과 나는 엄마를 크루즈 여행에 모시기 위해 이곳 시카고로

모시게 되었다.

그렇게 여행 후, 엄마는 6개월 정도를 시카고에서 사시면서 나에게 얼마나 마음의 든든한 의지가 되셨는지..


함께 지내면서, 가끔은 내가 보기엔 구식 스타일의 엄마 때문에 부딪히기도 했다.

주로 한번 사용한 지퍼백을 버리는 것이 낭비라고 꼭 씻어서 한번 더 사용하기 위해 부엌 싱크대에

말리려 늘어놓는다든가, 카페나 식당 가서 남은 종이 냅킨 같은 것들은 어차피 버려질 것이라 하시며 주워 담아 오는일 등에 "엄마! 지저분하게 왜 그렇게 늘어놓아!" 또는 "그런 걸 왜 구질구질하게 가져와!" 하면서

엄마에게 핀잔을 줄 때가 많았다.


그러나 엄마의 시카고의 나들이는 야간근무를 하는 남편과 단 둘이 사는 나의 심플하고 조용한 생활에

조금 더 활기를 가져다주었다.

남편과 나는 번갈아 쉬는 날과 주말이면 엄마와 즐거운 외출을 하느라 바빠졌고,

엄마의 자라온 과거의 추억 이야기를 듣는 재미와 함께 여행을 하고 샤핑을 하는 등,

나의 나날들은 그녀로 인해 휘파람처럼 즐거웠지.

엄마는 딱히 훌륭한 스토리텔러(이야기꾼)는 아니었지만 , 퇴근 후 매일 저녁 듣는 어릴 적 가족 이야기에서부터 유난히 많았던 사촌언니들과의 추억들, 학교와 동네 이야기 등 그녀의 인생에 얽힌 역사 스토리는 들어도 끝이 없고 재미있었다.

오래전 내가 기억한 엄마는 그저 현모양처형의 대표적인 사람이었는데, 나와 함께 지내며 바라본 그녀는

참 많이 다른 모습의 엄마였어.

간혹 다른 사람들과의 모임이나 교회의 야외예배에서의 오락게임에서는 한 번도 빠지지 않는 노익장을 과시하는 등 소녀같이 뛰놀고 연신 미소를 머금은 모습을 보고 "어? 우리 엄마, 이런 사람이었어?" 하며 의아해했다.


이렇게 늘 큰 변화 없이 흘러가던 삶의 한가운데 서 있던 나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사막에 피어나는 소중한 꽃 한 송이 같은 것이었음을.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나는 엄마가 함께 시카고에 정착하여 가까이 살았으면 하는 생각들이 간절해지기 시작했고 그런 나의 바람에

엄마도 잠깐, 여기서 한번 살아볼까 망설이셨다.

그러던 찰나,  갑자기 심장에 이상을 느껴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진단으로

여생을 시카고에서 보낼까라고 한 생각을 곧 접어버리고 언니들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셔야만 했다.

그 후 당연히 담담하리라 여겼던 것과는 달리, 엄마가 떠난 자리가 너무 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잔잔한 내 일상에 펑! 하고  엄청난 폭음을 내는듯한 느낌이었다.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헌신, 양보.. 난 그제야 그것이 그리움이 되어 그 간의 내 생활의

거대한 버팀목이 되었다는 걸 알았던 것이다.


샤갈의 그림

      


길고도 짧았던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베푸신 엄마에 대한 애정과 마음이 어느 날 긴 편지를 쓰게 했다.

그런데, 난 그것을 보내지 않았다.

옷장 구석 한편에 있는 가방에 깊이 넣어두고서..."다음에 보내야지".. 그렇게 미루면서

그대로 까마득히 잊어버렸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엄마가 여기 내 곁에 살지 못하시고 훌쩍 떠나버려 어디론가 떠나는 엄마를 향해

마치 어린아이 같은 서운함과 슬픔에, 온 집안에 그녀가 남긴 삶의 흔적 때문에,

한동안 내 마음도 씨름 씨름 앓느라 미처 그 편지를 보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더 큰 이유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정말 하고 싶었던 고백을 십여 년 동안 미루고, 그렇게 내 기억 속에서 잊혀버렸던 것이다."

그녀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이 눈물자국처럼 군데군데 묻어있는 그 편지..

마치, 아끼는 소중한 물건을 거리에서 잊어버린 것처럼 그대로 가방 안에 놓인 편지는

오랜 세월 동안이나 내 인생에서 귀중한 고백의 순간들을 놓치고 그렇게 덩그마니 놓여있었던 것이다.


그 편지가 발견되기 십여 년 동안은 한국에서 조카가 공부를 위해 시카고로 와서 나와 살게 되면서

나의 생활의 큰 변화로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사실, 엄마는 그 이후에도 두 번이나 시카고에 오셨지만 난 그때에 쓴 편지는 내 기억에서 완전히 잊어

버렸고 그 당시 하지 못했던 내 마음의 고백도 여전히 엄마와 마주하지 못한 채 한쪽으로 미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발견된 편지는 다시 보낼 수는 없었지만, 내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는 찬스를 나는 다시는 달아가지 않도록 내 마음에서 꼭 붙잡았다. 드디어 나에게 그 기회가  온 것이다!

올해, 83세인 엄마는 조카, 레베카의 대학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꽃피는 5월에  다시 시카고로 오셨다.

2개월을 지내고  7월에 한국으로 떠나는 엄마에게 나는 십여 년 미루어왔던 고백을 당당히 할 수 있었다.  이제 어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막내딸 집-시카고 나들일 수 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엄마 사랑해!  I love you


편지 속에 써 내려간 그녀를 향한 모든 마음의 조각들이 이 고백의 한마디로 엄마와 나의 가슴에

서로의 별이 되어 흔적으로 남아있으리라 믿으면서.


이제 나는 오래전 엄마에게 주었던 핀잔 거리-그 짓거리들을 내가 하고 있다.

한번 쓴 지퍼백을 씻어 재활용하기 위해 싱크대에 늘어놓고, 레스토랑에서 버려 없어질 거라고

남은 냅킨을 쓰겠다고 가방에 담아오면서..

나도 나이 들고 있다.

엄마-그녀가 남긴 자리다.




우린, 살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미처 꺼내기 힘든 고백의 소중함을 그냥 잠재우며, 미루면서

 "언젠가 알겠지" "어떤 적당한 순간에 "..라고 하면서 묻어둘 때가 많다.


사람들이 죽음 앞에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마음을 열어하는"사랑의 말- 고백"을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란다.

혼자만의 깊은 장롱 속 수많은 옷가지들 속으로 보이지 않게 가리고 쌓아둔 고백, 그렇게만 묻어두고 꺼내길

망설이면서..


혹, 그 소중한 누군가에게 마음속에 그리움과 그 사랑을 써 내려간 아직도

부치지 못한 편지가 있는지요?

미루지 마세요.


지금,  바로 보내세요.

감사하다고. 그립다고. 사랑한다고.


Aug. 04 2018


매거진의 이전글 진짜 부자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