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뜨는 들판을 향해
9월 8일 파리-바욘(Bayonne)-9월 9일 생장 피드 포드 (St. Jean Pied de Port) -오리손(Orisson)-론세스 바예스(Roncesvalles) -9월 10일 주비리(Zubiri)-9월 11일-9월 13일 주비리에서의 사흘 동안-9월 14일 팜플로나(Pamplona)-9월 15일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
카미노 데 산티아고 -Camino de Santiago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영어로는 "성 야곱의 길" (the way of Saint James)이라고 불린다.
스페인 북서부의 갈리시아(Galicia)에 위치한 예수님의 제자, 야곱의 묘가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의 대성당으로 향하는 순례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성찰, 정신적인 성숙과 회복을 위해서 순례길을 떠난다.
또한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기 위한 그룹 투어뿐만 아니라 하이킹이나 싸이클링 애호가들도 상당히
많이 찾는 길이기도 하다.
“Compostela”라는 뜻은 라틴어 ‘Campus -Stellae ”의 합성어로 영어로는 -Stars Field -별이 뜨는 들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의 루트가 있지만 그중에서 프랑스 길(the French Way), 북쪽 길 (the Northern Way), 포르투갈 길 (the Portuguese Way)이 대표적인 루트들이다.
이 중에서 프랑스 길은 고대로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르는 가장 오래된 순례길로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대부분의 사람들이 걷는 길이다. 프랑스 길은 프랑스 최남단인 생장 피드 포드(Saint-Jean- Pied- de- Port)에서 시작하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대략 800km에 이르는 대장정이다. 개인에 따라 30-40일 사이에 완주할 수 있고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1주에서 2주 정도로 여러 번에 걸쳐 순례길을 마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다-별이 뜨는 들판을 향해
"이번 휴가로 산티아고 순례길 가요! 혼자요!"
나의 이 한마디에 직장동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난리가 났다. "뭐? 무거운 밥솥 하나도 제대로 못 들어 낑낑대는 그 체격에 배낭 메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간다고?"라고 하면서 야유인지 칭찬인지 부러움인지 모를 이상한 기세들로 나에게 질문공세를 하기 시작했다. "진작 얘기 좀 하지 그랬어! 같이 가게"부터 시작해서 왜 혼자 가는지 등 온갖 오지랖들을 늘어놓았다.
미국 동료들은 모두 한결같이 "지나! 화이팅!"이라고 격려를 해 주었고 그중에서도 이제 60살이 된 카르맨은 "일단 집 떠나면 남편한테든 누구에게든 전화 두절하고 오로지 너만의 시간을 가지렴!"이라고 말했다. 동료 언니들은 "가는 곳마다 수시로 연락해~"라고 말하는 등 오히려 자기들이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에 얽힌 온갖 무성한 소문들을 들추어내면서 걱정인지 격려인지 헷갈릴 정도로 "조심해"라는 말만 연거푸 해대었다. 우리 부서의 미국 동료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인사말들이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 역시 "야 ~ 홀가분하게 그렇게 떠날 수 있어 너무 부럽다"라고 나에게 힘찬 응원을 해 주었다. 여행이라면 편안한 크루즈 여행을 선호하고 특히 "걷는 여행은 싫다!"라고 일찍 감치 선언한 남편에게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나의 생각을 전했다. 비행기 티켓을 사고 "이제 순례길 떠난다!"라고 나도 선언했다! 이렇게 나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날 채비는 끝났다.
나는 아주 먼 길을 떠났다.
까마득히 먼 세계로 날아간 느낌이다.
단 2벌의 옷으로 하이킹 슈즈를 신고 배낭을 메고 떠난 여행은 내 평생 처음이다.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려고 결심한 것은 오래전부터다.
