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 말썽꾸러기
긴 겨울이 끝나고 길가에 좌우로 늘어선 나뭇가지들이 조금씩 아련한
연초록색의 새순들을 피우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나무들은 선명한 초록색 잎들로 무성하게
단장할 것이다.
4월의 온화한 햇살이 기나긴 겨울잠에서 기지개를 켜듯 따스하게
대지를 맞이하고 있는 완연한 봄날이다.
이때쯤이면 어김없이 주택의 잔디밭이나 나무 위, 또는 길거리에서 마주치기
시작하는 것이 다람쥐다.
다람쥐들은 추운 겨울 동안 어디선가 따스한 곳에 집을 짓고 살다가
야호! 드디어 우리의 계절이 다가왔어! 자~ 바깥세상으로~, 하면서
어김없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집 저 집의 잔디밭을 돌아다니고, 근처의 나무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촐랑거리며 오랜만에 봄날을 즐기느라 신난다.
어딘가 그들이 만들어놓은 움막에서 지루하게 웅크리고만 지내던
기나긴 겨울에서 그들의 인간세상으로의 출현이다!
다람쥐들은 봄부터 늦가을까지 활동을 하며 미국에서는 주택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내가 처음에 미국에 왔을 때가 마침 4월 말이었는데, 다람쥐가 집 잔디밭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 굉장히 신기했다. 마치 희귀 동물을 보듯이.
어디 산중에서 도토리나 까먹고 지낼법한 다람쥐들을 가까이서
마냥 볼 수 있다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동물원에 온 것처럼 즐거웠다.
이들을 주택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주위에 나무와 숲이 우거진 곳이
많고 또한 주택가에서는 제법 먹을 부스러기들을 풍족하게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몸집에 동그란 큰 눈을 굴려가며 먹는 것에 열중하면서도 적의 접근을 금방
알아차린다는 다람쥐다. 그들의 껑충~껑충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은
토끼처럼 앙증스럽고 귀엽기만 해서 동네 꼬마 아이들의 또 다른 친구들이기도 하다.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내가 미국에 와서 다람쥐를 가까이 대하게 되면서
그들과 부딪힐 때마다 열심히 쫒아다닌적이 있었다.
"야~ 이리 와 봐~ 이 녀석들아~, 우리 집에서 살지 않으렴?"
하면서.
(아마, 지나가는 이웃사람들이 그러고 있는 나를 보고 우스꽝스럽게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흥! 어딜 나를 잡으려고! " 하면서 나무 위로 재빠르게 달아나 손아귀에 넣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녀석들은 내 관심에 칼날을 세우고 도망만 갈 뿐이었다.
"우리는 인간들이랑은 안 살거든!" 하면서 그들을 잡으려고 쫒는 나에게
거센 항의라도 하는 듯싶었다.
이렇듯 다람쥐는 그 동그란 눈을 굴려가며 행동뿐만 아니라 눈치도
상당히 빠르고 영리한 동물이다.
아무튼, 다람쥐는 내가 미국에 오자마자 바로 집 앞 잔디밭에서 만난 유일한 동물이다.
흔히 사람들이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이나 고양이처럼
함께 동고동락은 하지 못하는 실정이었지만, 다람쥐는 그냥 자연스럽게
봄날부터 늦가을까지 보게 되는 동네의 특별한 애완동물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이렇듯 다람쥐들이 사람들이 사는 곳에 가까이 있다 보니 자주 우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가 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잔디밭에 심긴 꽃을 흩뜨려 놓거나 열매를 마구
따먹기도 하는 등의 말썽을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이들을 조금 귀찮아하면서도 그저 작은 동물에
불과하다고 여기며, 모든 것도 용납? 하면서 그저 그들 사랑에 지극하다.
동네의 말썽쟁이 다람쥐들은 주로 햇살 좋은 낮에 왕성한 활동을 하며 신나게
팔 팔거리고 놀기 바쁘다. 그들의 주요 놀이터란 잔디밭이나 나무 위다.
심지어는 길거리에 나돌아 다니는 짓들을 무척 좋아해서 차가 다니는 길거리도 서슴지 않고
외출을 나선다는 것이다!
아마 건널목을 건너 반대편 주택가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일 거다.
그래서 마구잡이로 도로 위로 뛰어나오는 일이 종종 있다.
이들의 능청스럽고 과감한 행동은 몸을 사리지 않는 듯한 거리의 무법자 같다.
