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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Oct 21. 2020

Thank You For The Music

환갑맞이 가족여행 


when I start to sing I'm so grateful and proud 

All I want is to sing it out loud 

So I say Thank you for the music the songs I'm singing 

Thanks for all the joy they're bringing 

Who can live without it I ask in all honesty 

What would life be 

Without a song or a dance what are we 

So I say thank you for the music 

For giving it to me

ABBA- Thank You For The Music




베네치아에서 이딸로를 타고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에 닿았다. 작년에 동생과 왔던 곳이라 더 익숙한 피렌체. 숙소가 피렌체에서 살짝 바깥쪽에 자리 잡아서 트램을 타고 다섯 정거장 정도 움직였다. 트램에서 내려 7분 남짓 걸어서 닷새동안 지낼 숙소에 닿았다. 짐을 내려놓고 다시 트램을 타고 렌터카를 찾았다. 피렌체에서 지내는 동안 나흘은 차를 가지고 토스카나 지방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생각이다.


해외에서 렌트하는 건 언제나 손에 땀을 쥐는 경험이다. 두근두근, 시동을 걸고 일단 피사로! 피사를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그래도 이탈리아에 왔으니 '피사의 사탑'은 봐야할 것 같아서 가기로 결정했다. 이 날 날씨는 정말 살갗이 지글지글 타 들어갈 것 같이 햇살이 내리쬤다. 게다가 사탑에 사람은 어찌나 많던지. 바글바글한 사람들 틈에서 기울어지는 사탑을 손으로 받치는 사진만 호다닥 찍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피렌체 숙소도 에어비앤비로 예약했는데, 바로 옆 집에 주인이 살아서 테라스로 통하는 구조였다. 이탈리아는 ZTL(Zona a Traffico Limitato)가 무척 엄격하다. 교통제한구역으로 주로 구시가지에 많다. 렌트한 차를 주차하려면 아무래도 외곽에 숙소를 잡는게 낫다. 주택가여서 편하게 주차하고 숙소 근처에 큰 마트가 있어서 장 보기에도 편했다. 냉장고와 창고에 먹을 것, 수건처럼 필요한 것들을 가득 넣어 두어서 언제든지 꺼내어 쓸 수 있었다. 1층은 크로아상을 굽는 빵집이라서 새벽 5시쯤에는 어김없이 고소한 빵냄새가 올라오곤 했다. 떠나는 날 아침에야 크로아상을 사 먹었는데 무척 맛있어서, 아버지는 지금도 "그 집 빵이 진짜 맛있었지." 말씀하신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한국에서 가져온 햇반이 떨어져서 피렌체 구시가지에 있는 한인마트에 가서 쌀을 사왔다. 숙소로 돌아와 차를 끌고 판짜노(Panzano)로 출발. 운전해서 가는 길이 정말 아름다웠다. 고속도로를 잠시 탔다가 좁은 시골길로 들어섰는데, 굽이 굽이, 언덕에는 포도밭이 가득하고, 저 멀리 평야에는 추수가 끝난 황금 밀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판짜노에 간 까닭은 단 하나. '다리오 체끼니'가 하는 식당에서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서다. 한 사람당 50유로를 내면 고기, 와인을 무제한으로 먹고 마실 수 있는 식당이다. 정말 작은 마을인데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모두 소고기를 먹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애피타이저를 먹으며 밥 먹을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숯불이 이글이글한 화덕 앞에 놓인 기다란 식탁에 앉는다. 와인과 함께 천천히 여러 부위의 소고기를 나누어준다. 막내는 바싹 익힌 고기만 먹어서 특별히 더 구워주셨다. 고기를 좋아하는 아버지와 동생은 여러번 감탄사를 뱉으며 소고기를 먹었다. 배불리 먹고 나면 구운 감자를 주는데 포슬포슬 맛있었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올리브오일, 밀가루, 달걀, 설탕만 넣고 구운 케이크를 준다. 마지막에 마지막으로 포도껍질로 만든 '그라빠'라는 술을 주는데 입술만 살짝 대어보아도 엄청나게 독한 술이었다. 이날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과 긴 식탁에 모여 앉아 왁자지껄 떠들며 한끼 배부르게 먹었다.


막내는 이날도 베네치아에서 산 '카피타노' 모자를 썼는데, 일하는 사람들이 모자를 가리키며 친근하게 말을 걸고, 사진을 찍어주어서 막내 기분이 하늘을 찌를 정도로 좋았다. 탄수화물을 넉넉하게 먹지 않아서, 혈당이 떨어질까 걱정이라, 올리브오일 케이크를 조금만 싸 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아예 한 판을 통째로 챙겨주었던 넉넉한 인심. 


피렌체로 돌아가는 길에 시에나에 들르기로 했다. 달리다가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나면 차를 세우고 가족사진을 찍었다. 시에나는 예전에는 피렌체와 힘 겨루기를 할 만큼 번성했던 중세도시다. 검은색 대리석이 들어간 두오모가 아름답고, 부채꼴 모양의 캄포광장에서는 해마다 '팔리오'라는 경마대회가 열린다. 


좁은 골목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캄포광장에 이른다. 7년 전에 뜨거운 햇볕을 만끽하며 혼자 앉았던 광장에, 가족이 앉았다. 동생과 젤라또를 사러 갔다가 어머니, 아버지, 막내가 앉은 뒷모습을 보니 새삼스럽게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바닥에 앉아 젤라또를 나누어 먹는 삶. 일단 발을 떼면, 어떤 꿈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어머니는 딸들에게 가방을 사주고 싶었다며, 시에나에서 가죽 가방을 사주셨다. 


아름다운 캄포광장에 우리 가족이.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막내가 지루해하는 것 같아서 음악을 틀었다. 나도, 막내도 좋아하는 ABBA. 어렸을 때, 아버지의 LP나 카세트테이프로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노래들이다. 흥이 많은 막내에게 딱 알맞은 음악이기도 하다. Mamma Mia, Dancing Queen, Gimme! Gimme! Gimme!, Waterloo, Thank You For The Music까지 열창하는 막내를 보며 살짝 눈물이 고이기도,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베네치아에서 오옥, 토할 때는 온갖 걱정을 다 끼치더니, 피렌체로 넘어 와서는 한결 나아졌다. 어찌나 안심되고, 행복했는지. 그 순간에 우리에게 음악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숙소에서 저녁을 챙겨먹고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야경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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