나는 미국에서 결혼하고 그동안 직장여성으로, 주부로 정신없이 그리고 열심히 살았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삶이다라고만 여기며 그곳에 안주하며 지냈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어김없이 일어나 출근해서 일하고 또 같은 길을 되돌아와서 저녁 잠자리에 들기까지 거의 똑같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맞춰놓은 알람처럼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나의 삶이 갑자기 너무 지겨워졌다.
혼자서는 어디든지 갈 수 없었던 겁쟁이였다. 헨릭 입센의 소설, 인형의 집의 주인공인 주부인 "노라"가 자신이 마치 인형 같은 존재로 살아온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을 찾아 집을 떠난 것처럼 그저 편안한 삶에 안주해 길을 잃은 내 안의 벽에서 헤어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에 붉은 노을이 지는 선명한 저녁 하늘을 보았다. 눈부시도록 붉은 그 빛이 유독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문득 나는 백밀러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 가슴 한편에 불이 꺼진 채로 고요히 재켜둔 빛바랜 꿈처럼 말라 비뚤어져가는 낯선 여자의 모습-초췌한 내 영혼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난 그렇게 겉만 멀쩡한 채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 이렇게 나이 들어갈 수는 없어, 내가 원하는 삶은 이런 것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난 내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그 무언가-나를 찾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란 무엇일까?”라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후 갑자기 사진 찍는 일이 좋아져 카메라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친구로부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 이름이 가슴에 와 닿아 인터넷에서 이 길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게 되고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길의 풍경들을 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이 순례길을 걸으며 스페인의 조그마한 시골 마을들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여정의 길이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낯설지만 조용한 시골길, 명상의 길을 내 마음속 깊이 그리고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다"라고 난 직감적으로 믿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나에게 꿈을 주었다.
이 길을 보고 또 보면서 "아! 그래, 글을 써야겠어!"라는 영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 열정대로 곧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알게 되었다. 그런 후에 본격적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홀로 떠났다. 알고 싶었다.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시험해보고 싶었고 그 한계를 넘고 싶었다.
"아무것도 시도할 용기가 없다면 인생이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빈센트 반 고흐
9월 8일 파리-바욘(Bayonne)에서의 하룻밤
순례길의 출발지인 생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파리에서 기차를 5시간 타고 바욘으로 가서 거기서 1시간가량 또 기차를 타고 가야 한다.
첫날 강행군을 해서 생장까지 들어간다 해도 그다음 날 바로 순례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신체적으로 무리일 것이라 판단이 되어 바욘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했다.
9월 7일 (토) 시카고에서 출발한 파리행 비행기는 일요일 오전 11시쯤 도착했다.
배낭을 가지고 바로 비행기에 탑승한 덕분에 빠르게 입국 수속을 끝내고 바욘으로 가기 위해 공항에서 출발하는 버스로 몽파르나스역으로 향했다.
이미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던 아름다운 파리를 보면서 언젠가 "가을에 꼭 한번 파리에 올 거야"라는 여운만을 남기고 아쉽게도 떠나야 했다.
바욘행 기차 시간이 오후 3시쯤이어서 시간상 여유가 있었다. 몽파르나스역은 마침 일요일이라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고 어디가 어딘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역 내부를 조금 둘러보면서 사람들이 어디서 기차를 타고 내리는지, 또 한참 동안 기차 시간을 안내하는 전광판을 들여다본 후에 기차를 어떻게 타야 되는지 파악이 되었다. 그것도 확실치 않아서 영어를 하는 역 안내원에게 재차 확인을 했고 드디어 바욘행 기차를 탈 수 있었다! 그놈의 확인 또 확인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혹 기차를 잘못 타기라도 한다면 모든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불상사가 일어날것이에..
만남의 시작-바욘으로 가는 기찻길
여행이란 길 위에서 만들어지는 또 다른 삶의 이야기들이다.
때로는 어느 정도의 위험도 감수해야 할 일도 있지만 일종의 쓰릴 있는 사건도 있다는 것이 여행의 모험이 아니겠는가. 여행은 사람이든 환경이든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다.