동네 골목길이나 도로 위로 볼일을 보러 다니느라 인정사정없이 뛰어든다!
이런 모습을 보면 추측 건데, 다람쥐들의 기질이란 생긴 모습에 비해
다소 급하여 다혈질적인 면이 있다.
대부분의 차들은 이들을 피하느라 끼이~익 하면서 급정거를 해야 하고,
급기야는 자동차끼리 부딪히는 사고가 빈번히 일어난다.
이 조그만 녀석들인 다람쥐 한 마리를 보호하기 위해.
몇 년 전이었던가, 어떤 친구는 퇴근길에 갑자기 다람쥐가 도로를 건너기 위해
뛰어들어 그 녀석 한 마리를 피하려다 주택가 옆에 주차된 차를 몇 대나 들이박는
대형사고도 있었다.
남성에 반해 대부분 여성운전자들은 이 거리의 무법자들과 일단 맞닥뜨리면
"어머~ 이럴 어쩌나~" 하고 당황하면서 다람쥐를 피하려다 엉뚱하게 다른 차를
들이박는 사고가 많은 것이 보통이다.
이처럼 막무가내이면서 성질이 급한, 거리의 무법자인 다람쥐로 인한 사고와
또 사고로 인한 다람쥐가 죽는 일들도 꽤 많이 발생한다.
그런데 언제나 남의 이야깃거리였던 다람쥐 사고가 불행히도 나에게도 발생했다!
땅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햇빛이 유난히 따스한 봄날.
다람쥐들도 무척 좋아할 날씨였다!
외출을 위해 내가 사는 콘도 입구를 유유히 빠져나가는데 갑자기 휙~하고
차 앞으로 다람쥐 한 마리가 나타났다.
보통은 다람쥐들이 길을 가다가 차가 온다는 느낌을 받으면 오던 길을 잽싸게
뒤돌아 도망친다.
그런데 이 다람쥐는 좀 눈치가 없었서인지, 아니면 세상살이에 아직 어린 나이의 다람쥐였는지,
눈앞의 위험을 잽싸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만 차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너무 순간적인 일이라 미처 피할 새도 없었다..
정면충돌은 피한 것 같았다고 느꼈고, 제발 무사히 바퀴 틈으로 빠져나갔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차를 잠깐 스톱했다.(다행히 뒤에 차가 없었다)
백밀러를 통해 들여다보니 오 마이갓! 다람쥐가 더 이상 가질 못하고 거리 위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어머! 다람쥐가 차에 치였구나.. 이걸 어째!..
난 다람쥐의 상태를 차마 눈으로 들여다볼 수가 없어서 차에서 내리지를 못하고
잠시 망설였다.
다시 뒤를 돌아다보았고, 다람쥐가 잠시 동안 움지럭 거리더니 마침내 더 이상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뒤에 차들이 왔고 나는 그만 내릴 순간을 놓치고 다람쥐를 떠나고 말았다.
어떤 작은 죄책감 같은 것이 운전대를 잡은 내 손을 자꾸만 그쪽으로
잡아끌어당기는 듯했다.
다시 돌아오는 길에 그곳에 누워있을지도 모르는 다람쥐 생각에 그곳에 정차해서
확인했지만 다람쥐는 없었다.
외출 나간 그 다람쥐의 가족, 친구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런 생각과 함께 작은 동물의 죽음 하나가 마치 무엇을 길거리에서
잃어버린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이 되어 하루 종일 내 마음 한구석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다음 날 직장에서 직원들에게 내 차에 치인 다람쥐 이야기를 꺼내었다.
"사실, 어제 다람쥐를 치는 사고가 났어.."라고 말하자
다들 "oh ~ that's so sad~" 하며 애석해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모두가 한 번쯤은 다람쥐를 자동차로 치인적이 있는
경험들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이는 차에서 내려서 죽어가는 다람쥐를 들여다보면서 안타까워도 했고,
나처럼 용기가 나지 않아 죽은 다람쥐를 두고 떠났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런 사실은 "그래, 어쩔 수 없었어.."라고 나에게 작은 위안을 주었다.
우리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사랑스러운 애견처럼 동네의 개구쟁이인 다람쥐를
향한 작은 애틋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온 동네의 잔디밭을 누비고 다니며 놀이터로 삼고 종횡무진하는 동네의 말썽꾸러기.
늘 사고의 주범이면서 피해자가 되기도 하는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거리의 무법자, 다람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