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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Oct 22. 2020

으뜸으로 좋은 곳

환갑맞이 가족여행

여행을 다녀온 뒤, 어디가 제일 좋았는지 여쭤보았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토스카나. 스위스를 으뜸으로 여길 것 같았는데, 토스카나가 스위스를 이겼다. '편하게 차를 타고 다녀서 좋았어?' 물으니 아니라고, 아름다웠다고 하신다. 천천히, 물 흐르듯이, 바람에 구름 흘러가듯이, 토스카나 지방 이곳 저곳을 누비던 날들. 나도 피렌체에서의 닷새를 제일 좋아한다.


피렌체 여행 셋째날. 동생은 12시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갔다. 낼 수 있는 휴가를 최대한으로 잡아서 왔지만, 끝까지 함께 하기에는 짧았다. 이후 여행은 로마라서, 작년에 로마를 다 둘러보았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쿨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는 기다리는 반려견이 있기에, 동생이 조금 더 빨리 돌아가는 것이 안심이 되기도 했다.


달봉이.


동생을 공항에 태워주고 조금 늦게 시작한 셋째날. 산지미냐노로 향했다. 7년 전에 혼자 여행할 때는, 대중교통으로 갈 엄두를 못냈던 곳이다. 높은 탑이 여러 개 남아있는 중세도시. 탑을 세우는 것이 부의 상징이었다는데, 한때는 100개가 넘는 탑을 세웠단다. 산지미냐노로 가는 길도 아름다웠다. 운전하는 재미가 있는 토스카나 지방.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입구로 올라갔다. 밀밭이 펼쳐지는 평야에 우뚝 솟은 언덕에 자리잡은 도시. 입구로 들어서자, 벽돌집과 좁은 골목길이 반겨준다. 아기자기한 상점을 구경하는 재미는 덤. 걷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젤라또가 빠질 수 없지. 이탈리아에서 상을 받은 젤라또 집이 있다는데 우리 가족은 입구에서 홀랑 사먹어버렸다.



천천히 길을 따라 걷다보면 건물과 탑에 둘러쌓인 광장이 나타난다. 유럽의 광장은 골목길을 걷다가 갑자기 확 넓어지는 공간감이 주는 느낌이 강렬하다. 산지미냐노 광장에 서서 파란 하늘을 돌아가며 보았다. 높이 솟은 탑과 오래된 벽돌에서 나오는 차분한 색, 파란하늘이 어우러졌다. 100개가 넘었다는 탑은, 현재 14개만 남아있다.

 

 

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도시를 둘러싼 성곽으로 나서게 된다. 이 성곽에서 내려다보는 토스카나의 경치가 산지미냐노 여행의 정수.  까페 테이블도 아예 평원을 내려다본다. 한참을 물끄러미 보고만 있어도 좋을 경치. 초록색 포도밭과 밭과 밭을 나누는 진한 초록색 사이프러스 나무들. 추수를 끝낸 누런 밀밭과 줄을 맞추어 심은 올리브 나무들. 공기의 밀도마저 다르게 느껴졌던 순간.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가족 사진을 찍고 다시 피렌체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저녁을 해 먹고, 아버지와 나는 서둘러 피에솔레로 갔다. 피렌체의 북동 쪽 바깥에 자리잡은, 언덕 위의 마을이다. 아버지가 휴대폰으로 피렌체에 대해 검색해보시고는, '피에솔레에 가면 멋진 노을을 볼 수 있다더라.'며 먼저 가자고 하셨다. 갈까 말까,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원하시니 얼른 나서야지. 숙소에서 피에솔레까지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서 서둘러 전망대로 올라갔을 때는 이미 해가 막 진 무렵이었다. 탁하게 가라앉은 보라색 하늘과 그 밑에 펼쳐진 피렌체의 야경이 아름다웠다. 전망대 바로 아래 자리잡은 호텔에서는 인도 가족의 결혼식 피로연이 한창이었다. 발리우드 영화에 나올 것만 같은 흥겨운 음악 소리에 발을 까딱이며, 아버지와 한참을 말 없이 피렌체를 내려다보았다. 마치 이 순간을 두 눈에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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