이번 여행은 처음 파리행 비행기를 타면서부터 웬일인지 여인들 복이 많았다. 나란히 앉게 된 아가씨들과도 수다를 떨며 즐거운 여행을 시작했다. "음, 이번 여행은 어째 출발부터 좋군." 하며 몇 번이나 빙긋 웃었는지 모른다.
내가 탄 바욘행 기차에는 순례길을 걷기 위해 오스트리아에서 온 부부 외에는 한국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내 옆자리에는 1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주 예쁜 여자 아이를 안은 30대로 보이는 여자가 앉았다. 그녀는 첫인상이 무척 서글서글해 보였고 영어를 곧 잘했다. 더구나 자기도 바욘에서 내린다고 하지 않는가! 그 말이 어째 너무 반가워서 "진짜 사람복 많군 이번 여행은!" 이란 생각이 절로 났다.
"주말에 부모가 있는 파리를 들렀다가 집으로 가는 길이예요"라고 그녀가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꽤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와 내가 글을 쓴다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나를 응원해주기도 했다. 그동안 아이를 출산하고 일을 그만두었다가 곧 직장으로 돌아가 다시 일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언젠가 파리지앵처럼 파리의 거리를 마음껏 거닐어 보고 싶어요! 낭만과 예술의 나라인 프랑스에 사는 것이 너무 부럽네요" 했더니 보기엔 근사한 프랑스의 생활이 물가와 세금이 높다는 것과 그다지 여유롭지 못하다는 것도 귀띔해 주었다. 여행자와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란 어디서든 모두가 같은 느낌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자는 낯선 도시에서 환상을 그리고 그 도시의 사람들은 그들이 떠나 온 곳을 그리며 꿈을 꾸게 되겠지..
언젠가 나도 저들처럼 여행자가 되리라고.
대뜸 그녀가 “도착하면 저녁은 어디서 할 계획인가요?”라고 친절하게 물어봐 주었고 바욘 역 주변으로 좋은 식당들이 있다는 정보와 함께 간단한 바욘에 대한 여행 팁들을 알려 주었다.
가을이 오는 프랑스의 시골 들녘을 넋 놓고 바라보며 아주 오랜만에 조용한 평온에 젖어들었다. 그 순간은 직장인도, 주부도 , 그 누구의 이름으로 불리는 내가 아닌 오로지 “나”라는 존재로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혼자가 어때서! "라고 생각을 하면서 또 한 번 빙긋 웃었다.
이렇게 홀로 상념에 젖어있다가도 옆에 앉은 그녀와 또 다른 이야기들을 이어가면서 드디어 바욘에 도착했다.
기차가 바욘 역에 도착한 시간은 예상보다 20분이나 지연되어 밤 8시 15분. 해가 막 지고 있었던 바욘은 언뜻 보기에 조용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아기 엄마 sixthin과 그녀의 마중 나온 남편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고 호텔을 찾아 나섰다. 길 위에서의 또 다른 짧은 만남 그리고 이별이었다.
바욘에서의 하룻밤
호텔은 말 그대로 역 바로 맞은편에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직원은 친절했고 깨끗하고 아담한 호텔이었다. 체크인을 끝내고 가까운 곳에 식당이 있냐고 묻자, "가격도 저렴하고 음식 맛도 아주 좋아요!"라며 호텔 옆에 있는 한 식당을 알려주었다. 호텔방에 배낭을 훌러덩 던져놓고 바로 식당으로 달려갔다. 사실, 너무 허기졌고 내일 일정을 위해서라도 잘 먹는 일이 내게는 무척 중요한 일이었기에. 여행에서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 첫째는 "무조건 잘 먹는 것"이다.
식당은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고 주로 동네 사람들이 대부분인 듯해 보였다.
