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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랑 Oct 27. 2020

함께라면 웃을 수 있다(1)

환갑맞이 가족여행

영화관 의자가 마구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비티'의 주인공, 라이언이 지구로 돌아올 때, 산산조각 난 우주정거장의 파편이 지구로 돌진해 들어올 때, 그 활활 타오르는 덩어리들, 환한 빛, 속도감에 심장이 터질 정도로 뛰었다. 내 심장이 뛰어서 의자가 흔들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뛰었다. 지구로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뭔가 알 수 없는 것이 솟구쳐서 그랬다. 극장에 사람이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펄떡펄떡 뛰는 심장과 함께 겉잡을 수 없이 눈물도 솟아 올랐으니까. 흐느껴 우느라 마구 흔들리는 몸을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엄마가 췌장암이래. 어떡하냐."

드물게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는데, 울먹이면서 하신 첫 말씀이, 엄마가 암에 걸렸단다. 췌장암이라니. 알아차렸을 때는 너무 늦는다는 암이잖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일단 서울 큰병원에 전화해서 예약을 잡으라고 하신다. 아산병원, 세브란스, 또 어디가 있더라? 전화를 돌렸는데 생각보다 빨리 세브란스에 예약이 잡혔다. 

어머니는 등과 허리가 너무 아파서 시내 내과에서 CT를 찍었는데, 병원에서 췌장쪽에 암이 생긴 것 같다고 해서, 이 일을 어쩌나, 혼자 걱정하고 계셨다. 무엇보다 마음에 걸렸던 건 바로 막내. 엄마 껌딱지에, 아픈 막내를 두고 세상을 떠날 일을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단다. 어쩐지, 며칠동안 집 분위기가 이상하다했다. 어딘지 모르게 어머니의 표정이나 분위기가 묘했다. 그래서 그랬구나. 


집으로 가면서 엉엉 울었다. 운전하면서 소리내어 울고, 차 천장을 주먹으로 마구 쳤다. 큰 소리로 욕을 했다. 왜 우리 엄마한테 이런 일이 생기냐고, 안 그래도 힘들게 살아온 분인데 왜 그러냐고. 집 앞에서 눈물을 닦고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같이 저녁을 먹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고 해서 고개를 푹 숙이고 먹었다. 잘 때 베개가 젖도록 울었다. 그 뒤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리 저리 뛰어다니고, 그때 그때 닥쳐서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2013년 11월 25일(월)에 알게 되어서 수요일에 바로 강남 세브란스로 갔다. 목요일 오후 다섯시 쯤 되어서 암은 아닌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바로 혹을 떼어내고 조직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척추 바로 뒤, 췌장 있는 쪽에 혹이 생겼는데 신경을 눌러서 허리랑 등이 아팠던 것. 알고보니 외할머니도 같은 부위에 혹이 있었는데 모르고 있다가 혹이 터져서 내내 누워있다가 돌아가셨다. 달리 생각하면 어머니는 혹이 터지기 전에 알아서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췌장암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28일(목)에 어머니와 함께 있으려고 서울로 올라갔다. 혹을 떼어냈으니 불편하실 것 같았다. 처음으로 병원 간이침대에서 자봤다. 복도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무언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소리에 내내 잠을 설쳤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난 어머니를 부축해드리려 했으나, 어머니는 본인이 가겠다며 내 손을 뿌리치셨다. 아직은 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나보다. 어머니는 암이 아니었지만, 암병동에 입원하셨다. 어머니가 암이 아니라는 사실에, 나는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며칠 전, 차를 주먹으로 때리며 울었는데, 이 날은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눈으로 보는 부모님의 모습과, 내가 인식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차이가 난다. 어렸을 때 봤던 부모님의 젊은 모습이 어딘가에 남아서, 겉모습이 늙어가도 나는 부모님을 젊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때, 깨달았다. 언젠가는 부모님과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젊어서, 언제나 내 곁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는 걸, 뒤통수를 퍽, 하고 맞은 것처럼 알아버렸다.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이별에 대해 말한 그 많은 문학작품, 음악을 들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스쳐지나간 거겠지. 어쩌자고 인간은 이런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걸까? 어른들이 달리 보였다. 이미 부모님을 여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달리 보였다. 아, 이 사람들은 그런 고통을 겪어보았구나. 마음이 무너지고 갈가리 찢어져 보았구나. 그래서 웃으면서도 가끔씩 웃음기가 사라졌다. 우울했다. 


'그래비티'를 볼 때, 이런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차 있었다. 그래서 감정이 터져나왔던 것 같다. 다시 지구로 돌아왔을 때, 라이언의 걸음을, 무거운 몸을 붙드는 건 '그래비티'. 흙을 움켜쥐고 무거운 몸을 땅에서 떼어내 비틀거리면서 걸어도 라이언이 웃었던 건.....무게가 무거울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부모님을 잃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아간다. 



렌트 마지막 날. 

사이프러스 나무를 보러 발도르차로 향했다. 발도르차, 피엔차, 몬테풀치아노까지 고만고만한 거리라서 최대한 많이 돌아다니기로 했다. 굽이 굽이 구릉을 넘어서 달린다. 추수를 끝낸 밀밭을 곱게 갈아놓았다. 그 옆에 그대로 둔 초원의 초록색과 밭과 밭 사이를 가르는 나무들이 어우러진 풍경. 저 멀리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들. 이 날 드라이브는 우리가 생각하는 토스카나의 모습 그대로였다.

Circle of Cypress. 밀밭 가운데 사이프러스 나무를 둥그렇게 심어두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나무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아름다웠다.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나무를 보러 가는 길 자체가. 



조금 더 길을 달리면, '글래디에이터'에 나온 걸로 알려진, 막시무스의 집이 나온다. 사실, 이 곳은 글래디에이터를 찍은 곳이 아니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쭉 서 있는 풍경으로 이름이 난, 이탈리아 농가, 아그리투스모다. 이름은 Poggio Covili. 이 곳에 묵으려고 검색을 해보았는데 1박에 100만원이 훌쩍 넘어서 포기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부모님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농가까지 쭉 이어진 길에 시원하게 쭉쭉 뻗은 사이프러스 나무가 잘 어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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