혼자라 아주 작은 테이블이 있는 곳에 앉았다. 마침 바로 옆 테이블에 혼자 저녁식사를 하고 있던 할머니 한분이 "아가씨~ 어디서 왔어요?”라고 나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가! 나 역시 반가워(미스라는 말에 더욱) "네~ 시카고에서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아담한 체격에 수수한 옷차림이었지만 보헤미안 소녀 같은 독특한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분위기와는 달리 유쾌한 사람이었고 내가 시킨 파스타를 포커와 수저를 사용하여 돌돌 말아서 재미있게 먹는 법을 알려주면서 익살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서로 혼자였지만 나란히 아주 가깝게 앉은 할머니와 나는 둘이었다. 할머니는 먼저 식사를 끝냈지만 홀로인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던지 내가 파스타를 다 먹어치우기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마치 오랫동안 혼자에 익숙한 유랑자처럼 짧지만 아주 즐거운 저녁식사를 했다.
낯선 도시 바욘에서의 저녁이 외롭지 않았다.
할머니는 나를 향해 "아가씨~ Good luck"이라는 말과 함께 부드러운 미소를 던지고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아~그 할머니는 어쩜 그 시간에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천사가 아니었을까?.."라는 소녀 같은 감성에 젖어 또 한 번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나도 호텔로 돌아왔다.
커튼을 제치고 내려다본 마을은 불빛 하나 없는 검은 밤이다. 나는 언제나 창 너머로 낯선 도시의 밤을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곳엔 항상 밤이 던져 주는 이야기가 있다. 서늘한 공기가 흐르는 고요한 밤이다.
밤의 싸늘함은 벌써 가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양말을 신고 거기에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겼다. 노트에 글을 몇 자 끄적이면서 하늘의 별을 하염없이 찾아 헤매다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바욘에서의 하룻밤이었다.
바욘에서 생장으로 가는 기차를 놓치다
아침 7시로 맞춰놓은 알람 소리에 잠을 깼다.
간 밤에 날씨를 미리 확인했고 예상대로 화창한 하루를 기대해도 좋을만치 맑은 하늘이었다.
느긋하게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끝내고 바욘 역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아~주 여유롭게 들어갔다.
시간은 8시 10분. 기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직원에게 티켓을 물어보니 아뿔싸! 첫 기차가 8시경에 이미 출발했고 다음 기차는 거의 12시쯤에 있다는 것이 아닌가! 어제 바욘에 도착했을 때는 티켓 오피스가 문을 닫은 상태여서 미리 예매를 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생장으로 향하는 기차가 수시로 있다는 정보만 믿고 있었던 탓이다.
( 이때서야 역 입구에 티켓 머신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매표소 직원이 알려주어 알게 되었다.)
"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예상치 못한 일은 여행에서 항상 있는 법!" "그래, 받아들이자! 이 돌발 사태를!" "거의 4시간을 기다린다는 건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는 단숨에 택시를
타기로 결정했다.
당장 결심은 했지만 바욘에서 생장으로 가는 길은 택시로도 1시간 정도 소요가 되는데, 혼자 택시를 타고 가야 되는 것과 동시에 요금 또한 부담이 되었다. 혹시 나 같은 처지의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함께 탑승할 그 누군가가 기적같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30분이 지났다. 그런 기적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은 어찌 되었던 생장에서 오리손 (Orisson)까지 올라가야 되는 날이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대기 중이던 택시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기사양반은 선한 인상이었고 안도감이 들었다. "저기요~ 혼자라, 요금이 너무 비싸요~좀 깎을 수 있을까요? " 하고 요금을 흥정했다. 나의 거래는 성사되었다. 그래도 상당한 요금이다! 어쨌든 택시를 탔다.
나의 순례길의 첫 출발지 생장으로 가는 길은 내가 이 길을 걷기 위해 공을 들여 준비해온 시간만큼 그렇게 특별한 출발이었다! 이제 드디어 생장으로 간다고 생장으로!
내가 사랑한 7일간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2)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